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노동자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맘이 하 수상하여 같이 함 생각해 봤으면 해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아주 오래된 외침이 하나 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1970년의 끝 무렵, 서울의 어느 청년노동자가 자신의 목숨과 맞바꾼 외침이다. 그 외침은 시대의 좌표가 되어 수많은 다른 청년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키게 하는 힘이 되었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많은 권리가 그 외침에 깃들여진 목숨의 은혜일 것이다.
그새 50년이 다 되어 가는 4.19 혁명일에 서울 한복판에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이명박 정부의 학교자율화(학교학원화) 조치에 반대하는 200여명의 청소년들이 ‘0교시, 야자보충, 우열반, 학교자율화 반대 청소년 촛불문화제’를 연 것이다. 이들이 발표한 짧은 성명서의 제목은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 우리는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다!’이다.
가슴이 미어진다. 노동자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인간의 권리를 찾으려 바친 세월이 얼마 만큼인가? 지금이야 누구는 현실에 안주하고, 누구는 저항하며 싸우고 있지만, 귓가에 하얗게 샌 머리카락만큼이나 거친 세월이었으리라. 그런데 그이의 자식들이 똑같은 외침으로 세상을 향해, 정부를 향해, 어른들을 향해 외치고 있다.
그 아이들의 부모들은 싸웠다.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을 가진 우리 사회에서 8시간 일하고, 8시간 쉬고, 8시간 잘 권리를 찾기 위해. 그 부모의 아이들이 외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청소년 수면시간을 가진 우리 사회에서 잠 좀 자자고, 밥 좀 먹자고. 어느 연구에 따르면 고등학교 2-3학년의 주중 평균 수면시간은 5.4시간이란다. 이제 학교자율화(학교학원화)로 인해 0교시, 강제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우열반이 부활된다면 5.4시간은 얼마나 더 줄어들까? 혹 우리 사회는 10대 청소년이 얼마나 잠 안자고 버틸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거대한 생체실험실이 아닐까?
부모인 노동자는 싸우고 있다. 산재사망율 세계 1위의 나라에서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찾기 위해. 노동자의 아이들이 외치고 있다. 죽지 않고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학교자율화(학교학원화) 계획이 발표된 4월 15일, 서울의 어느 특목고 3학년 여학생이 성적경쟁에 대한 부담을 못 이겨 자살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해 약 1000명 정도의 중고생이 사망하는데 그 중 20%는 자살이라고 한다. 교통사고에 이어 청소년 사망원인 두 번째이고, 그 대부분이 시험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이제 5월이면 울산교육청에서는 초등학생의 성적도 등수를 매겨서 공개할 것이다. 고등학생이 시험 때문에 자살한 사건이 더 이상 뉴스거리로 취급되지 않는 현실에서 초등학생의 미래는 어떠할까? 시험으로 인한 자살만큼은 없는 세상을 바라는 아이들의 외침이 그렇게 큰 욕심일까?
안타깝지만 부모가 된 노동자는 이러한 객관적 사실을 잘 받아들이기 어렵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학교자율화라는 화려한 가면 뒤에서 지금도 부족한 교육예산을 기업으로 돌리고, 사교육 전문기업의 이윤을 위하고, 수십 년 묵은 교육관료의 이익을 위해 아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는 권력자들의 음모를. ‘내 아이 만큼은’이라는 욕망에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참교육’은 형편 좋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 교육현실에서 가장 큰 피해자인 아이들의 눈으로 현실을 보려고 노력하면 우리 부모의 눈도 밝아진다. 그것이 참교육이다. 집에서 아이의 책가방의 무게를 느끼며 거기에 실린 사회와 어른들의 욕망의 무게부터 한번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아이에게 진심으로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는 말로 얘기를 시작해보면 좋겠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던 노동자들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는 우리 아이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으면 좋겠다.<끝>
|
|
|
자유게시판
132
7
1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