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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공공성 | 285호 학습 공공재 타이포셔너리의 도입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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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6-08-03 15:04 조회4,5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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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포셔너리(typotionary)란 타이포그래피(typography)와 딕셔너리(dictionary)의 합성어이다. 타이포그래피란 문자를 배치해 생각이나 의도를 표현하는 시각 디자인 기법의 하나이다. 타이포셔너리는 영어단어 철자를 이용하여 의미를 시각화해 표현하는 방식으로 구글의 전직 디자이너지-리(Ji-Lee)가 시작하여 e-북으로도 판매되고 있다. 

타이포셔너리 수업은 영어 수준별 수업 시간에서 시작되었다. 영어 단어를 쓴 뒤 달달 외우도록 하는 대신 뜻을 알려주고 단어를 그려보라고 했다. 수업시간에 소리를 지르고 돌아다니며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던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상상력으로 단어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풍선’인 ‘balloon’의 ‘o’를 풍선으로 표현하는 식으로 말이다.

 

영어과에서 시작된 타이포셔너리는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학습효과 및 흥미 제고에 탁월한 효과를 보여 하반 12명 중 11명의 성적이 평균 10점 올랐다. 당시 시험이 어려워서 학년 평균이 4점 내려간 것을 고려하면 대단한 향상이다. 타이포셔너리 창작을 많이 한 학생일수록 성적 향상이 뚜렷했다. 하반 전체가 40명인데 이 중에서 29명이 향상되었고, 난이도 변화를 고려하면 40명 중 34명이 향상된 것으로 분석된다.


학습부진에 다중지능과 학습스타일을 고려한 돌봄치유적 접근이 이 학습법의 성공 요인으로 보인다. 특히 단어 쓰는 것을 싫어하던 친구들에게 폭발적인 창의력을 끌어내는 계기가 되어 자존감 회복의 좋은 사례가 되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전따(전교에서 따돌림받는 아이)로 알려진 수준별 수업하반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는 타이포셔너리 수업 방식에 두각을 나타내었고 이를 계기로 자존감을 다소 회복하였다. 그 후 이 아이는 영어 시험을 잘보기 위해 본문 해석을 외웠다며 제게 와서 자랑하기도 했고, 지필고사 결과 성적도 올랐다. 학습에 무관심한 다문화 가정의 학생도 탁월한 솜씨를 보여주었다. 아차, 싶었다. 아이들은 자존감, 소속감이 차오르면 스스로 방법을 찾아간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늘 아이들은 어른의 스승이다.

 

아이들과 연 카톡방에 어느 월요일 새벽 네 시에 한 여학생이 “오늘 혹시 셤 아님?”이라고 하니 다른아이가 “아니 화요일부터임.”이라고 답했다. 사실 시험은 수요일부터 시작이었다. 이 카톡방에 있는 아이들은 이토록 학교 일에 무관심했던 아이들이었다. 

영어 학습부진 학생들과 만날 시간을 내기 어려워 6월에 사이버 공부방으로 아이들과 카톡방을 개설하였다. 7월 어느 날, 방과 후에 카톡으로 나눈 대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학교마다 수십 혹은 수백의 마인크래프트 매니아들이 있는데, 이 학생들 중 적잖은 학생들이 밤새워 게임하고 학교 와서 잔다. 아프리카TV로 매일 오후 7시부터 이튿날 새벽 2, 3시까지 방송진행자(BJ)가 되어 블록으로 건물과 벽을 쌓는 게임(마인크래프트) 장면을 생중계하기 때문에 늘 잠이 부족하다. 학교 성적이 바닥권인 아이에게 인터넷 방송은 환호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매일 30여 명, 한 달이면 1,000여 명에 달하는 시청자 관심을 쉽사리 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한 아이에게 최근 큰 변화가 생겼다. 학교 공부와는 담을 쌓았고 따돌림, 우울증까지 겪던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 역시 마인크래프트 매니아였는데, 나는 영어 과제로 마인크래프트로 블록을 쌓아 영단어를 그려오게 시켰다. 그 아이는 처음에는 어떻게 영단어 그림을 그려야 할지 난감했는데, 고민하다 보니 단어의 뜻을 쉽게 외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 아이는 요즘 공부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고 1학기 기말고사 영어 성적이 중간고사보다 16점이나 올랐다. 

이렇게 타이포셔너리 학습 방법이 효과가 증명된 후 우리는 영어단어 카페(http://cafe.naver.com/
typotionary)를 열어 타이포셔너리 작품을 수시로 무료 공유하고 있다. 2015년 5월 현재 4,000개 이상의 작품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어 활용되고 있다. 

필자는 이것이 전 세계 영어교육의 혁명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타이포셔너리 학습을 통해 아이들의 학력 향상도 보람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이들의 자존감 회복, 소속감 향상 등 문제행동 감소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큰 보람을 느낀다.

