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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2,3월호/375호] 어린이·청소년 인권_청소년의 세뱃돈, 함부로 손대고 있진 않나(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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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3-03-07 15:32 조회2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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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세뱃돈, 함부로 손대고 있진 않나

 

얼마 전 설날이 지나갔다. 내가 어린이·청소년이었을 적엔 설날이면 세뱃돈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설레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내 세배를 받을 친척 어른들을 손으로 꼽아 보며 그렇게 받은 돈으로 뭘 할지 상상하곤 했다.

 

그런데 세뱃돈을 소재로 전해 내려오는 뼈 있는 격언이 있다. 바로 부모에게 세뱃돈을 맡기면 나중에 결코 돌려받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즉, 상당수 가정에서 세뱃돈을 저금해두겠다는 보호자에게 줬다가 그가 돈을 다 써버린 경험이 많았다는 뜻이다. 혹은 세뱃돈을 자기 통장에 넣어 놨는데 보호자가 말도 안 하고 가져다가 썼다는 경험담도 들어 본 적이 있다.(물론 잘 모아서 나중에 목돈으로 돌려주는 보호자도 있긴 하다) 그런데 이런 일은 사실상 어린이·청소년의 권리를 경시하는 행태 아닐까? 어린이·청소년을 존중하는재산 관리는 어떤 건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민법」은 만 19세 미만 어린이·청소년이 돈을 써서 물건을 사거나 계약하는 행위를 법정대리인(친권자, 다수는 부모)이 대리할 수도 있고 취소할 수도 있게 하고 있다. 또한 「민법」 제916조는 어린이·청소년 명의로 취득한 재산을 법정대리인이 관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것만 보면 세뱃돈도 그렇고, 어린이·청소년의 재산을 보호자가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 같다. 그러나 재산 관리를 비롯해 친권 제도의 대전제는 친권을 행사하는 데 어린이·청소년의 복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보호자가 재산관리권을 행사할 때는 주의할 의무가 있고 어린이·청소년에게 불이익이 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는 게 법의 취지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세뱃돈을 가져가서 가계 생활에 보태거나 부모마음대로 쓴다고 해서 무언가 법적 조치가 내려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청소년의 재산을 부모가 관리할 때는 어린이·청소년의 복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는 게 최소한의 도리겠다.

 

무엇보다도 세뱃돈을 저금해주겠다고 했다가 돌려주지 않는 경우, 제대로 말도 하지 않고 가져다 쓰는 경우는 모두 어린이·청소년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라는 문제점이 있다. 그들이 잘 모를 거라고 속이는 것, 혹은 그들 자신의 재산이자 사생활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세뱃돈을 이쪽 집 부모가 저쪽 집 자식에게 주고 저쪽 집 부모가 이쪽 집 자식에게 주니 결국 어른들 돈을 주고받는 거라고 합리화하는 예도 있다. 그러나 그 논리대로라도 그 과정에서 어린이·청소년들은 자기 돈인 줄 알고 받았다가 빼앗기는 경험을 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요점은 나이가 어리더라도 자기 소유에 대한 관념이 있고, 그걸로 어디에 쓸지 계획을 가질 수 있으며, 자신의 영역이 함부로 침범당하는 일은 좋은 경험으로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세뱃돈을 가져다가 써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이에 대해 잘 설명하고 형식적으로라도 동의를 구하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다.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에서 어린이·청소년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렇게 말을 걸고 의견을 묻는 것 자체가 존중받는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혹은 어린이·청소년이 직접 자신과 관련해 들어가는 생활비 등을 세뱃돈으로 충당하도록 하고 직접 돈을 써 보는 경험을 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세뱃돈뿐만 아니라, 특히 어린이·청소년의 경제 영역에서 인권은 지나치게 무시당하고 있다. 그들이 경제적으로 어른들에게 의존한다고 여겨져서 한층 더 그런 것 같다. 학교나 공공기관에서도 어린이·청소년에게는 사례비를 유독 적게 주는 예, 봉사시간, 문화상품권 등으로 대신 지급하는 예가 많다. 어린이·청소년들도 살아가는 데 돈이 필요하고, 그들의 사회적 활동과 참여가 활발해 질수록 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어린이·청소년을 독립적인 인격체이자 경제 권리를 가진 주체로 존중하면서 소통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자식의 세뱃돈을 함부로 써도 되는 돈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그 첫 단추가 될 수 있을 듯 싶다.

 

공현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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