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마당

학부모신문

Home > 자료마당 > 학부모신문

기획특집 | 319호 미래교육의 핵심:글로컬 평화교육1)

페이지 정보

본부사무처 작성일18-06-05 18:29 조회1,068회 댓글0건

본문

나라사랑교육과 안보교육

20147, 서울 강동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진행된 나라사랑교육이라는 이름의 안보교육은 아이들에게 잔혹한 북한의 고문 장면을 만화로 보여주었다. 피스모모와 전쟁없는 세상, 열린군대를 위한 시민모임,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전쟁교육없는 공동체를 위한 시민모임이라는 연대체를 꾸려 무작위로 진행되고 있는 나라사랑교육 실태 파악을 위해 노력해왔다.

안보교육(Security education)은 내가 소속된 공동체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불가피한 교육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 외부의 적으로부터 어떻게 나와 우리 가족, 우리 민족을 보호할 것인지에 대해 교육함으로써 위기상황이 왔을 때 적을 제압하고 무찌르기에 충분한 정신무장을 제공하며 궁극적으로는 철저한 안보교육으로 국가안보와 항구적 평화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안보라는 주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적이 필수적이다. 항상 공격의 틈을 노리고 경계를 늦출 수 없게 하는 외부의 적은 우리의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제거되어야 할 존재인 것이다. 국가중심적안보교육을 정당화하는 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것은 외부의 적은 나 또는 우리 민족과 같지 않다는 것에 공동체적 합의를 만들어내는데 있다.

외부의 적이 나와 같은 존재라는 것은 인정하고 나면 그를 제압하고 무찔러서 도달해야 하는 평화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 생기므로 안보교육은 불가피한 악마화(Demonization)를 수반하게 된다. 이렇게 악마화를 동원하는 안보교육은 분단 상태를 지속하게 하는 심적 토대와 구조를 만들어가는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되며 이런 이유로 공교육기관은 국가가 체제유지를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지지를 확보하는데 결정적인 장소가 된다.

 어떤 평화를 이야기하는가

 안보라는 주제는 항상 평화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때의 평화는 나와 나의 공동체의 평화이지 외부의 적의 평화는 고려되지 않는다. 내 가족의 안전함이지 적의 가족의 안전함은 아니다. ‘안보를 통한 항구적 평화라는 것은 결국 나와 내 공동체 그리고 내편, 나의 우방의 평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의 평화항구적이라는 표현을 수식어로 두기에 전혀 적합하지 않다. 안보를 공고히 하고자하면 할수록 평화는 점점 더 요원해진다. 불안을 제거하기 위한 안보의 노력으로 무기를 구입하고 A국가가 구입한 무기는 B국가를 자극하여 더 강한 무기를 구입하는 동기가 된다. A국가의 안보에 대한 노력은 B국가의 안보불안의 원인이 되고 B국가가 그 안보불안을 해소하는 행위는 다시 A국가의 안보불안의 원인이 된다. 안보를 위해 쏟는 노력과 비용은 갈등을 유발시켜 안보적 불안을 초래하는 것이다.

 

안보교육은 어린이 및 청소년들에게 불안불확실성을 자극함으로써 불안의 상상력을 함양한다. 이렇게 자리 잡은 불안의 상상력은 불확실한 것들을 조금 더 확실하고 통제 가능한 범위에 두기 위한 군사적 시도들에 정당성을 제공해주며 최대한의 국가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군사적 무장에는 상한선이 없다. 이렇게 상한선 없는 안보지향 체제에서는 국가안보라는 공동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포기하고 위임해야 하는 권리들이 발생한다. 국가보안법을 통해 제한받는 요소들이 그러하다. 국가안보가 잘 지켜지기 위해서는 힘이 센 아저씨, 힘이 센 남자, 힘이 센 아버지, 힘이 센 오빠와 형이 이 나라를 지켜주어야 하며 그들의 수고를 덜어주고 함께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 어린 남성들을 힘이 세고 멋진 남성, ‘진짜 사나이로 성장해야 하는 공동의 목표의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안보교육은 심각한 젠더 불균형을 초래해왔으며 진짜 사나이들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상호 검열하고 등급을 나누는 문화를 정당화해왔다.

한국교육은 세계시민교육국제이해교육을 통해 수많은 국제적 이슈들에 대한 지식을 제공해왔기 때문에 대부분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물 부족과 기후온난화, 자원고갈과 환경오염, 원자력발전과 핵전쟁의 위험성을 알고 있다. 전 지구적인 가치에 대해서도 굉장히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전 지구적인 가치들을 추구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에 집중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도 한국의 안보가 위협받는다는 전제가 놓이게 된다면 그 맥락이 달라진다.

국가안보를 통해서 세계평화를 가져오겠다는 의지는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면서 강자의 주도 아래 약자가 관리되는 힘의 시스템을 정당화한다.

