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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79호 천천히, 깊게, 생각하며, 토론하며, 느끼며 읽는다. 슬로리딩, 생각을 키우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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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7-01-11 14:34 조회1,3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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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잘한다’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어떤 과목이 제일 어려운가 물으면 대부분 ‘국어’를 꼽는다.

우리는 초등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읽고, 듣고, 쓰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책은 어렵고 재미없고, 내 생각보다 대중의 판단에 따르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무엇 때문일까. 고민은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슬로리딩, 어떻게 천천히 읽을 것인가

EBS 다큐프라임 제작진은 용인시 성서초등학교5학년 학생들과 3명의 선생님이 함께 1학기 동안슬로리딩을 시도했다. 슬로리딩은 말 그대로 천천히 읽는 훈련이다. 다독, 속독이 정답이라고 여기는 최근의 독서 경향에도전장을 던진 교육 실험이었다. 학생에게 천천히,깊게, 생각하며, 토론하며, 느끼며 읽도록 했다. 책을 읽고 알아낸 사실을 친구와 공유한다. 이를 토대로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세운 다음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도록 이끌었다. 슬로리딩 수업은 그저천천히 읽는 것이 아니라 오감으로 읽고, 생각하며읽고, 스스로 읽는 것이다. 

 

일본의 슬로리딩 학습한 학생들, 사회 저명인사로 활동

슬로리딩 수업은 1960년대 일본 고베시 나다학교의 하시모토 교사가 처음 시작했다. 수업은 30여 년간 진행됐는데 그때 수업을 받은 이들이 현재일본의 학계, 법조계, 문화·예술계의 저명인사로활동하고 있다. 

“그때는 그저 힘들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된 뒤에 깨달았습니다. 슬로리딩 수업은공부건 일이건 그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준 수업이었습니다.”

카이도 유이치(변호사/일본변호사협회 사무총장)
성서초등학교의 슬로리딩 수업도 주목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 지난 7월, 1학기 모든 과정이 끝난 뒤아이들은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그 변화는 독서 행태와 독서 능력을 점검하는한 조사에서도 밝혀졌다. 놀랍게도 60여 명 학생들의 독서 능력이 1학기 동안 33% 성장한 것이다. 
 

성장과 변화, 교사들의 노력으로 얻은 결과

이 실험이 ‘성장과 변화’라는 긍정적 결과를 얻기까지 선생님들의 노력이 가장 컸다. 선생님들은 국내 초등학교에서 처음 시도된 슬로리딩 수업을 위해 매주, 매시간 수업 방법과 수업 진행 상황을 고민했고, 아이들의 반응과 적응 속도를 고려하며 어떻게 이끌어 갈지 연구했다. 국어 수업의 1차 목표는 읽기, 말하기, 듣기, 쓰기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있다. 그리고 최종 목표는생각할 줄 아는 아이, 바르게 깊게 생각하는 아이,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바로 이 최종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렸다. 
 

