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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치 | 223호 강원도 학교운영지원비 폐지됐어요~ 학교운영지원비 폐지 쟁취 투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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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7-09-05 16:43 조회9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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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년 전 이맘때였습니다. 먼 훗날 역사의 현장에 내가 있었다는 그 말이 하고 싶어서 3.8 세계여성의 날 100주년기념대회에 참가했지요.(사실은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참가했습니다) 강원도 횡성에서 몇몇 언니들과 함께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 때 서울광장행사장에서 어떨결에 쓴 학교운영지원비 납부거부서 한 장이 2년 동안 나와 우리 아들, 그리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참 힘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론 칭찬을 많이 들었기에 그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행사장의 여러 부스 가운데 한 곳에서 학교운영지원비 납부거부서를 받고 있더군요. 학교 운영지원비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납부거부서를 썼습니다. 쓰고 나니 괜히 혼자서만 쓰면 그럴것(?) 같아 횡성에서 같이 갔던 언니들 가운데 중 학교 자녀를 둔 언니들도 꼬드겨서 같이 쓰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 납부거부서가 학교에 접수되고 난 뒤“학교 운영 지원비를 내라, 안 내면 안 된다”며 계속해서 연락이 오는 겁니다. 어느 순간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제서야 우리 아들이 학교에 볼모(?)로 잡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존심이 있지 내가 옳다고 생각해서 한 일인데 이제와 내겠다고 하기에도 뭐하고, 그렇다고 혼자 가만히 있기에도 뭐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아들은 담임 선생님을 잘 만난 덕분인지 선생님께서도 학교 운영지원비지로는 주어도 뭐라고 구박하지는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와 같이 납부거부서를 썼던 다른 여자 중학교에서는 담임 선생님이 직접 전화를 해서 제발 학교 운영 지원비를 내달라고 읍소(?)를 하시거나, 안 내려면 학교 운영 지원비를 안 받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라고까지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 학부모님은 담임 선생님이 학교 운영 지원비를 대신 냈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내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가만히 손 놓고 있을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아는 사람을 총 동원해서 납부거부서를 쓸만한 사람들은 죄다 쓰게 했지요. 그렇게하니 횡성에서 총 16명의 학부모들이 납부 거부서를 쓰게되었습니다. 장날이면 학교 운영 지원비 거부 안내문을 돌리고, 학교 앞에서 전단지를 돌릴 용기는 차마 나지 않아 교문 멀찌감치에서 나눠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지역 교육청과 도 교육청에 전화해서 학 교 운영 지원비를 법적으로 내는게 맞는거냐며 따지기도 하였지요.

그런데 또 어느 순간 덜컥 겁이 났습니다. 아니, 학부모가 전화를 했으면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면 될것이지 학생이 몇 학년 몇 반이냐고 물어보는데 참 그걸 대답해줄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제가 전화를 한 두번 한게 아니거든요. 며칠째 연달아 하는데 같은 사람이 계속 전화한다는 걸 모르게 하려고 이 부서 저 부서 돌아가며 전화를 했습니다. 민주 노동당에도 전화를 하고, 전교조에도 전화를 하고…….

그러던 11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농민대회가 서울에서 있었는데 우리 지역의 국회의원이 이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명색이 농촌 지역인지라 농심(農心)을 달래려고 했는지 서울까지 올라온 지역 농민들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지역에서 만나지 왜 서울에서……. 어쨌든 농민들에게 힘든게 무엇이냐는 등 이말저말 물어봅니다. 그러더니만 아줌마들도 할 말 있으면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기세 좋은 언니들이 가만히 있는 겁니다. 에라, 모르겠다! 라며 농업문제는 아니지만 국회의원이면 교육문제도 힘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학교운영지원비 얘기를 꺼냈지요. 그랬더니 대뜸 자기도 학교운영지원비에 대해 알아보겠다며 연락처를 가르쳐달라고 합니다. 허걱! 또 괜히 겁이 납니다. 얼굴 마주보며 얘기한 사이인데차마 연락처를 안 가르쳐줄 수도 없고…….

그런데 정확히 이틀 뒤 연락이 왔습니다. 강원도 교육청 차원에서 학교운영지원비를 없애기로 했다나요. 아니,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입니까? 내가 그렇게 여기저기 전화를 해도 모르쇠로 일관하더니만……. 어쨌든 사실이었습니다.

일단은 당장 예산이 없어 2009년부터는 면 단위 학생들을, 2010년도에는 군단위 학생들을 지원하고 그리고 2011 년도에는 시단위 학생들에게 전면 학교 운영 지원비를 지원하겠다는 것입니다. 읍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들은 작년에도 학교운영지원비 제1차 독려 안내장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2차, 3차독촉장이 이어졌지요.

참 재미있는 일도 있었습니다. 납부 거부서를 함께 썼던 제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납부거부서를 쓰기는 했는데 엄마도 아이도 너무 힘듭니다. 엄마는 엄마대로 학교에서 전화를 받지요, 아이는 아이대로 선생님한테 얘기 듣지요.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니 엄마도 버티기가 힘들었나 봅니다. 그래도 1년을 잘 버텼는데 말입니다. 마침 학교에서 또 전화가 와 견디기 힘들었던 친구는 이제부턴 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학교가 대뜸 안 냈던 1년치도 마저 내라고 했답니다. 제 친구는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지나간 1년치도 내라고 하면 지금부터도 아예 안 내겠다”고 했더니 학교 측에서 그냥 지금부터 내시라고 했답니다. 이 때 우리들은 알았습니다. “아! 학교가 장사하는 곳이었구나.” 그래서 제 친구는 3학년 한 해 학교운영지원비만 내고 아이를 졸업시켰습니다.

올해 3월 아들이 학교 운영 지원비를 안 내도 된다는 안내문 한 장을 들고 왔습니다. 강원도에 학교운영지원비가 폐지되기까지 우리들의 힘이 컸다고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한바탕 웃었습니다. 지나온 2년이라는 세월이 참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먼 지방으로 돈 벌러 가셨지요. 할머니와 살았던 여자 아이는 참으로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한 달에 450원 내는 육성회비도 못 냈지요. 어느 날 선생님이 육성회비를 가져오라며 수업시간에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동무들 다 보는 앞에서 집으로 쫓겨가는 어린 아이였지만, 그 아이는 아버지도 할머니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서는 몰랐지만 어느 건설현장에서 등짐지는 아버지를 어떻게 원망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자기 하나 키우겠다고 청바지 공장에서 실밥 따는 할머니를 어떻게 원망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저 언젠가는 육성회비를 안 내도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꿈만 꾸었습니다.

그리고 먼 훗날 어른이 되어 ‘그 때 정말 불쌍한 사람이 하나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집으로 보내봤자 빈손으로 올 걸 뻔히 알면서도 자기가 가르치는 아이를 집으로 돌려 보낸 진짜 불쌍했던 선생님. 그 기특한 아이는 그래서 먼 훗날 학교운영지원비 납부거부서에 쉽게 서명을 했나 봅니다.

이제보니 그건 어떨결이 아니라 ‘운명’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내 아들에게는 학교 운영 지원비가 없는 학교를 만들어주고픈 엄마의‘소망’이었나 봅니다.

김병선(강원도 횡성중학교 학부모/강원도 여성농민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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