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위클리 서울에 실린 글입니다.
일제고사와 학습 부진아 그리고 나머지 공부
- 전국 단위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발표하는 2월의 단상 -
윤숙자( 참교육학부모회 정책위원장)
- 공부 못하는 아이로 생각될까봐 창피하고 자존심 상해요
- 매일 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 5학년이 2학년 수학문제 푼다고 놀려요
- 친구들이 공부 못한다고 생각 한다. 나중에 커서도 나를 그렇게 기억 할 것이다.
이 글은 지난해 12월 필자가 살고 있는 지역의 지역아동센타(저소득층 방과후 공부방) 두 곳에서 나머지공부(방과후 특별 보충수업)경험이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54명 중 나머지 공부 경험이 있는 21명의 초등학생 모두가 같은 대답이었다.
필자에게도 나머지공부의 기억이 있다. 틀린 문제 수만큼 손바닥을 맞거나 남아서 다시 문제를 풀어야 했다. 담임선생님이 ‘됐어 합격’ 하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신났다’ 하고 집으로 뛰어 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나 단골로 나머지 공부를 하는 친구들은 달랐다. 어쩌다 걸린 애들은 기다리는 친구들과 놀 생각에 열심히 과제를 해결하는 반면 늘상 나머지 공부를 하는 친구들은 끝날 시간만을 기다리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무런 의욕조차 없어 보였다. 70년대 나머지 공부를 하던 교실 풍경이 아직도 그대로라고 한다면 이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학습 부진의 문제는 늘 언제 어디서든 존재 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화시대 ’, ‘선진화교육’을 외치는 시기에 학습 부진아에 대한 대책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 교육은 제자리 걸음 하고 있거나 후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정부는 2008년 일제고사를 부활하면서 학습 부진아문제와 지역간 학력격차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수월성 교육’, ‘영재교육’’과 같은 성적 우수아 중심정책에 밀려 있던 학습 부진아 문제를 우리 사회 교육문제의 전면으로 이끌어 낸 것은 일제고사 찬반을 떠나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일제고사를 부활한지 2년이 지난 지금 필자는 정부가 과연 일제고사를 통해 학습 부진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 것이 진심인지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우선 먼저 정부가 학습 부진과 학습 부진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필자가 소속된 단체에서 특정 지역의 아동센터 학생들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학습 부진의 문제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표본 수가 적은 조사를 일반화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학습 부진의 원인을 이해하는 자료로서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설문에 응답한 나머지 공부를 한 경험이 있는 학생 21명 중 2명만이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답변한 반면 90%가 넘는 19명이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답하고 있다.
이는 학생들이 처한 상황과 연계하여 이해할 경우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21명 중 기초생활 수급자가 7명, 차상위 계층이 3명, 나머지 11명도 월 평균 수입 200만원 이하의 가정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17명(81%)의 학생이 한부모 가정(15명)이거나 조손가정이거나, 친척집에 거주하고 있다. 이는 학습 부진의 문제가 빈곤의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빈곤으로 인한 가족해체와 같은 정서적, 심리적 문제를 동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가 학습부진의 근본적 원인을 간과한 채 단 한 번의 전국단위 시험으로 학습 부진아를 판별하고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나머지공부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학습부진아 대책이 실효성은 담보하지 못한 채 정서적,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에게 또 다시 깊은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라도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정부의 학습 부진아 지원정책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4개의 민간 교육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학습 부진아 살리기 연대가 2월 10일 토론회에서 발표할 자료에 따르면 더 많은 지원과 배려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학습 부진아 1인당 지원예산은 영재 교육 지원 예산의 1/5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학교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바 인천의 A초등학교는 학습부진아 지도 예산이 600만 원 정도인 데 비해 영재교육을 위한 예산은 6,700만 원이 지원되고 있으며 강사비에서도 부진아 지도 수당은 12,500원 ~15,000원인데 비하여 영재교육 지도 수당은 7만원 수준이다. 생색내기용 학습 부진아 대책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시행되고 있던 학습 부진아 지도를 위한 인턴 교사도 2010년 대폭 축소될 전망이다. 2월 3일 발표한 교과부 자료에 따르면 학력향상 중점학교에 투입하였던 인턴교사가 2009년 4,793명에서 1.736명으로 예년의 36% 수준으로 대폭 감소된다.
학습부진의 원인은 다양하며 가정 배경의 문제 또한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외국의 경우 교육과 복지를 통합한 형태로서 학교와 지역사회를 연계한 종합적인 지원시스템과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이러한 복지적 관점에서 학습 부진아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가정 빈곤 대책, 심리적 치유의 문제 등 종합적인 지원시스템 마련과 더불어 소요 예산 지원이 그 핵심이다. 이는 국가 교육정책의 우선순위를 정립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어느 한 아이의 재능도 버릴 수 없는 소중한 자산’ 이라며 일반학생의 1.5배에 달하는 예산을 배정하고, 학습부진아를 위한 지원을 국가 교육정책의 우선순위로 놓고 있는 핀란드가 오늘날 세계 제 1위 교육강국으로 꼽히는 요인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일제고사 성적공개에 대비한 성적조작, 학습 부진아 허위보고, 학습 부진아가 반 평균을 깎아 먹는다고 시험 보는 날 학교 나오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보다는 뒤처지는 아이들이 더 많이 배려 받고 더 많이 지원받는 교육환경을 만들겠다는 다짐과 노력이 정부와 학교, 지역사회 곳곳에서 꽃피는 2010년 2월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뒤처지는 아이도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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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와 학습부진아 그리고 나머지 공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