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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공공성 | 공간과 시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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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8-08-29 15:12 조회1,2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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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 문화예술 플랫폼 엉뚱은 삶의 공간

 

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규정한다. 교도소와 아파트 단지, 리조트 시설을 구분 짓는 것은 그것을 만드는 데 들어간 재료가 아니다. 어떤 행위가 가능하고, 어떤 행위가 제한되는지에 따라 공간의 이름은 달라진다. 행위는 삶이다. 사람에게 공간은 곧 삶이다.

긴 복도가 있고, 칸막이로 구획된 사각형의 여백 공간이 있다. 학교다.

미셸 푸코는(1926-1984, 프랑스 철학자) “감옥이나 공장이나 학교나 병원과 흡사하고 이러한 모든 기관이 감옥과 닮았다고 해서 무엇이 놀라운 일인가?”라고 말한다.

이쯤에서 묻는다. 학교는 삶의 공간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으로 학생, 교사, 학부모와 주민, 지자체의 모색이 학교 안 문화예술 플랫폼 엉뚱이라는 기획을 낳았다.

광주는 문화예술의 도시인가? 긍정한다면 많은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누려야 한다. 문화예술에 참여하는 권리를 누려야 한다. 그런데 참여가 권리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문화상품의 소비자를 넘어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일어나는 생비자로서의 시민, 이를 위한 시간과 공간의 확보, 그리고 그 공간은 삶의 공간 안에 만만한 공간이어야 한다.

4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이 어디일까? 바로 학교다. 그리고 마을이다. 그렇기때문에 광주는 학교와 마을에 문화예술 플랫폼 조성을 지원한다. 2016년 광산중, 산정중, 천곡중을 시작으로 2017년 송정중, 월계초, 첨단초, 어룡초, 첨단고, 광주자동화설비고 9개교에 학교 안 엉뚱한 공간 조성을 지원했고, 2018년 상반기 월곡중, 큰별초, 마지초, 어등초 4개교가 진행 중이다.

엉뚱의 키워드는 공간혁신인데, 교육공간을 혁신하는 프로그램이다. 교육청이나 선생님, 지자체가 교육 공급자들의 생각에 따라 공간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기획해서 만들고 활용하게 하는 것이다.

지자체는 공간을 스스로 꾸며가는 주체에 학생과 교사뿐만 아니라 지역주민까지 포함한다. 그것이 지자체가 예산지원을 하는 근거이고, 평생교육의 일환으로 학생들을 시민교육 주체로 보며 공간을 지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교육은 마을과 단절된 공간에 학생과 교사들이 들어가서 섬처럼 고립되어 지식을 전수해 왔다. 틀린 건 아니지만 매우 부족한 교육이었다.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사회화 과정이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싸우고 화해하고 갈등을 조정하면서 살아간다. 교과 이수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호흡하면서 살아가는 게 필요하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내가 살고 있는 마을, 내가 다니는 학교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과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나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교과 과정은 교실 안에서 진행된다. 운동장이나 강당과 같은 체육시설은 학생 의사와는 상관없이 개방되어 배타적으로 축구, 배드민턴을 해왔다. 따라서 마을과 학교가 융합되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학교 안 엉뚱이라는 공간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201611월에 엉뚱을 개소한 광산중은 공간을 만들어 갈 때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 예술가와 함께 했다.

수업, 동아리, 방과 후 시간에 각자가 할 수 있는 일과 역할로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개소 이후 매주 3회 마을주민들이 행복학습센터라는 이름으로 학교 안 엉뚱 공간에서 모임을 진행한다. 1회 학부모들의 회의 라운드 테이블이 진행된다. (필자가) 학교를 찾았을 때는 방과후 학생들과 지역 주민들이 공간을 함께 쓰고 있었다. 학생들은 평생학습자로서의 마을 어른들을 바라보며, 세상의 한 면을 배운다. 광산중 엉뚱 공간은 이질 집단과 공간을 나눠 쓰거나 공동 작업을 하는 배움의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엉뚱은 마을의 특성과 공간을 꾸며가는 의지에 따라 다양한 공간 쓰임의 양상을 보인다. 고정되어 있지 않고 사람들이 활용하고 이용하면서 변화하고 다시 재생된다. 사용자들에 의해 공간의 쓰임이 그려지는 플랫폼이다. 소멸과 재생반복. 사용자 의지가 반영되며 공간도 성장한다. 최초의 터치는 지자체의 마중물이었고, 깨어있는 교사, 학생, 주민들로 출발했다. 그리고 자가발전이 가능한, 자기 변신이 가능한 형태로 성장해 간다. 이 과정이 광주 광산구 지자체가 추진하는 공간혁신이다.

천곡중은 학생활동 상설 전시관, 영화시사회, 토론 등의 스터디룸으로, 광산중은 자화상 커튼, 목공작업, 가구리폼 등의 복합 문화생산 공간으로, 산정중은 배움을 부활시킨다는 르네산정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예술, 놀이, 실내 스포츠가 가능한 공간으로 시작되었다.