스스로 읽다

성서초등학교 5학년이 경험한 아주 특별한 수업이야기는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학기 동안 국어 수업을 한 권의 소설,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누가 다 먹었을까』로 수업한다. 전국 초·중·고 국어 교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100명 중72%가 천천히 읽어 보기에 매우 적합한 책이라고추천했던 책이다. 성장소설로 아름다운 우리말이풍부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수업을 슬로리딩 수업이라고 명명했다. 슬로리딩의 첫 번째 특징! 책을 미리 읽었거나읽지 않았거나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아이들은 함께 책을 읽는다. 할아버지가 늘 머물렀던 사랑채, 사랑채를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서 선생님은 그림을 그리고, 책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꼼꼼한 설명이 이어진다. 정지용의 향수 시를 읽고, 노래를 듣고, 그 넓은동쪽 끝으로 우리 아이들의 마음도 달려간다. 시를이해하기 위해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바로 알아야만 한다. 아이들은 그림을 그린다. 시인의 마음과나의 마음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우르르 교실 밖으로 나간다. 학교 교정에 있는 나무들을 살펴본다. 아직 이른 봄이라 나뭇가지는 앙상하지만, 산수유도 있고 때죽나무도있다. 주인공의 동네에 있던 나무와 우리학교에 있는 나무와 비교해보는 시간, 국어 수업인데 사회 수업 같기도 하고 과학 수업 같기도 하다. 일주일쯤 지나자 아이들 책상에 사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보니 어이딸, 지레와 같이모르는 단어가 계속 등장한다. 우리말에는 단어 하나에 여러 가지 뜻이 담긴 다의어와 동의어가 있다.사전에서 단어를 찾았다면 그 단어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고 넘어가야 한다. 아이들이 꼭 알아야 할단어를 선생님이 직접 뽑고 아이들이 그 뜻을 찾아적도록 했다. 단어의 뜻을 찾고 문장을 이해하고 그래서 글의흐름을 파악한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음으로느끼고 나의 생활과 비교도 해보는 책 읽기를 하면서 절대 빨리 읽을 수 없다. 슬로리딩은 무조건 천천히 읽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그리고 깊게 즐겁게 읽는 것이 목표이다. 선생님은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방법을 알려주는것이다. 즉, 물고기를 잡아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스스로 하는 공부, 이것이 바로 슬로리딩이다

아이들은 학교수업이 끝난 뒤 동네 도서관을 찾았다. ‘창씨개명이 무엇이다’라는 것은 국어사전에도 있고 학교 도서관의 역사책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아이들은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나 보다. 한시간 넘게 겨우 책 한 권을 찾아 ‘창씨개명 포고령’전문을 읽어본다. 창씨개명에 대한 토론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불이익을 당해도 민족혼을 지키기 위해서는 창씨개명에 반대해야 한다는 동의를 이끌어 냈다. 강제로이름을 바꾸는 것은 정신까지 바꾸겠다는 뜻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토론을 통해서아이들은 생각을 정리해 간다. 슬로리딩의 토론 수업은 일회성이 아니다. 처음에는 우왕좌왕 많이 혼란스러웠다. 친구들 앞에서이야기하는 것도 쑥스럽고 논리를 세워 주장하는것은 정말 어려워했다. 토론 수업이 8차까지 이뤄지는 동안 아이들은 점점 진지해졌다. 생각도 분명해지고 자기의사 표현도 정확해졌다. 

 

변화는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나타났다

아침 자습시간, 다들 책 한 권씩 읽는데 아이들이 읽는 책은 점점 더 두꺼워진다. 하루에 한 권씩읽던 아이들이 일주일 넘게 책 한 권과 씨름하기도한다. 어렵고 긴 이야기를 끈질기게 읽는 자세, 이것은 중요한 변화이다. 수업 시간에 하나의 과제가 주어졌다. 요즘 내가읽고 싶은 책은 무엇인지, 만약 책을 살 수 있다면어떤 책을 고를지 선택하는 것이었다. 아이들 관심사가 이렇게 넓고 다양하다니! 불과 한 학기만에세상에 많은 이야기에 눈을 뜨고 있었다. 읽고 싶다은 책이 많다는 것은 궁금한 것, 알고 싶은 것많아 졌단는 뜻이다.


