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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세기의 교육(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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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5-12-09 14:01 조회2,2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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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세기의 교육, 그리고 영화 ''읽기'' 1. 우리 교육의 현재와 미래 교육이 바뀐다는 말이 지금처럼 실감나는 때는 일찍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비단 대학입시를 비롯한 제도권의 교육뿐만 아니라, 제도 교육 바깥에서도 현재와는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새로운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이 진지하게 탐구되고 실천되는 지금 우리 사회야말로 새로운 세기의 교육을 준비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름지기 모든 교육이란 개인에게 보다 삶의 지평을 넓혀주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개인이 자신의 삶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시대에 맞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세기를 준비하는 교육은 우리 시대의 변화와 동떨어진 것일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교육은 탈산업화, 정보화, 지식중심 사회를 지향하고 있으며, 이는 근본적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현재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교육개혁 작업도 근본적으로는 이와 같은 미래 사회에 맞는 인재를 키우기 위한 사회적인 요구에 발맞춘 흐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미래 사회에 맞는 인재란 어떤 사람입니까? 이미 언론에 수없이 보도된 것처럼 창의성을 갖춘 사람이라는 대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래 사회에서 창의성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미래 사회는 정보의 결핍이 문제가 아니라 정보의 과잉이 문제가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흔히 교육이란 고정된 지식(여기서 지식이란 어떤 특정한 정보를 말합니다. 예를 들자면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이라고 알게되는 것을 말합니다)을 전수받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알려주신 지식을 많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었고, 또한 산업사회는 그러한 사람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러나 정보화 시대에 개인이 알 수 있는 정보란 극히 한정된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중세 시대 최고의 지성인이라고 하는 괴테가 소장하고 있던 도서는 겨우 200권이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도서는 얄팍하기 그지없는 시디 한 장에 다 수록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인터넷은 말할 필요 없을 것입니다. 개인이 인터넷에 수록된 정보를 다 기억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무도 인터넷을 그렇게 사용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자료를 그때그때 얻기 위해 사용할 뿐입니다. 문제는 정보 자체가 아니라 내가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눈''입니다. 문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객관적인 사실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를 아는 ''주관의 능력''이며, 나아가 기존의 정보를 내 자신의 눈으로 해석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미래의 교육에서 창의성이 중요한 까닭입니다. 그러나 사실 창의성이란 모호하고도 일면적인 개념입니다. 창의성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내 삶을 바로 보는 능력입니다. 아이가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명확히 하지 않는다면 창의성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능력이 아니라, 경쟁에서 남을 누르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더구나 내 삶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아이가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지도 심각한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며 가장 중요한 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삶, 자신의 가치관을 세워주는 것이며, 그 삶과 가치관이 남과 평등하고 조화롭게 온존해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2. 영화 ''읽기''가 왜 중요한 문제인가 새로운 시대의 교육에 필요한 것은 아이들이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정립해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영화는 가장 좋은 소재일 수 있습니다. 영화야말로 삶의 이야기이며, 영화 속의 갈등이야말로 가치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몇 안되는 순간이며, 영화의 상상력이야말로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외부세계로 확장시킬 수 있는 창의성을 발휘하게 하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소재로 가장 근본적인 것은 문학작품이라 하겠습니다만, 아이들이 문학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래적인 거부감과 문학 자체의 근본주의적 속성 때문에 문학과 친숙한 아이들은 매우 드문 것이 현실이며, 문학으로 가기위한 가교로도 영화는 충분히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영상에 친숙한 지금 세대의 모습에 걱정을 표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만, 어차피 아이들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것이며, 현재는 영상의 시대이고,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각정보처럼 하나의 정보에 수많은 가능성을 담아내고 있는 정보는 극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를 잘 짓고 잘 해석하는 사람을 매우 존중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하나의 시어 쏙에 숨겨진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도 교육에서 문학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까닭 역시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으로 하나의 영상 속에서 또다른 세계를 읽어내는 능력과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영상을 읽어내고 설명할 수 있다면 언어 또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영상이든지 언어이든지 기존의 정보에 자신의 삶의 경험과 가치를 투영해 내는 것이지, 어떤 종류인지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근본적으로 