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학교급식 아이건강 망친다
- 식중독 사고 빈발
올해 1학기만 41건
- 담배꽁초등 이물질도
- 건강보다 이윤 계산
- 위탁급식 한계 드러나
- "몸·영양 총체적 교육과정"
직영급식·학부모 참여 등 조례제정운동 활기
최근 부산의 한 중학교가 급식비를 내지 않은 학생 100여명에게 급식을 중단하는 바람에 학생들이 이틀 동안 점심을 굶은 ‘사건’이 일어났다.
학교쪽은 “사정이 어렵지 않으면서도 급식비를 주지 않거나 학생들이 급식비를 받고도 학교에 내지 않는 사례가 많아 취한 조처”라고 해명했지만
‘학생들 밥을 굶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많은 사람들은 분노했다.
하지만 정작 우리 학생들이 먹고 있는 급식의 질에 대해서는 얼마나 많은 관심들을 쏟고 있을까
올해 학교 급식 때문에 일어난 식중독 사고는 1학기에만 41건. 학생 3800여명이 식중독에 걸려 고생했다. 지난 8월 인천지검은 급식
단가를 허위로 작성해 세금을 포탈한 식품회사 대표와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교장, 행정실장 등을 기소했다. 지난 10월에는 서울의 ㅇ고등학교의
급식을 위탁받아 운영해온 급식업체 사장이 “교직원들에게 금품과 향응 접대를 강요당하고, 학교시설물을 지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지난 14일 광주시교육청은 수입 쇠고기나 젖소를 한우로 속여 학교에 납품하거나 음식 재료를 국산으로 허위 표시해 공급한 광주지역 육류업체
3곳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런 일들은 급식을 둘러싼 여러 잡음 중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식중독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급식에서 담배꽁초 등 쓰레기가 나왔다든지,
비위가 약한 학생은 먹기 힘들 정도로 맛이 이상한 급식이 나왔다든지 하는 불만은 하루가 멀다 하고 학생들 입에 오르내린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전국 9989개 학교 654만여명의 학생이 급식을 먹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7에 달하는 엄청난 학생들이
급식을 먹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급식은 단순히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먹거리와 학생들의 몸과 영양에 대한 총체적인 교육 과정’으로
거듭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
현재 학교 급식은 수입산과 값싼 식재료 사용, 급식시설의 미비·노후, 급식 전담직원 부족과 신분 불안정, 학부모 부담 가중, 학교운영위원회
기능의 한계 등 수많은 문제가 얽혀 있는 상황이다.
급식 관련 시민단체들은 무엇보다 위탁급식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위탁급식이란 위탁급식 업체가 학교와 계약을 맺고 급식을 제공하는 방식을
말한다. 학교에서는 1억원이 넘는 기본 시설투자비(식당, 조리실 등)를 들이지 않고 음식의 질에 대한 책임도 벗을 수 있어 선호되는 방식이다.
문제는 위탁업체들이 보통 3년 정도 맺는 계약기간 동안 ‘이윤’을 남기기 위해 값싼 음식재료를 사용한다는 데 있다. 사기업의 특성상 아이들의
건강보다는 음식 원가를 낮추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다. 현재 서울시내 중·고등학교 대부분이 위탁급식을 하고 있다. 박범이 서울시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학교가 직접 급식을 공급하고 이에 대해 책임을 지는 직영방식이 빨리 확대되도록 제도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가장 이상적인 급식의 방향은 무엇일까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schoolbob.org)의 주장은 간단하다. 학교가 직접 운영하는
직영급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의한 무상급식 확대, 우리 농산물을 사용한 안전한 식재료 학보,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한 학부모의 급식참여
등이다.
이를 위해서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지자체 학교급식 조례제정 운동이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각 운동본부가 만들고 있는 조례는 직영급식
확대를 위한 지원, 영양교사의 안정적인 근무가 보장되는 고용 문제,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무상 급식의 확대, 우리 농산물 공급, 학부모의
민주적 참여·감독 방안들을 담고 있다. 지난 9월 전라남도에서 ‘전라남도 학교급식 식재료 지원에 관한 조례’가 주민 발의로 제정되는 등
조례제정운동은 가시적인 성과를 얻고 있다. 정부 또한 조례제정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급식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국무총리실이
18일 ‘학교 급식 개선대책’을 발표하는 등 조례제정운동으로 제기된 시민단체들의 주장을 수용해 나가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출발이다. 특히 우리 농산물을 급식재료로 사용하는 조항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정부가 난색을 표하고
있고, 위탁급식을 직영급식으로 전환시키는 데도 의욕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위탁급식 업체들의 반발과 예산문제 때문이다.
안승문 서울시 교육위원은 “학교급식 조례제정운동은 시민들이 직접 자신의 아이들이 먹을 급식에 관한 법률을 자치입법하는, 진정한 자치를
배우는 과정”이라며 “이 운동은 아이들이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게 하는 운동일 뿐 아니라 온갖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어른들의 이미지를 벗고
아이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운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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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학교급식 아이건강 망친다(한겨레신문03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