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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와인권 | 320호 사람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 인권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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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8-07-05 17:59 조회9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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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에 있는 공사장에는 가림막에 강남구 초등학생 작품이라고 쓰여 있는 그림들이 있다. 이걸 볼 때마다 불편하다. 아무리 초등학생 작품이라도 그린 이들 한사람 한사람의 이름이 아닌 초등학생으로 통칭하는 것에 대한 불편감, 그리고 과연 이 그림을 그린 이들에게 이렇게 사용하겠다고 허락은 받은 것일까 하는 의심이 들어서다. 아무리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 또는 글이라 해도 그것은 그의 고유한 창작물이므로 존중해야 한다. 인용하거나 게시할 때는 원작자를 밝히고 동의를 구하는 게 예의다.

얼마 전 문경 가는 길에 여주휴게소 화장실을 들어서니 예쁜 그림들이 걸려있었다. 0000회사 작품을 곳곳에 전시해놓은 것이었다. 작품을 프린팅해서 만든 액자이지만 그림 어디에도 작가에 대한 정보는 없이 회사이름만 보인다. 이 회사는 자폐성 장애인들의 그림으로 다이어리, 보조배터리, 머그컵 등 제품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이다. 그림을 그리는 이들은 협력디자이너라고 부르고 회사의 직원으로 고용하여 월급을 준다. 자신의 작품으로 만든 제품이 팔릴 때 일정 비율의 수당도 받는 것으로 안다. 장애인의 예술적 재능을 사업으로 확장한 좋은 사례이다. 그러나 이 회사는 그림을 그린 이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고 제품 어디에도 그린 이의 이름이 없다. 단지 자폐성 장애인이 그린 그림으로 만든 제품임을 표기할 뿐이다.

그날 화장실에는 제품이 전시된 것이 아니라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이 그림을 그린 한 사람 한사람을 보지 않고 자폐성 장애인으로 통칭되는 누군가의 그림을 이렇게 소비하게 하는 것은 올바른가? 누군가가 여러 작가의 그림들을 모아놓고 안경 쓴 사람의 작품’, 또는 청각장애인의 작품으로 통칭한다면 어떨까? 왜 유독 자폐성장애인의 작품 활동에는 이렇게 꼬리표를 달아 통칭해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최근 인권강의를 들을 기회가 생겨 강의 일정을 보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른 강의들은 강의 주제와 강사명이 있는데 유독 한 강의에는 강의주제도 강사명도 없이 장애인 당사자 토크라고 되어있고 강사명에도 장애인 당사자라고만 되어 있었다. 다른 강의는 강의 제목을 보고 강사의 이름을 보고 듣고 싶은 강의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으나 장애인 당사자 토크라고만 되어있는 이 강의는 도무지 판단을 할 수 있는 정보가 아무것도 없었다. 장애인이 나와서 이야기를 한다고? 어떤 장애를 가진 이가 무엇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거지? 강사는 누구지? 하는 의문과 함께 불쾌감이 밀려왔다. 운영진에게 톡을 보냈다.

“00, 안녕하세요? 강의 운영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말씀드려 보아요. 600일 장애인 당사자 토크의 강사가 장애인 당사자로 나와 있네요. 주제도 없고요. 강사가 아직 안 정해진 건가요? 아니면 장애인 당사자분이 본인 이름을 밝히기 원하지 않으셨나요? 아니라면 강사명을 써주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장애인 당사자가 이름이 아닌데 그렇게만 나와 있는 것은 좀 불편, 불쾌하네요. 누구든 이름으로 불리웠으면 해요. 그가 속한 집단으로 통칭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 톡을 받은 운영자는 자신이 민감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강사명과 함께 강의 주제도 올려주었다. ‘발달장애인의 자기 결정권’, 내가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고민하는 주제여서 바로 신청해서 들었고 나에게 많은 화두를 던져주는 강의였다. 내가 운영진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아 강의명과 강사명이 수정되지 않았다면 나는 그 강의를 듣지 않았을 것이다. 좋은 강의를

놓칠 뻔했다.

장애인, 여성, 노인, 청소년, 아줌마, 난민, 흑인은 그의 한 특성일 뿐이다. 그 명칭으로는 한 사람 한사람의 다양하고 고유한 인생을 만날 수 없다. 인간을 대상화하지 않고 한 사람 한사람을 인간으로 대하는 것, 이것이 인권의 언어이다.

 

고유경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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