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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5월호/354호] 기획특집_‘개성을 실현할 권리’에 대해 생각하기(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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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처 작성일21-05-11 16:28 조회1,3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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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을 실현할 권리’에 대해 생각하기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학생들이 다 모인 소강당에서 국어 선생님은 용의 복장 규정을 설명했다. 자세한 규정 내용이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다만, 몇몇 학생들이 조회 후 교실로 돌아갈 수 없었고, 그 중에는 나도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얼굴이 허옇게 뜬 애, 입술이 붉은 애, 머리 색깔이 얼핏 갈색으로 보이는 애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왜 내가 남았는지 알고 있었다. 타고난 곱슬머리는 중학생 때부터 파마를 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파마하지 않았으니 결백하다고 입을 달싹거리면서도 왠지 긴장이 되었다. 선생님의 치켜 뜬 눈초리 앞에 더듬더듬 말을 했지만 교실로 돌아가는 내내 속이 이상했다.

내가 다녔던 학교와 마찬가지로, 곱슬머리를 가진 학생들이 자연적인 곱슬머리임을 증명해야 하는 학교가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이는 염색과 파마가 금지된 두발 규정 때문이다. 

학생이었던 내가 항상 불만이었던 것은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느냐는 것이었다. 

어떤 선생님은 어렸을 때 사진을 가져오라고 했고, 어떤 선생님은 부모님 서명을 받아 가져오라고 했다. 부모님 서명을 받으면 내가 곱슬머리이고, 서명을 못 받으면 곱슬머리가 아닌가? 

내가 나임을 증명하라는 요구는 터무니없었고, 사실 폭력적이었다.

검은 머리와 직모라는 기준에 맞지 않는 내가 이상한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기준 자체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자연적인 곱슬머리가 아니더라도, 파마를 한 게 내가 죄를 지은 건가? 비청소년이 된 나는 지금 파마를 했다고 누군가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을 필요가 없다. 지금 되돌아 보면 ‘그때는 그래도 되니까’ 외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는 불합리한 규칙이라고 생각한다.

 

개성을 실현할 권리는 어떻게 누릴 수 있나?

학생인권조례에는 ‘개성을 실현할 권리’라는 항목이 있다. 학생들은 개성을 실현할 권리가 있기에 교장 및 교직원이 학생의 두발, 복장 등 용모를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개성의 정의는 ‘다른 사람이나 개체와 구별되는 고유의 특성’이다. 

사람들은 각각 취향과 특성이 다르기에 어떤 사람은 구불거리는 머리를 빳빳하게 펴려고 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생머리를 일부러 파마해서 물결 모양을 낸다.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과 특성대로 자신의 겉모습을 꾸미고 바꾼다. 우리는 미용실에 가는 사람들을 한 명씩 붙잡고 왜 이런 머리 모양을 하느냐고 이유를 따지고, 보기에 좋지 않다고 벌점을 매길 수 없다.

사실, 학생일 때의 나는 개성을 실현할 권리에 관심이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는 선생님 앞에 서면 기분이 나빴지만 딱히 반항하지도 않았다. 외모에 대한 고민이라면 교문 앞을 지날 때마다 치마 길이가 무릎 위로 올라가지는 않는지, 하복 안에 입은 티셔츠가 비치지는 않는지 정도였다. 내가 어떤 스타일의 옷을 좋아하는지, 어떤 모양의 악세서리를 좋아하는지와 같은 것은 고민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고민을 하는 것만으로 ‘학생답지 못하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학교의 용의복장 규제와 ‘학생다워야 한다’는 모호한 강요는 내가 자유롭게 권리를 탐색하고 즐길 수 없게 했다.

졸업 후 머리를 탈색해보고 작은 타투를 두어 개 했다. 남들과는 다른 곱슬머리, 남들과는 다른 체형을 싫어하기만 했다가 이제는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특성을 사랑스럽게 봐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발등에 만다라 문양의 타투를 하고 나서, 발등은 나의 몸 중에 가장 좋아하는 부위가 되었다. 

결국 개성을 실현할 권리는 내가 나답게 있기 위한 권리 중 하나다. 원하는 머리 모양과 옷차림을 할 권리는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고, 원하는 동아리에 들어가고,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권리와 마찬가지로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 프로그램이나 교육 콘텐츠 홍보물에서 모델로 등장하는 학생들은 하나같이 옅은 화장에 교복을 입은 채 남학생은 짧은 머리, 여학생은 단발 내지는 긴 생머리를 하고 있다. 성차별임과 동시에 ‘학생은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재생산한다. 이런 사소하고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일상의 것들이 청소년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도 10년 

2010년, 처음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 10년이 넘게 흘렀다. 개성을 실현할 권리로 일컬어지는 학교 내 두발, 복장 규제 폐지는 학생인권조례를 대표하는 부분이면서 제정될 때 가장 반대가 심한 조항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 서울, 광주, 전북 등에서 조례가 제정될 때도 복장에 있어서는 학교장이 규제할 수 있다는 등의 조항이 붙었다. 어떤 학교들은 학생과 학부모의 동의를 받았다는 핑계를 대며 학칙 내 두발 복장 규제를 유지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작년, 스포츠머리만 가능하게 한 대구 한 학교의 생활 규정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학생생활규정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했다고 하더라도 내용 상으로 실질적 정당성을 확보한 것은 아니다”라며 학칙 개정을 권고했다. 

아무리 민주적으로 학칙을 개정했다해도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되었다면 개정이 잘못되었다는 뜻이다.

지난 3월, 서울시의회에서도 서울학생인권조례의 ‘복장에 대해서는 학교규칙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전면 삭제했다. 문장길 시의원은 이러한 조항이 서울 시내 31개의 여학교에서 여전히 속옷 규정이 남아있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발표했다. 언론을 통해 속옷 규정이 자극적으로 비추어졌지만, 속옷 규정 뿐 아니라 학생들의 두발과 복장을 규제하는 모든 조항들이 학생 인권을 존중하기 위한 조례의 취지에 어긋난다. 이렇게 문제적인 실태에도 불구하고 그간 제대로 학교들을 모니터링하지 않은 교육청과 정부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우리 학교에 이런 복장 규제가 있어요!’ 제보 활동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전국적으로 학교들의 용의 복장 규정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실시하고 있다. 300여개 가까이 쏟아지는 제보들을 통해 조례가 아닌 법 수준의 학생 인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대로인, 학생 인권의 처참한 수준에 대해 전사회적인 경각심이 필요하다. 

 

치이즈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21년 5월호 6면-1.JPG

 

21년 5월호 6면-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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