끝없는 불법찬조금과의 전쟁
노현경 참교육학부모회 인천지부장
‘내가 내 돈 갖고 내 맘대로 쓰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전화 속의 목소리는 흥분과 분노로 떨렸고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래, 당신 사무실이 어디야. 우리가 곧 그리로 가지.’ 한여름을 향해 하루하루 낮 기온이 상승해 가던 이년 전 초여름의 그 날을 필자는 잊을 수가 없다.
한 30분이나 지났을까. 10여 명의 학부모들이 우르르 필자 사무실로 쳐들어(?) 왔다. 자신들은 인천의 한 지역 소속 인문계고교 학부모단체장들이라고 말했다. 얼굴은 아차하면 멱살이라도 잡을 듯 상기되어 있었고, 당장이라도 사무실 집기를 내던질 태세였다.
매년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반복되면서 근절되지 않는 ‘불법찬조금 근절’을 위해 그 해 필자는 아예 ‘전쟁’을 하기로 단단히 작정을 했었다. 학부모들에게 불법찬조금의 교육적·사회적 폐해를 알렸을 뿐 아니라, 신고 센타를 운영하며 불법찬조금 갹출 제보를 적극적으로 접수했다.
약 40개교에서 불법찬조금이 학교 내 학부모단체들을 중심으로 갹출된 것으로 집계됐다. 경중을 분리해서 교육청에는 감사를 청구했고, 액수가 과다하거나 뇌물성 촌지수수 의혹이 있는 것은 수사당국에 고발하였다. 학부모와 교사 합쳐 연인원 1천200명 이상이 조사를 받은 것으로 교육청 감사결과 드러났다.
그 날 필자의 사무실로 찾아온 학부모들 대부분 역시 교육청 감사나 사법당국의 수사를 받았던 학부모들이었다. 두 시간 가량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불법찬조금이 왜 없어져야 하는지, 아무리 제 돈이라지만 제 자식만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무분별한 행동이 얼마나 학교교육을 황폐화시키는지를 찬찬히 설명하였다.
다행히 그들이 돌아갈 때쯤에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수긍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는가. 작년에는 조금 수그러드는 듯 하더니 올 신학기 초부터 불길한 조짐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사건이 터졌다. 서울의 한 사립초교에서 불법찬조금으로 물의를 빚은 학교관리자들이 징계를 받자 이를 제보한 학부모집에 그 학교 학부모들이 집단으로 몰려가 행패를 부렸다. ‘학교망신 시키고 똥물을 튀기게 했다. 돈을 내기 싫으면 전학가면 될 것 아니냐’ 라며. 이런 충격적이고 몰상식한 학부모들의 행동을 지켜보며 언제쯤 이런 지난한 ‘불법찬조금과의 전쟁’을 끝내게 될지 회의가 들었다.
올 신학기 역시 인천지역 대부분의 학교는 ‘우리 학교는 불법찬조금을 걷지 않습니다’라는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하지만 ‘가정통신문 따로, 현실 따로’ 라는 것이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학교 내 자생단체들은 여전히 회비라는 명목으로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불법찬조금을 걷고 있고 그래도 잘못인 줄은 아는 지 드러나지 않게 점점 더 음성적이고 교묘한 방법으로 바뀌고 있을 뿐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불법찬조금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교육청이나 교육시민단체에 제보하는 옳은 일을 하고도 대부분의 제보자들이 떨고 있다는 사실이다. 적발된 학교와 학부모단체들은 대부분 잘못된 문제와 관행을 반성하고 고치려는 노력은 고사하고 내부고발자를 색출하여 보복하려고 혈안이 되기 때문이다.
학교관리자들은 ‘우리는 모르는 일이고 학부모들이 한 일’ 이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더 이상 취해서는 안 된다. 학부모 자생단체를 부족한 학교재정을 메우는 후원조직 정도로 인식해서도 안 될 것이다. 또 학부모 역시 할당식으로 거둔 거액의 돈을 주먹구구식으로 집행하며 대부분을 교사 접대용 경비, 소모성 경비로 쓰는 관행을 바꾸어야 한다.
교육청은 학부모 단체를 자생단체라는 이유로 더 이상 방치하지 말라. 예시규약과 모범적인 학부모단체 활동지원에 더욱 힘써야 한다. 또한 불법찬조금 근절을 위한 좀 더 철저한 대책과 함께 적발 시 책임자에 대한 중징계를 내려서 근절의지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
오늘도 양식 있는 학부모들은 매우 조심스런 목소리로 불법찬조금 제보전화를 할 지 모른다. ‘그런데, 아이와 제 신분은 반드시 보장되는 거지요’ 하면서.
인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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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불법찬조금과의 전쟁>-일간 인천신문 칼럼(4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