오감으로 읽다

슬로리딩의 첫 번째 활동은 ‘나의 연표 만들기’였다.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나의 연표를 작성하고뒷면에 작가의 연표를 작성하여 비교해보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연표를 만들고 나서 부지런히책을 뒤적인다. 책을 읽을 때 그 책의 저자가 누군지 알아보는 건기본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책에 실린 간단한 이력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열심히 책을 살펴보며 소설가의 인생과 나의 인생, 소설가가 살았던 시대와지금을 비교해본다. 두 번째 활동으로는 ‘삽화 그리기’였다. 아이들은한 단원의 내용을 조금씩 나눠서 한 단락씩 맡았다. 스케치북 한 면에는 책 내용을 적고 그 옆에는내용을 그림으로 그려야한다. 책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려면 핵심적인 부분이어디인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아이들은 먼저 생각을 해야 한다. 활자로 된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표현력을 보는 게 수업의 핵심이다. 아이들의그림을 모아 그들만의 싱아 그림책을 완성했다. 선생님은 여러 가지 고민을 했다. 바른 책 읽기를통해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자는 목표로 책을 천천히 읽으면서 내용을 깊게 파악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수업을 계획했다. 또 학년에 맞는 국어과목 교육 목표도 달성할 수 있으면서 말이다. 슬로리딩이 시작된 3~4월, 선생님들이 가장 중점을 둔 수업이 바로 책 읽기였다. 책을 잘 읽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소리 내어 읽는 것이다. 책 한권을 다 읽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갔던 슬로리딩의 원조인 서당 체험을 나섰다. 서당에서는 첫 번째로 여러 사람이 함께 있어도 소리내어 읽는다. 두 번째로 한 단락을 읽고 공부했으면무조건 외운다. 서당에서 한자 공부를 마치고 난 아이들은 소리내어 읽는 것에 많이 익숙해졌다. 학교로 다시 돌아와서는 ‘끊어 읽기’ 연습을 시작했다. 끊어 읽기를 제대로 해야 읽을 때 문장의 뜻을 정확히 파악할 수있다. 아이들은 소리 내어 읽으면 절대 빨리 읽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천천히 읽으니 상상하게 되고운율을 살려 노래처럼 읽으면 목도 안 아프다고 덧붙였다. 슬로리딩 다음 수업은 경험하고 느끼며 책을 읽는 것이다. 아이들은 체험활동을 통해 책으로 보는것과 실제 보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공부했다. 아이들은 본 것을 토대로 새로운 글도 지어보았다. 한 아이는 “올해 슬로리딩을 하면서 체험학습을세 번 했는데, 작품 속 내용과 계속 연결된 느낌이들어요.”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슬로리딩이 아이들의 체험학습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기존의체험학습이 끊기는 느낌이었다면 책 한권을 통해체험학습이 연결되고 아이들이 더 많은 것을 느낄수 있다는 것이다. 요리를 만들어보는 시간도 가졌다. 소설 속에 나오는 피난 음식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요리 만드는 것이 즐겁기만 할 뿐, 피난살이가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영화를 통해 전쟁에 대해 더 깊이 배워보기로 했다. 전쟁 중 헤어진두 형제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은 <태극기 휘날리며>를 관람했다. 아이들은 영화를 통해 소설 속에나왔던 전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마음이 움직이면 생각이 깊어지고 생각이 달라진다. 이제는 아이들이 직접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시작했다. 경훈이와 성윤이는<6·25 시간여행>(염경훈, 박성윤)이라는 영상을 제작했다. 경훈이의 영상을 본 후 선생님들은 새로운 수업을 기획했다. 책내용을 이해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오감을총 동원하는 것이다. 작가가 자신의 생활을 글로 표현했듯이 아이들도자신의 학교생활을 영상으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은 방과 후 시간을 이용해 영상을 제작했다. 아이들이 만든 작품은 <길에서 우연히 오천 원을발견한다면>(윤정현, 한지만, 조윤성, 양승도), <스마트폰 중독에 걸린 아들과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엄마의 고군분투>(차우진, 황유선, 서희), <사이보그를 이용해서 경쟁자를 방해하는 친구의 질투>(김서영, 서준호, 유태균, 배예원), <2400년 나빠진 국가 경제를 살려내기 위한 노력>(김주연, 김민선, 김태준) 등 주제도 다양했다. 국어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아이들, 책 완전 사용법을 터득한 아이들, 처음 해본 연기와 촬영, 처음으로 고민해서 만들어 본 나의 이야기. 이 모든 것이 국어 시간에 이루어졌다. 100점짜리 성적표 보다 중요한 건 바르게 말하고 생각을정리하고 표현하는 일이다. 오감을 동원해 소리 내어 읽고, 그리고 말하는 동안 생각의 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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