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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 여성에게 국가도 학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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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8-08-30 17:58 조회8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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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절반인 여성들이 단단히 뿔났다. 사무실에서 작업하던 컴퓨터도 끄고 돌리던 기계도 멈추고 설거지하던 젖은 손들도 쓱쓱 문질러 닦고 연대의 목소리를 높이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직접적인 계기는 위력에 의해 여비서를 성폭행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무죄판결을 내린 오만한 남성 중심의 성차별을 드러낸 사법부에 닿아 있지만, 그동안 여성을 짓눌렀던 남성 지배 권력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분명히 도지사라는 권력의 질에 일 수밖에 없었던 김지은 씨가 피해를 당했는데도 정조 관념과 피해자다움을 의심하면서 안희정 씨에게 면죄부를 줬다.

남녀불평등 구조가 이러하다 보니 학교라고 건강하고 온전할 리가 없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성장기를 맞는 아이들에게 학교는 가정 다음으로 안전한 보호막 역할을 하는 환경이어야 하지만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성희롱과 성추행 사건도 성인지적 감수성 제로인 사회의 축소판이다. 또래 남학생이나 선배들이 가해자의 상당수를 차지하지만, 교사들에 의한 성희롱도 적지 않아서 부모들은 좌불안석이고 노심초사하고 있다.

얼마 전 광주에 있는 한 명문 사립고에서 일어난 186명의 여학생들이 11명의 교사에 의해 지속적이고 상습적으로 당한 성추행과 성희롱 사건이 단적인 예이다.

피해 유형을 보면 학교 안에서 일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몸매 좋다, 엉덩이 크네, 다리 예쁘다, 몸매가 그게 뭐냐, 다 망가졌다, 큰 귀걸이를 하면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 같다, 뚱뚱한 여자가 치마를 입으면 역겹다, 입학사정관이 사정해 줄 거다, 커튼 닫고 다리 벌려라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허리나 엉덩이를 툭툭 치거나 쓰다듬는 일은 예사이고 돼지 같은 X, 미친 X, 설거지나 하고 살아라, 여자는 애 낳는 기계라는 여성 비하적인 폭언도 많았으며 공개하지 않은 내용 중에 더 심각한 것도 있다고 하니 여학생들에게 교육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봐야 할 정도이다. 사건이 폭로되었을 때 학교에선 진작 신고하지 않은 학생들을 탓하는 분위기였다. 같은 지역의 다른 학교에서도 교장에 의한 수십 차례의 성추행이 있었으며 부산에 있는 어느 학교에서도 교사가 전쟁 나면 위안부 가야지라든가 손을 잡았으니 나랑 결혼해야 돼라는 충격 발언을 했으나 은폐하기 급급했다고 한다.

스승이 제자에게 농담으로라도 하면 안 되는 여성혐오적이고 억압적인 말을 내뱉었다는 건 학교가 양성평등과 민주주의의 교육공간으로 함량 미달이라는 반증이다. 학교에서 성폭행, 성희롱이 일어나도 학교나 교육청이 해당 교사만 징계하고 넘어가는 건 대학진학이라는 성과주의에 매몰돼 있는 탓이다. 해당 교사의 학생 평가가 대학진학의 중요한 자료가 되므로 광주의 경우처럼 상습적이고 지속적인 피해를 당해도 냉가슴만 앓는 실정이다. 인간존중이 휘발된 날림 교육이라는 걸 자인한 꼴이다.

학교에서의 성희롱 사건은 이번 미투운동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간간이 불거졌다. 그럴 때마다 은폐나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대책이라고 나온 것 또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이다 보니 스쿨 미투로 인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뿐이다.

실제로 교사들이 일 년에 4시간 받기로 되어 있는 4대 폭력예방교육도 한 시간 정도로 대충 해버린다는 후문이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선생님의 가르침과 일거수일투족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만 중요한 게 아니라 교사들에 대한 성인지적 관점의 내실 있는 성평등교육도 시급하다는 게 우리 학부모의 입장이다.

더불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학교에서 학생들이 권리의 주체임을 분명히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학교의 경직된 권력구조와 폐쇄적인 의사소통 구조로 인해 학생들의 목소리는 짓밟히기 일쑤였다. 그들이 광장에서 분출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학교 안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학생 자력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학급회의를 활성화해서 불합리한 권위나 생활규정에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한 마을교육공동체의 중심으로 학교가 거듭날 수 있도록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학교문화 정착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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