이러한 안보교육의 프레임은 아이들의 일상, 어른들의 일상, 현대사회의 일상 속에 스며든 권력 관계와 경쟁중심 성과주의 경험과 연계되어 외부의 적을 규정하고 제압해나가는 방식으로 삶의 장면 속에 촘촘하게 엮어져 들어간다.

현 교육체제 속에서의 지속적인 긴장, 경쟁, 상급자 또는 권력자의 명령에 대한 복종의 경험, 침묵과 부동자세의 강요, 줄 세우기와 극기 훈련, 군사훈련의 경험, 체벌과 학교폭력의 경험은 몸과 마음을 동시다발, 지속적으로 마취시켜 진짜 사나이의 삶의 방식을 연마시키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또 상처받은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마음에 굳은살이 배게 하는 경험은 무감각함을 가져오고, 그러한 무감각은 각 존재의 섬세하고 풍부한 감수성을 퇴화, 파괴시킨다. 이렇게 불안과 불확실성은 서로에게 양분이 됨으로써 끝없는 안보불안의 악순환을 반복하게 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평화인식과 평화교육

한국사회에서 평화라는 단어는 비둘기통일이라는 주제와 연결된 상상력 안에서 논의되어온 경향이 있다. 순백색의 비둘기로 상징되는 평화는 일상에서 경험되고 실천될 수 있는 구체적인 현장으로서의 평화가 아닌 순결하고 성스러운 이상의 영역으로 국한되고 지향으로 축소되어 인식되기도 한다. 평화교육은 이러한 인식에 기여하기도 하고 이러한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기도 해왔다. 2018년 현재 평화교육 시민사회의 지형은 크게 비폭력 의사소통, 회복적 정의에 근거한 회복적 생활교육, 갈등 해결/전환/조정 교육, 평화통일교육, 비폭력 트레이닝, 글로컬 평화교육의 여섯갈래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1. 참조).

 

학부모신문 319호_0531-6.jpg

한국에서 평화교육은 크게 평화통일교육대안적 평화교육의 두 가지 흐름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대안적 평화교육은 통일지향 평화교육이 아닌 다양한 형태의 평화교육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위 표에 있는 대부분의 단체들은 각시도별 교육청 및 지자체와의 업무협약을 통해 초··고등학교나 공공기관에서 다양한 평화교육 연수를 진행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공식교육영역과 밀접하게 활동하는 평화교육 단체들은 의도와는 달리 공교육 현장의 수요에 부응하게 되면서 평화의제 및 평화운동 현장과 멀어지는 경향을 보여 왔다. , 평화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는 현장들이 평화교육의 내용이 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한반도 대전환과 평화교육의 과제

2018427,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던 순간, 그 찰나의 탈분단으로부터 필자는 평화교육의 가능성을 찾는다. 악마화를 통한 적대화, 적대화를 근거로 한 안보화의 악순환을 벗어나는 것은 경계를 흐리는 시도, 경계를 넘나드는 작은 일탈이다. 이에 한반도 대전환에 맞추어 요청되는 평화교육의 과제를 아래와 같이 제안한다.

첫째, 한반도 대전환의 시기에 요청되는 평화교육은 한반도에 국한되지않는 글로컬 평화교육이다. 일상의 관계들로부터 국가 간의 관계를 바라보고, 자기 지역의 문제로부터 세계의 문제를 발견하고, 다른 지역 및 국가와의 연계적 사고 속에서 분단 이후를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는 비판적이며 통합적인 글로컬 평화교육이 요청된다. 둘째, 글로컬 평화교육은 다양한 사회운동의 영역과 연계적이고 통합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 생명과 환경, 인권, 성평등, 민주주의, 지속가능성과 공존 등 평화의 가치에 기반하여 시민의 평화감수성과 평화역량 증진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셋째, ‘통일의 당위성에서 벗어난 탈분단 평화교육의 준비가 필요하다. , 통일을 당위이자 유일한 목표로 설정하는 방식의 통일지향적 평화교육을 넘어 한반도 평화의 다채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상상해 볼 수 있도록 탈분단 평화교육에 대한 기획과 준비, 실행이 요청된다.

넷째, 글로컬 평화교육의 실천을 위해 서열주의와 권력 중심 구조를 탈피하려는 최선의 노력이 필요하다. 시민사회에 존재하는 서열과 위계를 역할의 다름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 내부로부터의 평화감수성과 평화역량 증진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요청된다.

