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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저는 | 310호 혼란과 보람이 함께하는 미국 생활 | 윤민자 (광주지부 전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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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17-08-09 15:44 조회8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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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회원 여러분들이 잠자리에 들 시간, 지구의 건너편 방금 여러분과 작별한 태양에 아침인사를 하며 지구의 절반을 마저 돌리며 살고 있습니다. 아마 그래서 지구가 한 바퀴를 제대로 굴러 하루가 완성되고 한 해가 살아지고 있는 것일 겁니다. 저는 한국사람들뿐만 아니라 미국사람들에게도 낯설은 뉴멕시코 주에 8년 전에 정착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는 자동차 표지판에도 U.S.A를 새겨놓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처음 접시닦이 생활을 하다 영어가 너무 부족해 ESL(English asa Second Language)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회계를 5학기째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 학교 생활을 잠깐 소개할까 합니다.
 

저는 아직도 영어를 잘 못해 최대한 말을 아끼며(?) 살다보니 학교 동료들은 제가 아주 조용하고 과묵하며 말이 없는 줄 알고 있습니다. 실은 늘 교수 바로 코 앞에 앉아서 같은 반 친구들 이름도 모릅니다. 왜 이렇게 영어이름은 외워지지도 않고, 그 얼굴이 그 얼굴 같은지... 지난 학기 내내 제 옆에 앉았던 친구가 이번 학기에는 뒷줄로 옮겨 앉으니 그 친구 이름이 ‘에릭’이었는지 ‘잭’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학기가 2주 남은 지금까지, 이번 학기 내내 그 친구 이름을 한 번도 못 불렀습니다. 심지어 진로 상담하러 가서 안면이 있는 사람을 만났는데 도저히 기억이 안 나는 겁니다. “너랑 나랑 구면인데...” 이러고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순간 봄학기 시작 전에 아주 짧은 인터섹션 기간에 세금보고를 가르쳤던 교수라는 사실이 기억이 나는 것 아닙니까? 반면에 그 사람들은 같은 반에 중년의 동양여자가 저뿐이라 저를 잘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사람도 이렇게 기억을 못하는데 수업 내용은 두 말하면 잔소리지요. 그래서 날마다 새로운 내용을 공부하는 새 기분(?)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너,이거 가르쳤던 것이 맞아?” 이러면서 말이지요.

 

이렇게 제 인생에서 가장 성실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커뮤니티 칼리지가 평생교육기관의 역할도 같이 하다 보니 저처럼 늙은 학생을 만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저의 베스트 프렌드라고 할 수 있는 쉐런은 올해 63세의 청각장애인입니다. 쉐런은 과락(C 이하)을 여러 번 했습니다만 그 도전을 멈추지 않을 뿐 아니라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쉐런의 수업을 위해서는 2명의 수화통역사와 1명의 노트 필기자가 지원됩니다. 그럼에도 그 나이에 공부하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성적이 낮으면 낮은대로 이해를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무시당할 일이 아니라고 여기는 태도야말로 이곳 학교생활에서 제가 제일 배우고 싶은 덕목입니다. 다행히 제가 이미 그 과목들을 통과를 하였고 수학을 조금 더 잘해서 약간의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번 학기도 이제 2주 남았습니다. 제가 쏟은 시간만큼 혹은 예상했던 만큼 제가 잘 따라가고 있지는 않습니다. 영어는 그야말로 절망적으로 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학부모운동가로서, 시민운동가로서 살다 영어미숙 이민자로 살아가는 것은 상상이상으로 서글프기도 합니다. 언어 장벽이 주는 절망감은 공포스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매 학기마다 한 고비가 넘어가는 느낌, 무엇인가에 마침표를 하나 찍은 보람은 참으로 큽니다. 이렇게 8년의 이민생활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 세월은 동지들에게 안부를 묻기도 죄스러운 이명박근혜 치하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야 저의 소식을 전합니다. 모두들 건강하세요.

윤민자 (광주지부 전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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