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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8월호/357호] 교육현장 이야기_ 배움과 소통으로 성장하는 행복한 운양초등학교(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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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1-08-11 16:30 조회1,1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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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과 소통으로 성장하는 행복한 운양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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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에 위치한 운양초등학교는 폐교위기를 극복하고 2012년 ‘강원행복더하기학교’로 지정받은 ‘작은학교교육연대’ 소속 학교입니다. 지역의 교사와 학부모가 모여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내기 위해 애를 썼던 과정은 힘겨웠지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교육공동체를 지속하게 했던 원동력은 바로 ‘소통’이 아니었을까요. 이 학교에는 교육과정, 학부모회 행사, 아이들의 학교생활 등에 대한 그 모든 것들에 대해 교사·학생·학부모가 ‘언제든 머리맞대어 대화나눌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 한번 들어보실까요? 

곽경애 (강릉지회장, 운양초 학부모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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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움과 소통으로 성장하는 어른들 

 운양초등학교는 제게는 잊지 못할 배움의 터전입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저를 성장하도록 

도와준 고마운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 다』는 책 제목처럼 학교라는 곳은 교사인 제게도 쉽지 않은 직장이었지만, 운양초에서 저는 처음으로 학교가 학생뿐만 아니라 그 곳에 함께 하는 교사, 학부모도 성장시키는 ‘배움터’라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저경력 교사에게 학부모라는 존재는 참 어렵기만 했습니다. 되도록 만나지 않고 소통하지 않으면 좋은 존재가 학부모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동안 학부모를 직접 만나야 하는 상황은 대부분 갈등이 있거나 어떤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가 많았던 탓이었겠지요. 운양초에 발령을 받아 오니 매월 1회 학급의 학부모님들과 만나서 아이들이 배우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반모임’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학부모 대표들이 교사들과 만나서 협의하는 집행부 회의, 학부모 연수 기능을 하는 ‘학부모 사랑방’, 학부모 동아리가 있었습 니다. 여러 통로를 통해서 학부모들을 계속 만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행복더하기 학교’였습니다. 제가 만나고 싶어서 만난 것이 아니라 만남의 연결고리가 많은 학교였습니다. 

 학교를 열고 다양한 의견을 내어놓으며 조율하고 합의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배움’과 ‘소통’으로 ‘성장’하는 학교를 만들어보자는 의지와 계획은 좋았지만, 막상 만나서 소통하니 처음에는 성장보다 는 소진되고 감정이 상할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만나서 서로 다른 생각을 내어놓고 알아가고 서로 이해하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성장통 없이는 성장할 수 없는 것인가 하며 생각이 많았던 배움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운양초 졸업식에서 학부모님 한 분의 졸업 소감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6년을 다니고 졸업을 하는데, 돌아보니 부모인 내가 성장을 많이 한 것 같아 고맙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때로는 치열하기도 했고 상처를 주고받을 때도 있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 었습니다. 서로를 교육의 주체로 인정하 고 함께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학부모들에게 학교라는 문턱은 높아 보입니다. 학교 운영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학교가 먼저 노력하지 않는 한, 학부모가 학교에 들어가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참여하지 않으면 교육의 주체로 인식 하기보다 소비자로 인식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의 힘들다 는 말 한마디에도 걱정하고 흔들리며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부모와 교사가 만나서 서로 도닥여주고 위로해주며 함께 나아가지 않는다면 어른도 각자도생 하며 흔들릴 수밖에 없는게 현실인 것 같 습니다. 학교가 먼저 손을 내밀고 개방하여 학부모가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다면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좀 더 좋은 학교가 되기를 바라는 선한 동기를 가진 부모님들은 적극적으로 돕고 참여할 것입니다. 학교가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 학부모도 함께 성장하는 그런 곳이 되면 좋겠습니다. 

