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독서’ 우리 학교에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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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봉원중 22개 독서동아리 발표회를 가다

학교 현장에서 ‘독서교육’은 이미 중요한 열쇳말이다. 하지만 독서마저 입시와 연결짓는 탓에 학생들은 책읽기가 괴롭다. 서울 봉원중학교(교장 배인식) 학생들한테 독서는 ‘좋아서 하는 일’이다. 이 학교에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독서동아리 22개가 있다. 3명에서 6명까지 적은 인원으로 꾸려가는 동아리들은 지난 3월에 결성됐다. 학생들은 일주일에 한번 이상 학교도서관 글벗누리에 모여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활동을 해왔다. 소규모 독서동아리들이 나오게 된 배경은 뭘까?

고요한 도서관은 상상할 수 없다. 봉원중 학교도서관 글벗누리는 방과후에 더 활기차다. 매주 월요일에는 책읽는BF, 싱책향, 네잎클로버가, 수요일에는 나눔누리, 책이나읽어요, 말할수없는비밀이 도서관을 찾는다. 화요일을 제외하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독서동아리 22개가 돌아가며 도서관 한쪽을 예약해뒀다. 책을 읽고 하는 일은 동아리마다 다르다. 보통 함께 읽은 책에 대해 수다를 떤다. 수다는 진지한 토론으로도 이어진다. 신문스크랩도 한다. 때론 영화도 본다.

학생이 직접 기획하는 소규모 동아리

지난 9월17일, 독서동아리들은 약 7개월 동안의 활동을 발표하는 발표회를 열었다. 학생과 학부모, 관악구청 관계자 등 100여명이 개나리관에 모였다.

“딱딱한 쌀은 바로 먹을 수 없잖아요. 근데 그 쌀에 물도 주고, 압력도 넣어서 잘 끓이면 먹을 수 있는 밥이 되죠. 쌀이 밥이 되는 과정처럼 저희도 이 활동을 통해서 밥처럼 잘 성장해보자고 만든 이름입니다.” 유보경(3년)양은 동아리 ‘책이끓는시간’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면서 “아직은 미숙하지만 동아리를 통해서 쌀에서 밥으로 변화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유양은 동아리 활동으로 얻은 소득이 크다. 평소 글 쓰는 걸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젠 원고지에 첫 문장을 쓰는 게 두렵지 않다.

“저희는 이름만 독서동아리인 팀입니다. 그렇지만 적은 양이라도 저희가 한 것을 모두에게 알려드릴까 합니다.” 다른 동아리에 비해 성과가 적고, 시행착오도 있었던 ‘책이나읽어요’의 발표는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신창우(2년)군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하반기에도 동아리를 꾸려볼 생각”이라고 했다. “부족했지만 저 스스로 발전이 있었거든요. 어휘력이 좋아지는 걸 느끼겠더라구요.”

일부러 읽으라고 해도 읽지 않던 아이들이 변했다. 씨앗이 꽃을 피우도록 물도 주고, 햇볕도 쐬게 해준 덕분이다. 봉원중 독서동아리 학생들이 이렇게 스스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이 학교 백화현 국어교사의 노력이 뒷받침돼 있었다. 백 교사는 3년 전부터 독서교육, 독서동아리의 중요성을 학교 안팎으로 전파하고 다녔다. 2008년도부터 2010년도까지는 도서관 환경을 제대로 갖추는 해였다. “도서관에 오라!”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발길이 닿도록 리모델링을 하고, 좋은 책들을 서가에 꽂았다. 2010년도부터는 독서동아리가 왜 중요하고, 왜 필요한지를 열심히 알리고 다녔다. 학교장, 동료 교사들과 독서교육의 필요성을 함께 인식하고, 뜻을 공유하는 시기였다. 아이들이 책을 읽으려면 누구보다 학부모의 의식도 중요하다. 학부모총회 등에 참석해 학원을 보내는 것보다 독서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알렸다. 2010년에는 학생 12명으로 이루어진 명작읽기반을 운영해봤다. 올해는 이 학생들이 씨앗 구실을 하면서 여러 개의 독서동아리가 탄생했다. 독서동아리를 신설하는 과정에서는 학교예산에 더해 관악구청에서 동아리 운영 예산도 받았다. 독서동아리는 이렇게 교사의 뜻과 열정에 학교 쪽과 학부모의 협조, 지역사회의 도움 등이 더해져 완성된 결과물이다. 백 교사는 “3년 동안 기초 작업을 했다”며 “그냥 도서관에 가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 되고, 책이 좋아서 제 발로 도서관을 찾도록 동기를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장소 제공, 출석…교사는 ‘울타리’ 구실

소규모 독서동아리는 철학이 뚜렷하다. 바로 ‘학생이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는 ‘울타리’ 구실만 한다. 백 교사는 “내가 내용을 일일이 입에 물려주는 게 아니다”라며 “출석체크를 하고, 격려해주고, 끝까지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정도로만 개입을 하면서 울타리 구실만 한다”고 했다.