다섯째, 평화교육은 평화를 선택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 대해 마음껏 상상해볼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평화를 지향하는 시민으로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앞서 평화를 가치의 중심에 두고 자신의 결정을 시뮬레이션해보는 과정, 그 과정속에서 차이와 갈등을 비폭력적으로 다루며 정치적인 존재로서 각자의 자기 결정들이 어떻게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확장될 수 있는지 경험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한반도 대전환의 시기에 요청되는 평화교육은 일상의 사소한 듯 보이는 폭력들이 실상 한반도가 겪어온 뿌리깊은 분단 폭력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드러내고, 그 폭력의 구조를 해체하며 개인의 삶을 바꾸어나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평화교육의 경험은 앞으로 이행되어 갈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있어 지속가능한 평화와 공존을 위한 시민 평화역량의 기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꼭 짚어야 할 몇 가지 지점이 있다. 첫째, 내적 평화, 개인 간의 관계, 공동체 내부로만 갈등을 축소하여 평화교육을 탈정치화하는 흐름은 경계되어야 한다. 비판적이고 정치적인 행위로서의 평화교육은 대인관계 또는 내적평화, 치유와 화해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폭력적인 구조에 맞서며 비폭력적으로 저항하고 구조를 바꾸어나갈 수 있도록 개입할 수 있는 시민들을 만나는 장으로서 역할 해야 한다. 학교 폭력, 직장 내 폭력들은 사회구조적인 폭력의 반영이다. 분단국가로서 강화되어온 안보중심주의가 형성해온 사회 내 권력 관계에 따른 위계와 서열이 촘촘하게 스며들어온 일상은 곧 첨예한 평화운동의 현장이 된다.

둘째, 평화교육의 치유자, 조정자로서의 위치성을 경계해야 한다. 평화교육을 통해 내적 평화를 추구하고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접근, 또는 제 3자로서 갈등을 조정하겠다는 접근들이 간혹 발견된다. 이러한 접근은 평화교육을 개인 내부와 개인 사이에 고정시켜 사회의 구조적 폭력과 일상적 폭력사이의 연계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일상의 변화가 구조와 사회의 변화로 연결될 수 있는 지점들을 차단하는 부수적 결과를 발생시킨다. 따라서 모든 이의 존엄과 갈등의 비폭력적인 전환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평화교육은 지속적으로 개인과 사회, 일상과 구조, 미시와 거시를 넘나드는 태도를 취해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 평화교육을 교육의 부수적인 영역쯤으로 인지해서는 안 된다. 평화교육은 평화라는 의제를 공교육과 연결하고 접목시키는 경계의 영역이다. 더 많은 시민들이 평화활동가가 될 수 있도록 초대하며 평화에 대한 상상력이 통일과 전쟁을 넘어 일상의 다양한 층위로 확장될 수 있도록 하는 평화운동의 외연 확장의 장인 것이다.

예를 들어, 피스모모가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들과 만날 때 병역거부 운동에 대해서 언급할 경우, 이것은 평화운동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평화교육은 교육의 부수적인 영역이 아니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벗어나 분단 너머를 상상하고 탈분단의 과정을 만들어가는 시민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는 글로컬 평화교육은 필수불가결한 시민운동의 일부이다.

 한반도의 대전환? 일상의 대전환!

아프리카의 빈곤에 슬퍼하고 해결 할 방법을 고민하는 학생들이 교실내 집단 따돌림의 직·간접적 가해자인 아이러니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지금, 북한의 군사훈련은 안 될 일이지만 한미연합 군사훈련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라는 아이러니가 상식인 것 같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평화가 무엇이냐에 대한 교육이 아니라 그렇게 알고 있는 것들이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교육이어야 하지 않을까

지난 해 피스모모는 창립 5주년을 맞아 전쟁의 북소리에 춤추지 않는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개최한 컨퍼런스에서 마이클 애플은 그의 연구들을 통해 정치, 경제, 문화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지배 집단이 사회를 특정한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교육을 이용해 온 방식에 대해 꾸준히 질문을 제기해 왔다. 성, 인종, 계급의 교차성(intersectionality)과 혼종성(hybridity)을 아우르는 탈식민주의적 상상력에 기반한 비판적 교육학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는 교육은 또 다른 식민주의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마이클 애플은 현실의 삶이 가지고 있는 복잡성을 전제로 할 때, 학교에서의 교육이 정치, 경제, 문화와 연계되어야만 의미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만약 교육이 경제, 정치, 문화운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만 하다면 ‘교육’은 사회변혁에 있어서 강력한 힘일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애플의 문제의식과 맞닿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교육을 다시 또다시 고민할 것을 제안하며 한반도 대전환의 시기라 불리는 지금, 바로 여기, 온갖 혐오와 폭력의 언어들로 가득 찬 우리 일상의 대전환을 위해 글로컬 평화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지역과 세계, 그 사이를 넘나들며 일상과 구조 사이에서 평화를 만들어가는 적극적인 글로컬 평화교육의 여정에 함께하시기를 청한다.


문아영 (피스모모 대표)
1) 본 원고는 2018년 6월 7일 진행 예정인 피스모모 비전포럼 “한반도 대전환, 이제는 글로컬 평화교육”의 기조발제 원고 일부를 포함하여 작성함을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