안신애 (옥천초 운산분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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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교육을 두고 교사와 학부모가 만나자

예전 학교에서, 반 아이네 아버님과 1시간 넘게 통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밤 9시가 넘은 시각이었고 아버님은 술에 취한 상태였어요. 교실에서 싸움이 있었고 그 아이의 얼굴에 피가 많이 났습니다. 보건실에서 치료를 받고 온 아이에게 너무 다쳤으니 집에 가는 게 어떠냐고 했어요. 아이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괜히 자존심을 세우는 것 같아 더 강요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날 아버님으로부터 전화가 온 거예요. 아이가 그렇게 많이 다쳤는데 어떻게 수업을 계속 받게 할 수 있냐, 어떻게 전화 한 통 없었냐는 거였어요. 저는 죄송하다는 말 이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 제게 학부모와 만남은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제 주변 다른 교사들도 학부모를 만나는 일을 걱정하고 어려워합니다. 교사와 학부모 간에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한두 번 만남으로는 신뢰를 쌓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한두 번 만나는 것조차 ‘내 아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점입니다. 만약 모든 학부모가 ‘내 아이’의 관점으로 이야기한 것을 교사가 전부 따르게 된다면 우리 교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내 아이’만을 위한 학부모의 바람을 교사는 온전히 채워줄 수 없습니다.

 ‘내 아이’가 중심이 아니라 ‘좋은 교육’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해요. 무엇이 ‘좋은 교육’인지 교 사와 학부모가 서로 생각을 나누고 조율하고 합의 해나가야 합니다. ‘좋은 교육’이라는 진북(眞北)이 정해질 수 있다면 우리 교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생깁니다. 진북을 함께 정하는 과정과 진북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에서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신뢰가 쌓일 수밖에 없어요. 그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제대로 된 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운양초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씩 교사와 학부모가 만나는 반 모임을 진행합니다. 올해 첫 반 모임에서 제가 아이들과 하고 싶은 활동으로 논어 필사와 모둠 일기를 말씀드렸어요. 학부모께서는 6학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추억 쌓기를 말씀해주셨고요. 두 번째 반 모임에서 들살이(야영) 활동을 제안해주셔서 다른 선생님들과 협의를 통해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세 번째 반 모임에서는 사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앞서 가기 위한 사교육을 하지 않겠다’는 학교원칙을 떠 올려보게 됐습니다. 학원에서 공부하겠다는 아이를 말릴 필요는 없지만, 교실에서 이뤄지는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지 않도록 조심하자고 했습니다. 

 5년 만에 다시 하게 된 6학년 아이들과의 생활은 만족스럽습니다. 대부분 행복하고 때때로 힘이 들어요. 하지만 그 힘듦도 학부모의 격려와 응원 덕분에 이겨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학부모와의 만남 이 이제는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모든 교사가 이런 행운을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도영 (운양초 교사)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어린 시절 이 문장을 읽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가 날 낳으신 것은 확실한데 아버지가 날 낳으셨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실수하여 앞뒤를 바꾸어 쓴 것은 아닌가 하다가도, 날 기르시는 것은 아버지보다는 역시 어머니라는 생각에 미치면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 한참 흘러 사춘기를 지나고서야 이 문장을 스스로 내 방식대로 수용했다. 세상 모든 아버지들은 아이를 생기게만 하고 기르는 것은 온전히 어머니들 몫이라 과감히 결론지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 때 기억을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띠지만 우리 앞의 현실을 상기해 보면 다시 씁쓸해 진다. 자식 교육을 위해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필요하다는 시대가 아닌가. 안타까운 교육 현실이라 농담으로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더 이상 양육과 교육현장에서 아버지들이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초창기 우리는 의미 있는 ‘작은 학교’를 만들자며 팔을 걷어붙였고 ‘아빠모임’도 힘차게 출범시켰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모임에 참여자는 줄어들었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모임 자체가 존폐위기를 맞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2019년 ‘마큰다’라는 ‘주말, 아빠와 함께’ 모임은 나름 의미 있는 진전이며 대안이라 생각했었다. 아이들과 모여 축구와 족구, 피구, 볼링을 하고 지역의 축제현장을 찾았으며 빵 반죽도 함께 하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학교의 도움과 교육청에서 일부 지원한 재정으로 운영한 ‘마큰다’는 1년을 끝으로 활동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처음부터 ‘주말, 엄마를 자유롭게 하라’ 는 모임의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부터가 문제였다.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아버지들 역할이 잠시 어머니들을 거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아버지 날 낳으셨으니’ 아이를 있게 한 책임 절반은 당연히 아버지에게 있다. ‘아버지의 양육과 자녀의 미래(인생) 영향 관계’에 대한 수많은 긍정적 연구성과도 나오고 있다. 아버지들은 양육에 대한 책임을 ‘바쁘다’며 더 이상 회피해서는 안 된다. 어차피 할아버지의 재력이 필요한 시대라 하지 않았나? 양육수당, 육아 휴직처럼 더욱 광범위하고 파격적 지원도 요구하자. 우리의 미래가 달린 문제다. 교육현장 곳곳에서 아버지들의 적극적 관심과 참여 없이 참교육도 있을 수 없다. 코로나 시대, 어쩌면 우리 아이들이 아버지들에게 허락한 마지막 분발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 