필요한 능력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입맛에 맞는 종류의 정보에서부터 시작하면 쉽다는 사실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교육에서 영화라는 매체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근본적인 까닭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조건 영화를 본다고 그것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감독의 의도대로 웃고 떠드는 그런 영화 ''보기''는 그저 주어진 지식을 암기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더구나 영화는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요소와 함께 부정적인 요소 또한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읽어야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영화''읽기''란 일방적인 감독의 말하기가 아니라 평등한 대화여야 합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삶과 가치관으로 자신이 감상한 영화에 대해 발언하는 것이 좋은 영화''읽기''이며 그 자체로 교육입니다. 3. 좋은 영화란 없다 우리는 흔히 교육과 영화를 추천목록이라고 하는 방식에 의해 연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영화 ''보기''를 시킬 때는 의미가 있습니다. 본받을 좋을 영화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연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입니까? 아무리 상투적이고 흥미위주의 영화라 할지라도 그 밑바탕에는 특정한 가치관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디즈니의 영화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특정한 가치관이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판단해서 좋은 영화라는 것은 그 특정한 가치관을 그만큼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설교적이라는 것입니다. 설교가 위험한 까닭은 아이들에게 가치관을 스스로 키워나갈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아이들 스스로의 생각에 의해 가치관을 키워나가고 그것이 비록 우리 세대와는 다른 것일지라도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방식과 내용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나름대로 의미있는 것이고 바로 진정한 아이들의 삶이 됩니다. 결론적으로 그 자체로 ''좋은 영화''란 하나의 허상입니다. 구체적인 아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삶에 대한 의문을 던져주고 고민을 안겨주는 영화가 결과적으로 좋은 영화일 뿐입니다. 세일러문보다 다큐멘타리가 더 교육적이라고 쉽게 주장하는 것은 영화 ''보기''의 방식일 뿐입니다. 다큐멘타리를 보고서 '' 아! 저 개똥지바귀가 이렇게 알을 낳는구나!''라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말로 교육적으로 중요한 문제인지는 의문입니다. 이 보다는 세일러문을 보더라도 ''왜 쟤는 저렇게 행동할까? 나라면 어떻게 할까? 어느 것이 더 맞는 행동일까?''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더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 자체가 아이들 스스로는 매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아이 스스로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 역할이 바로 부모님들이 하셔야될 역할입니다. 물론 이것이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좋은'' 영화를 골라 아이들에게 보라고 강요하는 것이 교육적인 방법의 전부라고 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본래부터 좋은 영화란 존재하지 않으며, 좋은 영화가 되는 것은 ''영화 + 알파''이기 때문입니다. 4. 아이들과 함께 영화 읽기 이 알파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세심함과 부지런함입니다. 일단 영화 읽기보다 아이 읽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어느 때나 다 좋은 영화란 없는 것이라면 내 아이의 현재 상태와 흥미를 고려한 영화 선정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영상문화에 익숙한 부모님이라면 아이가 어떤 비디오를 골라도 이를 바탕으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지만, 이는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또 아이가 스스로 비디오를 고르도록 한다고 하더라도 부모님이 아이에게 이러이러한 비디오를 같이 보자고 권유하는 것까지 막는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의미의 추천목록이 필요합니다. 장르별로 그저 교훈적인 내용이나, 어른의 상식의 눈으로 봐서 좋을 것 같은 비디오를 나열한 목록이 아니라 아이가 처한 상태에 따라 나눈 비디오의 목록이 있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먼저 한 번 그 비디오를 부모님이 먼저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은 검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꼼꼼히 정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설교나 훈계로 이어지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아이 스스로가 문제의 해결책을 찾도록 유도해야합니다. 따라서 정답이 있는 질문보다는 다양한 가치관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와 같은 작업이 끝나면 아이와 함께 자연스럽게 영화를 보면서 대화를 나누면 아이는 영화 속에서 감독이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해결책을 내놓기도 하고, 다른 방법을 찾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점점 감독의 생각을 읽어내고, 자신의 생각과 비교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재미를 붙입니다. 이 때부터 아이는 자신이 그 생각을 쉽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보다는 스스로 보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찾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렇게 발전하면 아이는 부모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영화를 그리고 영화 속에 담기 우리 사회를 읽기 시작합니다. 여기까지 이끌어주는 것이 바로 부모님이 해야할 역할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님 스스로 자신의 가치관이 얼마나 열려있나를 탐구해 보는 일일 것입니다. 아무리 아이에게 열린 마음으로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하려고 해도 스스로의 가치관이 닫혀있다면, 결국은 아이에게 정답을 요구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영화읽기도 다른 모든 교육처럼 배우는 사람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도 배워야만 진정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기를 준비하는 아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영상정보를 제대로 이해하느냐 못하느냐는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을 키워주기 위한 부모님의 노력은 미뤄질 수 없는 시급한 문제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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