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지상주의 교육정책을 전환하고 일제고사를 폐지하라!”
며칠 전 한 명의 고등학생이 자신의 소중한 꿈을 키워갈 수 없는 교육현실을 비관하고, 더 이상 견디어 낼 마음을 잃은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올해 들어 언론을 통해 알려진 세 번째 일이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아이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20여 년 전 우리사회에 깊은 성찰을 주었던 한 여중생의 유서를 통해 그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난 일등 같은 것은 싫은데,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은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한데, 이 모든 것은 엄마가 싫어하는 것이지. 난 인간인데, 난 친구를 좋아할 수 있고 헤어짐에 울 수도 있는 사람인데…. 나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기라고 하는 분, 항상 나에게 친구와 사귀지 말라는 슬픈 말만 하시는 분…. 공부만 해서 행복한 건 아니잖아?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해서 이 사회에 봉사하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면 그것이 보람 있고 행복한 거잖아? 난 로봇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돌멩이처럼 감정이 없는 물건이 아니다. 밟히다 밟히다 내 소중한 삶의 인생관이나 가치관까지 밟혀 버릴 땐 난 그 이상 참지 못하고 이렇게 떤다.』(86년 어느 여중생의 유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중에서)
교사의 꾸중, 부모의 성적 채근, 사회의 등수 매기기를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은 그 아이의 마음도 이렇지 않을까 헤아려본다. 그렇기에 이 아이들의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가슴 아프게 책임을 느껴야 할 문제이다.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2007년 한 해 동안 자살한 10대 청소년은 309명으로 하루에 한 명꼴이고, 전체 청소년 사망자 수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한 연구기관이 발표한 2004년「울산청소년생활통계년보」에 따르면 초중고생 중 자살 충동을 느낀 학생이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48%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이전부터 청소년 자살이 사회문제화 되고 있었음에도 계속해서 발생하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해 교육당국과 사회가 적절한 예방책과 근본적인 대책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울산교육청에서는 ‘생명존중 및 청소년 자살 예방교육’을 진행한 바 있다. 교육청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관련 대책을 추진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 한계가 분명하여 학부모들의 의견을 모아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울산교육청은 성적지상주의 교육정책을 전환하라!
돌이켜 보면, 아이들에게 꿈을, 학부모에게 감동을 주겠다던 김상만 교육감에게 학부모들의 기대가 높았다. 그것은 교육감이 가진 오랜 교직생활에 대한 믿음이었다. 학력향상이 점수와 등수 올리기 경쟁으로 왜곡된 교육현실과 새벽 2시까지 학원으로 내몰리며 생명력을 잃어가는 아이들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이런 현실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학원심야교습시간 제한에 대한 소극적 태도, 일제고사 강제 추진과 성적 공개, 대입 결과와 일제고사 성적 비교를 통한 학교간 경쟁 유도, 중학교 방과후 학교 강제 실시, 광역수준 일제고사 실시 등 일련의 정책은 사교육을 부추기고 점수와 등수 경쟁을 확대 강화하며 학부모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 왔다. 결국 이에 발목 잡힌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강제교육노동에 더욱 내몰게 되고, 지친 아이들은 목숨을 끊는 것으로 답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학력향상이라는 미명으로 추진하고 있는 성적지상주의 교육정책의 비참한 결과이다.
“바른 인성과 실력을 갖춘 글로벌 인재육성”이 이처럼 아이들의 목숨 값으로 얻어지는 결과라면, 우리는 지금 아이들에게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죄악’을 짓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울산교육청은 아이들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 교육정책의 근본을 돌아보고, 스스로 밝혔던 것처럼 ‘교육공동체의 참여와 협력을 통한 돌봄과 배움의 학교’를 만들기 위해 교육주체들과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 울산교육청은 일제고사를 즉각 폐지하라!
오는 7월 8일, 9만 4천명의 울산지역 초등학생은 광역수준 초등학업성취도평가를 기말고사라는 이름으로 본다. 학원의 맞춤수업, on-off 상의 각종 문제집의 홍수를 넘어 학교까지 일제고사 대비 사설모의고사를 본다고 한다. 이제 무한입시경쟁교육이 초등학교까지 확대된 것이다. 대입을 앞둔 고등학교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 하더라도, 학교간 경쟁을 유도한다면서 초등학생까지 무한입시경쟁교육에 편입시키는 일은 정말 ‘죄악’이다. 아동인권선언에 명시한 아동의 ‘유희와 오락을 충분히 제공받은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쟁교육을 강화하는 일제고사를 즉각 폐지해야 한다. 기말고사는 각 학교에서 가르친 교사가 스스로 평가하도록 하자. 광역단위 진단은 이미 하고 있지 않은가? 전수평가와 성적공개가 갖는 폐해는 이미 충분히 겪을 만큼 겪고 있지 않은가?
학부모들의 마음을 담아 울산교육청에 당부하고 촉구한다.
더 이상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죄를 짓지 말자.
성적지상주의 교육정책을 전환하고 일제고사를 폐지하라!
2009년 7월 6일
아이들의 잇따른 죽음 앞에 사회적 책임을 느끼는 울산지역 학부모 단체 일동
(어린이책시민연대울산지회/울산여성회/울산장애인부모회/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울산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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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 기자회견문]“성적 지상주의 교육정책을 전환하고 일제고사를 폐지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