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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8월호/380호] 미디어와 만나기_센과 치히로를 다시 만났습니다(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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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3-08-09 12:23 조회1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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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를 다시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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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보았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괴이했다. 이야기가 시작되고 돼지가 된 치히로의 엄마, 아빠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머리 큰 마녀 ‘유바바’와 초록색 머리만 뛰어 다니는 ‘돌머리 삼총사’ 역시 괴이했다. 잔인한 말들을 내뱉는 아기 ‘보우’는 나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그런 괴이함의 정점은 얼굴 없는 귀신 ‘가오나시’다. 괴이한 등장인물들로 정신이 혼미한 상황에서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일을 해야만 살 수 있는 사회적 자아인 ‘센’과 본래 자신의 이름을 잊지 말아야 하는 개인적 자아인 ‘치히로’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진짜 나’를 잊고 사회적 자아로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했다.  

 

어느덧 10여 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호태가 태어났고 호태가 5~6살 무렵,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다시 보게 되었다. ‘가오나시’는 아주 유명해졌고, 가오나시가 유명해진만큼 괴이했던 등장인물들도 어느새 친숙하게 느껴졌다. 나는 괴이한 등장인물들 속에서 씩씩하게 일하며, 동료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센’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였을까? ‘센’의 성장 과정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소극적인 태도가 적극적인 태도로, 겁쟁이에서 두려움에 맞서는 용감함으로, 변화를 싫어했던 소녀에서 새로운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소녀로, 자신의 처지를 뛰어넘어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으로 ‘센’은 성장해 갔다. 무시무시하게 변한 ‘가오나시’ 앞에서도 당당한 ‘센’이 너무나도 멋졌다.

   

호태가 초등학교 6학년 무렵, 다시 보게 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영화로 보였다. 자본가인 유바바와 그의 부하들, 그리고 ‘눈매가 사나워진’ 관리자인 하쿠가 보였다. 노동자 계급의 민달팽이들과 개구리들이 계약 관계에 의해 본래의 자신을 잃고 하루하루의 일에 매여 살고 있었다. 그리고 소비자인 엄마와 아빠, 그리고 가오나시도 있다. 이 영화의 첫 대사는 ‘역시 촌 동네야. 물건을 사려면 시내까지 나가야겠어’라는 엄마의 말이다. 주인도 없는 가게에서 ‘돈을 내면 된다’고 함부로 음식을 먹었던 그들은 소비의 욕망에 지배당한 ‘소비자’이다. 가오나시 역시 채울 수 없는 공허를 소비를 통해 채우려 한다. 채워도 채워도 채울 수 없는 욕망은 소비를 통해 지속적으로 커지기만 할 뿐이다.  가오나시는  결국  ‘제니바’가  살고 있는 조용한 시골 마을에 가서야 편안한 만족을 얻을 수 있었다. 

 

어느덧 중학교 2학년이 된 호태와 함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다시 보았다. 그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었다. 사실 센의 ‘성장 이야기’로 본 이 영화는 이상하게 마지막 장면이 거슬렸다.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성장한 만큼 당당하게 혼자서 굴속을 지나갈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치히로는 처음에 굴속으로 들어올 때와 똑같이 겁먹은 채로 엄마 팔에 매달렸다. 뭔가 어색했다. 그러던 중 감독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성장담’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보았다. ‘어? 성장담이 아니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영화를 다시 보았다. 그제서야 ‘센’과 ‘치히로’가 다시 보였다. 그렇다. 누구나 소심한 겁쟁일 때도 있고, 용감하게 맞설 때도 있다. 어떤 곳에서는 소극적으로 또 어떤 곳에서는 적극적으로 태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변화를 싫어하는 모습도,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가는 모습도 모두 다 ‘나’인 것이다. 어쩌면 ‘성장담’에 갇혀 한쪽의 나를 부정하면서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20여년이 지나서야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제니바가 치히로에게 건네는 말을 곱씹어본다. “치히로, 좋은 이름이구나! 네 이름을 소중히 해야 한다. 너라면 잘 해낼 거야!” 

 

송민수 (홍보출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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