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뿐인 학생회’… 학교 사사건건 개입해 무력화

심혜리·이서화 기자

입시부담에 학생 참여도 줄어

최근 인천의 한 고교에서는 학교 내 일부 동아리가 말없이 사라졌다. 학생회장 ㅈ군에 따르면 이 학교는 최근 인천시교육청이 지정한 ‘10대 명문고’로 선정되면서 “학업 성과를 보고해야 한다”는 이유로 학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노래패나 춤 동아리를 해산하는가 하면, “축제를 미루겠다”고 일방적으로 학생회에 통보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회 활동 모범학교로 자주 인용됐던 서울 A여고도 지금은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이 학교 학생회는 당시만 하더라도 매년 1800만원의 예산을 직접 집행하고, 스스로 축제와 체육대회, 4·19 행사 등을 기획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흘러간 옛이야기에 불과하다. 학교 측은 각종 행정적 이유로 학생회의 예산권을 거둬갔다. 지난 2월 이 학교를 졸업한 홍모양(19)은 “밤늦게까지 남아 축제를 준비하려 하면 부모님들의 항의전화가 학교로 걸려왔다”면서 “학생회 활동에 시간을 뺏기면 입시에 소홀할 수밖에 없어 심적 갈등이 컸다”고 했다.

비민주적인 학교의 의사 결정과 입시 부담으로 학생회나 동아리 같은 학생 자치활동이 실종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최근 민주시민 교육을 위해 “학생 자치활동을 활성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이와 정반대의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학교 운영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최근 경기 B고에서는 학교생활인권규정 개정 심의위원회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올린 학칙 개정안이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에서 부결된 일이 발생했다. 이 학교 교장은 두발·복장 규제완화 내용을 담은 개정안에 대해 “복장 규제는 여전히 필요하다”고 이유를 밝혔다.

교과부는 간접체벌을 허용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학운위에 학생대표의 참관을 의무화해 학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학생을 교무·학사 행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학교문화에서 이들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인권교육센터 ‘들’의 배경내 상임활동가는 “학생 자치활동은 각종 학내 문제를 해결하고, 입시에 대한 압박을 학생 스스로 해소하는 길이 될 수 있다”며 “학교가 학생들에게 자치공간과 함께 실질적 권리와 역할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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