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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9 15:44: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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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지부 |
 초청강연회>섬진강시인,김용택을 만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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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강연회를 보고 울산노동뉴스에 기고한 서해식작가의 글을 퍼왔습니다.>
나무 한그루를 바라보는 순간
[기고] 김용택 시인이 들려준 '아이들의 삶과 교육'
“경수야, 네 나무는 어떡하고 있어?”
“제 나무는 마을 앞에 있는 큰 느티나무인데요, 그 아래에는 할아버지들이 앉아 계시고 앞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고요, 들판에서는 마을 어른들이 모내기를 하고 계셨어요.”
경수는 2학년 아이다. 모교인 전북 임실 덕지초등학교에서 오랫동안 ‘용택이 선생’으로 살아온 김용택 시인은 주로 2학년을 맡아 가르치셨다. ‘2학년은 정직과 진실이 통하는 나이’라는 김용택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아직 읽어보지 못한 동화, 위기철이 쓴 ‘아홉살 인생’이 퍼뜩 머릿속으로 지나갔다.
‘보는 법’을 깨닫게 하기 위해 시인은 반 아이들에게 자기의 ‘나무’를 정하게 했다. 처음엔 건성건성 보다가도 ‘네 나무 봤어?’하고 자꾸 물어보면 아이들은 어느 새 자기 나무를 자세하게 본다. 경수는 자기의 큰 느티나무를 통해 마을과 사람의 모습을 본 거다.
집에 있는 항아리 어항에서 사년째 살고 있는 논고동이 관상용으로 어항에 심어놓은 수초를 자꾸 갉아 먹길래 논고동을 작은 그릇에 따로 옮겨 놓은 적이 있다. 그걸 본 큰 아들 찬이가 난리가 났다.
“엄만 그렇게 뚱뚱한 몸으로 작은 방에 가둬 놓으면 살 수 있겠어? 큰 논고동을 저렇게 좁은 그릇에 담아 놓으면 논고동이 죽는단 말이야.”
그렇게 답답하면 네가 못쓰는 큰그릇을 찾아 직접 옮겨주라는 말만 하고 무심하게 며칠을 보냈다. 부엌을 들락거렸지만 적당한 그릇을 못찾았는지 아들은 며칠을 더 나를 닦달한다. 할 수 없이 큰 페트병을 옆으로 잘라 논고동의 새집을 마련해 주었더니 상추잎이며 사과껍질 같은 것을 먹이로 갖다 주느라 분주하다.
그저께, 아이가 다니는 학교 앞을 지나가니 문구점 주인 아주머니가 나를 부르신다.
“나 오늘 찬이한테 감동했어요. 6학년 형들이 도마뱀을 잡아 꼬리를 자르려고 하니, 찬이가 나한테 달려와 형들이 도마뱀을 죽일려고 하니 좀 살려 주라고 울면서 말하는데 정말 가슴이 짠하더라고요, 아이가 생물학자가 될려나 봐요.”
동물을 사랑한다고 생물학자가 되는 건 아니겠지만 도마뱀의 운명이 안타까워 아침부터 댓바람 눈물을 흘리고 다녔다니 나도 마음이 짠하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에게 많이 속상했냐고 물어보니
“응, 한번 자른 꼬리를 또 자르려고 했어”라며 침울해진다.
도마뱀은 결국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뻔한 일을 물어본 내가 잔인하게 느껴졌다.
아파트 숲에서, 삭막한 가슴을 지니고 팍팍하게 살아가는 부모를 두고서도 아이들은 생명을 사랑하고 감성을 키운다. 모두가 스스로 이루는 일이다. 나무 한그루를 보고서 전체를 보는 경수를 떠올리니 아들의 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1학년 때부터 집에서 기른 논고동을 통해 도마뱀의 생명까지 소중하게 여기게 된 걸까. 수채화 같은 아이들의 감성이 신비롭다.
“보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자세히 보는게 중요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자세히 보세요. 그러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자세히 보아야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어야 내 것이 됩니다. 그때야 공부가 인격이 됩니다.”
정답을 외우고 쓰는 것이 교육이 되어 버린 지금, 시인은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아는 것이 정답’이 되어버린 현실을 안타까워 하신다. 심지어 아이들 교육을 걱정하면서도 국민들 절반 이상이 6월 2일날 뽑는 교육감 선거를 모르고 있다고, 부디 현실을 잘 보고 살아갈 것을 당부하신다.
‘집 처마 밑에 매달려 얼음이 된 것.’
‘집 아래 거기 그렇게 내려오는 거기에 눈이 녹아서 내려가잖아요. 바람이 불어서 얼은 것.’
‘집에서요. 물방울이 똑똑 내려 가면서, 물방울하고 눈이 뭉쳐서 기다랗게 만들어진 것.’
‘지붕 물이 흐르다가 그 찬바람하고 그 눈이 뭉쳐서 얼은 것.’
고드름에 대한 시인의 물음에 2학년 아이들이 답한 말이다
“이 아이들 생각이 다 맞지요? 참 신기해요.”
삶은 늘 이렇게 모두의 힘을 합쳐 정답에 이르는 행위여야 함에도, 하나의 정답을 강요해서 한줄로 나란히 줄세우는 이 나라의 교육 제도에 시인도 많이 넌덜머리를 내며 살아 오셨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내 것이 되고, 내 것이 되면 관계가 되고, 관계가 되면 서로 맺어집니다. 관계를 맺으면 생각을 하게 되죠. 생각은 너무 중요합니다. 사람은 생각을 따라 살게 되어 있어요.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한 게 세상입니다.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대통령의 생각이 나라를 바꿉니다. 교육감, 교장의 생각이 학교를 바꾸고 선생님의 생각이 교실을 바꿉니다. 생각이 바른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지금은 생각을 잘 해야 할 때라고, 생각이 세상을 바꿀 때가 왔다고 말씀하시는 시인은 창의적, 창조적 삶의 소중함을 강조하신다. 살아 있는 건 생명에서 나오고, 생명은 자연에서 나오는 건데, 인간성이 파괴되었다는 건 곧 자연이 파괴되었다는 것이며 사람도 ‘자연’임을 말씀하신다. 당연하지만 새삼스러운 깨달음이다.
시인의 아들, 딸들은 모두 스물 세 살이 되어서야 대학에 입학했다고 한다.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고민한 시간들이 길어진 거다. 좋아하는 일을 찾았으니 이제 잘 살아 갈 거라고 말씀하신다. 나 또한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기까지 사십년이 걸렸다. 돌고 돌아서 결국은 혼자 찾아온 길이다. 그 누구의 방해도 없었던 삶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나무 한그루를 딱 보는 순간 생각이 달라진다.’
자기의 나무를 자세히 보도록 돕는 일.
딱 거기까지가 교육이 할 일이다.
키우는 것이 아니라 씨앗을 심는 딱 거기까지만.
서해식(르포 작가) / 2010-05-19 오후 12:5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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