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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1월호/326호] 마중물_김영만 초대 회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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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2-01-06 16:10 조회8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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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희생으로 이어온 참학이 고맙다

 

33년의 역사가 시작되는 1월호에 우리회 초대 회장인 김영만 고문님의 인터뷰를 싣게 된 계기는 ‘창립선언문’ 때문이었다. 1989년 명동 향린교회에서 낭독하셨던 창립선언문을 보관하고 계시다는 소식에 무작정 마산행 KTX를 탔다. 

78세라고 믿기지 않는, 10년은 젊어 보이는 김영만 고문님은 처음 보는 후배를 위해 하루를 온전히 비워 마산을 소개해 주셨다. ‘김주열 열사 기념사업회’ 초대 회장으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를 ‘4월혁명 발원지’로 지정되도록 이끄셨는데 ‘우리나라에서 민주화운동 관련 장소가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이곳이 처음이다’라고 적힌 표지판에서 고문님의 노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김영만 고문님은 참교육학부모회 창립 후에도 ‘열린사회 희망연대’, ‘Corea 평화연대’ 등을 창립하고 노동, 국제 평화, 친일 청산, 민주화 운동, 통일 운동 등 평생을 시민사회 운동가로 활동했다, 아니 활동 중이다. 

처음 시작은 노동자 문화 운동이었다고 한다. 1987년 박종철 열사의 죽음에 분노해 “그날이 올 때까지,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의 깃발은 내릴 수 없다”로 시작하는 민중가요 ‘동지여 내가 있다’를 만들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장송곡으로 만든 노래였는데 노동 현장에서 투쟁가로 불려지고 있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고 한다. 

 

1989년 참교육학부모회 창립에 대해 김영만 고문님은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는 혁명적 사건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사는 갑, 학부모는 을이라는 걸 당연하게 여겼고 학부모에게는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 시대였기 때문이다”고 회고했다. 창립 후 5년 정도는 참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았지만 전교조가 합법화되고 전교조 교사들이 복직되면서 입장이 나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교사는 교사의 이해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서 학부모와 입장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데 그럴 때 우리회가 독자성을 가져야 된다”면서 이에 대해 우리회 안에 이견이 있어 내부 갈등을 겪기도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제는 과거처럼 투쟁해서 쟁취하는 시대도 아니고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다는 것이 더 안타깝다고... 통일 문제도 뒷걸음질쳤다고 본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해야 두 정상이 했던 약속을 지키는 것이고 평화협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교육학부모회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현 회장으로서 가장 부담이 큰 부분이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시길 바라며 질문했다. 

“대부분의 조직은 이기적이다. 특히 노조는 이기주의 조직이고 그런 조직은 당연히 오래 간다. 하지만 참학은 100% 이타적인 조직이다. 그런 조직이 30년 넘게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다. 내 자식 못 챙기면서 남의 자식들 모두 잘 키우자는 일에 앞장선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늘 미안하고 고맙다. 창립해서 후배들을 고생시켜 미안하고, 지금까지 그 힘든 걸 계속 해 오고 있어서 고맙다. 참학은 교육운동사에서 혁명적인 조직이고, 대한민국 운동사에서도 특별한 조직이다. 자기 희생으로 이어온 조직이기 때문이다. 더 잘하라고 할 것도, 더 바라는 것도 없다. 참학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따뜻한 위로에 울컥해 인터뷰가 중단됐다. 우리가 듣고 싶었던 말이 이거였구나... 

 

마지막으로 회원들에게 해 주고 싶은 2022년 덕담 한 마디를 부탁드렸다. “다시 새 희망을 갖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무엇이든 그렇게 ‘된다’고 믿어야 합니다.” 

 

이윤경 (회장)

 

22년 1월호 12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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