 

타이포셔너리로 달라진 아이들

 

필자가 맡은 수준별 수업 하반에는 천호중 1학년인 초등학교 때부터 전따, 은따로 지목되는 두 여학생이 있었다. 이 아이들은 수업에 오면 이해하지 못할 온갖 이상한 행동을 했다. 이 아이들의 문제행동에 소리 지르지 않고 벌점에 의존하지 않은 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필자의 5~6월 최대의 고민이었다. 우울증이 도질 지경이었으니 그 상황은 상상하시기를. 그러던 어느 날, 카톡방에서 어느 분께서 단어를 이미지로 표현한 재미있는 영상 (http://youtu.be/J59n8FsoRLE)을 알려주었다. 영상을 보고 그림 사전보다 어휘학습에 더 강력한 효과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하반 수업 시간에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라는 이름으로 수행평가를 해보았다. 그 날도 두 아이들은 여전히 온갖 이해 못할 행동을 하다가 문득 앉아서 과제를 시작하더니 거침없이 만화를 그려냈다. 한 아이는 워낙 만화를 잘 그렸고 또 한 아이는 만화 속에 단어를 숨기는 묘한 능력으로 수행평가에 임했다.(결과물 : http://cafe.naver.com/et21/660) 이 때다 싶어 아이들을 칭찬하고 더불어 칠판에 이름을 쓰고 작품을 게시했다. 그리고는 의식적으로 다음 날 수행평가 자료에 아이들 작품을 넣어 다른 모든 반 수행 예시작으로 썼다. 

그 후 두 아이는 영어시간 외에도 하루에 수십 개씩 단어 작품을 그려오더니 1학기 교과서 안에 있는 단어를 모두 그렸다. 그래서 필자는 아이들에게 중학 필수 800 단어를 전부 창작하는 아르바이트를 제안했고, 댓가를 돈으로 주는 것이 민망해서 학교 앞 장애인 돕기 알뜰매장인 굿윌스토어와 협의하여 상품권을 만들었고 한 작품에 백 원씩, 열 작품을 만들면 천 원 상품권을 주기로 했다. 또 디자인 재료로 색연필, 크레파스, 사인펜, 도형자, 가위, 그리고 이미지로 영어 단어를 표현한 책 수십권을 굿윌스토어에서 구입하여 지원했다.

 

인형이나 가방 등을 사고 싶어하던 아이들은 단숨에 수십 장의 작품을 그렸다. 총 5만원의 상품권을 만들었는데, 닷새도 안 되어 동이 났다. 은근 걱정이 되어서 이제 선생님 한 달 용돈이 다 떨어져 상품권 제도는 못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품권과 상관없이 두 아이는 요즘에도 800 단어 목록에 있는 단어를 적게는 열 개, 많게는 수십 개씩 그려온다. 처음에는 다른 수업 시간에도 그림만 그리고 있는 아이들을 교과 선생님들은 야단을 치셨는데, 그림 그리는 것을 제지하면 두 아이들은 바로 잠을 자더란다. 그래서 지금은 선생님들도 그냥 내버려 두신다고 한다. 

필자는 두 아이의 변화를 담임선생님 두 분께 알려드렸다. 그랬더니 담임선생님들은 두 아이의 활동을 영어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영어수업 지원단 활동으로 적어 주셨다. 이제 두 아이는 학교에 오면 필자에게 먼저 와서 인사하고 간다. 행동도 의젓해졌다. 말 그대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관심을 받고 싶어서 온갖 기묘한 행동을 하던 아이들이 주변에서 인정받으며 소속감과 자존감이 생긴 것이다.


아이들의 학습 동기 향상을 위해 천호중에서는 거리가 멀지 않은 하남의 애니메이션고 선생님께 멘토 소개를 부탁드렸다. 고2 재학생을 소개받았는데, 방학 후인 24일에 학교방문 진로체험을 할 예정이다. 25일에는 ‘디스코 팡팡’이라는 아이들 놀이터에도 함께 갈 예정이다. 개학 전에 팝송 숙제할 애들과 함께 노래방도 가서 녹음도 하고 말이다. 오늘은 한 아버님이 담임과 면담하러 오셨는데, 담임이 필자를 소개하니 “요즘 ○○이가 저의 기쁨이다.”라고 말씀하셨고 “어른끼리 짜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면서 명함을 주고받았다. 이제 아버님 명함까지 받았으니 이제 녀석의 인생은 180도 달라지기 시작할거다. 배가 나아가던 방향을 바꾸려면 여러 사람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영어과에서 시작한 타이포셔너리는 이제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고등학교는 물론,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재미있게 참여한다고 한다. 앞으로는 국어나 외국어, 한자 등 교과에서도 타이포그래피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어휘 학습은 모든 교과 학습의 기본이다. 타이포셔너리를 통해 이런 콘텐츠를 통해 어휘 학습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앞으로 어휘가 장벽이 되는 일은 없어질 거라 생각된다. 새로 접하는 어휘가 재미있다면 학습 혁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송형호 (서울 천호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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