지난 4월2일부터 3일까지는 1박2일로 ‘밤새워 책읽기’ 행사를 열었다. 동아리를 왜 운영하는지,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회의를 하고, 관련 교육을 받는 일종의 연수시간이었다. 백 교사는 “독서가 얼마나 사람을 성장시키는지, 다른 나라 학생들은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 등을 설명해줬다”며 “그다음은 모두 학생들의 몫”이라고 했다.

실제로 동아리 이름을 짓는 일부터 프로그램 운영, 읽을 책 목록 선정 등은 모두 학생들이 직접 했다. 동아리 ‘가람슬기’는 달마다 주제를 정해서 책을 읽었다. 최연재(3년)양은 “5월에는 ‘인간의 본성’을 주제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 등의 책을 읽었다”고 했다. “독서는 신문스크랩으로 이어졌어요. 각자 기사를 읽고 5~10줄로 요약을 해서 공책에 정리해 와요. 그러고는 모여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른 사람 생각을 듣죠.”

자유방임체제 아래 독서동아리들이 잘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은 자발성에 대해 ‘믿음’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내가 직접 운영하는 동아리고, 선생님들이 믿어주신다는 점에서 즐거움과 자부심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유보경양은 “특별활동의 경우는 선생님이 오늘 어떤 걸 하자고 프로그램을 짜 오시면 여러 명이 따라가는 방식이지만 동아리 활동은 선생님의 개입이 거의 없고 우리가 중심이 되니까 좋다”고 했다. ‘책이나읽어요’의 전상호(2년)군은 “활동은 우리가 알아서 하도록 믿고 지원해주시고, 팀원과의 다툼 등 문제가 일어났을 때만 개입해주시는 방식이라 특별활동과도 다르다”고 했다.

독서 흥미 생기고 편독 습관 사라져

동아리 활동을 통한 변화는 학생들 스스로 느낀다. 가장 큰 변화는 읽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동아리마다 함께 읽을 책을 직접 고르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던 변화다. 학생들은 표지가 예쁜 책, 제목이 귀에 익은 책, 신문에서 본 책 등 읽고 싶은 책 제목을 적어와 동아리 구성원들과 검토해 목록을 선정한다. 물론 읽어야 하는 책의 권수도 학생들이 직접 정한다.

대충 읽던 책을 정독하게 됐다는 것도 큰 변화다. 대부분의 동아리들이 독서를 한 뒤 대화, 토론 등을 하기 때문에 책을 꼼꼼히 읽어온다. 유양은 “작가의 가치관, 배경 등도 찾아보고 오게 된다”며 “혼자서 읽으면 그냥 읽고 끝내게 되지만 친구들하고 얘기 나눌 걸 생각하니까 자료조사를 하게 되더라”고 했다.

함께 읽으면서 다양한 장르의 책읽기도 가능해진다. 많은 학생들이 동아리 활동 덕에 편독하는 습관도 덜어졌다고 말한다. ‘싱책향’의 이자림(2년)양은 “혼자 읽었으면 안 읽었을 책인데 동아리를 통해 읽게 된 책들이 있다”며 “<맛있는 물리> <영화는 좋은데 과학은 싫다고?> 등은 어려워서 안 읽던 과학 분야의 책들인데 모임 덕분에 읽게 됐다”고 했다.

최연재양은 독서동아리를 통해 평생의 친구도 얻었다. “책을 매개로 뜻이 맞는 친구들을 얻었어요. 모두 중3이어서 앞으로 바빠지겠지만 고교에 가서도 동아리를 계속 꾸려나가려고 해요.”

“독서동아리의 특징은 흔히 말하는 공부 잘하는 친구들도 있고, 노는 거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다는 겁니다. 아주 자유로운 모임입니다.” 백 교사는 “학생들이 성적과 상관없이 동아리에 참여하면서 평생의 독서 친구를 사귀면 좋겠다”며 “무엇보다도 스스로 성장하고, 배우는 것의 기쁨을 알았으면 한다”고 했다. “제 바람은 내년부터는 월요 독서동아리가 월요 수학동아리, 과학동아리로 확장이 되는 겁니다. 독서동아리처럼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서 스스로 운영하고, 배움과 성장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동아리들이 늘면 좋겠습니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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