처음 공간혁신은 분위기 좋은 쉼터 만들기와 같은 인테리어 사업으로 생각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공간꾸미기가 아니다. 소통에 필요한 수준으로 꾸미기도 하지만, 꾸미는 것조차도 아무런 터치가 없다. 단 교사, 학생, 주민이 주도한다는 원칙만을 요구했다. 인테리어는 아주 하위 개념이 되고 결국 사람이, 사람 사이의 소통이, 여기서 어떤 사건을 일으킬 것인가가 중심이 된다. 첫 번째 터치와 마중물로 일단 출발한 공간이 생명체처럼 스스로 진화해 간다. 송정중의 문화예술 플랫폼으로서의 복도 만들기를 진행하는 전희원 교사는 예전에는 학교 공사라고 하면 아이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역민과 함께 자신들이 낸 의견들이 공간에 하나씩 채워지고, 직접 만드는 과정에서 아직 미완성 공간이지만 매일 찾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어요라고 소회했다.

이렇게 공간혁신에 힘을 쏟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속가능성의 다른 말은 회복탄력성이다. 필자가 주력한 교육정책은 시민들, 그리고 그 안에 청소년들 삶에 있어서의 회복탄력성을 어떻게 키울까 하는 것이다. 전환의 시대에 대안을 찾기보다 기본에 충실하자는 데 초점을 맞췄고 그 기본을 오래된 미래에서 찾았다.

오래전 학교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그 학교는 마을의 학교였다. 학교는 마을에서 중요한 커뮤니티의 거점이었고, 공동체의 현장이었다. 학교가 운동회를 하면 마을 전체의 축제였다. 학령기 자녀가 없는 사람들, 노인들부터 젊은이들까지 모두가 운동회에 참여해서 그날은 마을잔치날이었다. 또한 한때 야구가 유행했을 때, 광주일고, 광주상고의 야구는 프로 야구 못지않은 광주 시민들의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그런데 점차 세월이 흘러 자본화·도시화되면서 모든 게 섬이 되었다. 각각의 기관들이 모두 섬이 되었다. 마을의 지혜로운 노인도 독거노인으로 방치되었고, 지혜를 공유할 청소년도 만나지 못했다. 공간의 고립은 행위(교육자치 행정)의 고립을 만들었고, 가장 기초적인 인간들의 교류와 연대까지 끊어지게 했다. 기능만 살아있는 세상. 이대로는 재밌게 살 수 없다. 이는 민주주의 근간을 흔든다. 다양한 삶들이 부딪치고 서로

엿보면서, 이질적인 것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전체의 의사결정을 해야 되는데 그것이 불가능해졌다.

엉뚱이라는 공간혁신은 고립된 개인의 행위만 있고 사람은 없는 기능 중심의 삭막한 세상을 치유하자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문화예술 플랫폼 엉뚱을 통해 다른 삶에 대한 공감, 다른 의견이나 경험의 교류를 시도했고, 어느 정도는 좋은 성과가 나타났다.

엉뚱이 우리 사회를 혁명적으로 당장 크게 변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구상의 모든 혁명은 소수자들에 의해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유휴 공간은 학교 안팎에 얼마든지 많다. 학교가 지역민과 공유하듯이 지자체가, 기업이, 대학이 엉뚱 사례와 같은 공간을 만들어서 가까운 거리의 지역민들과 공간을 공유하고 소통할 기회를 갖는다면 앞에 말했던 문제들은 분명히 좀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엉뚱에 참여한 교복 입은 시민들의 말을 들어보자.

선생님들은 휴게실이 있는데, 우리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만든 엉뚱교실이 이제 우리들의 쉼터다. 걱정도 있다. 엉뚱교실 안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두 들어갈 수가 없다. 요즘 학생 수가 줄어서 빈 교실이 늘어난다. 거기를 다 엉뚱으로 채웠으면 좋겠다.” (첨단초 5학년 김소원)

친구들에게 학교 행사에 참여해달라고 하면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르네산정 (산정중 엉뚱 공간) 개관식 때 공간을 꽉 메웠다. 놀랐다. 만들 때 직접 의견을 내기도 하고, 참여했기 때문에 완성된 모습이 궁금했던 거다. 개관식에 와서 눈을 반짝인 친구들이 지금은 공간을 아주 잘 쓰고 있다. 공간을 사용하면서 만든 노력과 유지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이 사실 당연하지 않다. 학교가 바뀌는 데는 학생, 학부모, 선생님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중략) 학교 공간혁신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내 동생도 산정중에 와서 나랑 같은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산정중 3학년 강윤민)

그동안 우리는 수동적이었다. 아키놀이터(첨단고 엉뚱 공간)를 만들면서 우리가 우리의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요구해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 아키놀이터의 경험과 공간혁신 배움을 통해 시민으로 성장한 것 같다.” (첨단고 2학년 김현민)

 

김태은 (선운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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