 ‘마큰다’ 활동 몇 번으로 아버지 노릇 퉁치려 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아빠모임’, ‘마큰다 모임’ 을 다시 재건해 볼까? 아니다, 그 열정으로 운양의 학부모 사랑방 모임에 참여하자며 적극적으로 아버지들을 설득해 보아야겠다. 그 모임에 아버지들 수가 반을 채우고 그것이 전혀 이상한 풍경이 아닐 때, 우리들의 참교육도 실현되지 않을까 하는 몽상에 젖어 본다. 이제 이 글 맨 처음 문장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부모님 날 낳으시고 똑같이 애써 기르시니”라고. 

유선기 (유한결 학생 아버지) 

매일 등교가 가능한 작은 학교만의 매력 

 선우네 예전 학교는 한 반에 30명씩 4반이었다. 기대가 가득했던 1학년이 잘 마무리하고 2020년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지만, 그렇게 긴 겨울 방학을 보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코로나19로 개학은 계속 연기되었고, 언젠가부터 아이는 잠에서 깨자마자 노트북 앞에 앉아있는 삶이 지속되었다.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친절하지 않았다. 학교는 안 가는데 학원은 갈 수 있는 날들이 많아졌고, 나 역시 화가 나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돌이켜 보면 아이가 아니라 나에게 돌파구가 필요했던 것 같다. 작은 학교는 항상 내 마음속에 있었고 코로나 시국에도 매일 등교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나를 흥분시켰다. 결국, 살고 있던 남양주를 떠나 강릉의 작은 학교로 2학년 2학기에 아이를 전학시켰 다. 무섭고, 불안했고, 부담스러웠다. 신랑과 나는 일단 6개월만 살아보기로 하고 집을 구했고, 그렇게 우리는 결혼 13년 만에 주말부부가 되었다. 

 사실 나는 의무교육에 그렇게 많은 뜻을 두는 편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학교를 매일 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의미가 있었다. 학교에서 배운다는 것은 일상에서 겪기 어려운 경험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 학년에 한 반뿐이고, 한 반인원이 열 명 내외라 아이의 사회성이 걱정될 것 같지만, 오히려 전 학년이 모두 모인 ‘무학년제’ 활동을 통해 더 넓은 관계를 배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다모임을 통해 전교생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스스로 결정한 결과를 따르는 성숙하고 값진 경험을 하고 있다. 덕분에 학부모로서 좀 더 긴 호흡으로 아이를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듯하다. 교사와 학부모가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반 모임’을 통해서도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 교육과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정기적으로 나누고 있다. 모두가 어렵다는 이 시국에, 난 감사하게도, ‘오늘’ 이 행복한 아이들이 모여있는 작은 학교에 내 아 이를 매일 보내고 있다.

박혜민 (윤선우 학생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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