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마에 염색까지... 고딩들 아무 문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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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조성범 기자]10월 5일이면 경기도교육청에서 경기도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한 지 1주년이 된다. 지난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제정·공포되자 학교 현장에서는 학교생활인권규정을 개정하고 인권교육을 실시하는 등 가시적인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인권조례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도 함께 했다. 서울과 전북, 광주, 경남 등의 지역에서도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경기도학생인권조례 1주년을 맞아 교사·학생·학부모 등이 학교 현장에서 보고 느낀 인권조례 체험기를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말>

지난해 1월 19일 오후 경기 수원시 경기도교육청에서 열린 '2010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종합 공청회'에서 참석한 학생과 학부모들이 조례 제정에 대한 토론자들의 토론을 경청하고 있다.
ⓒ 유성호

수업 종료를 알리는 벨소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학생 한명이 학생부 사무실로 들어온다.

"선생님, 이거 인권 침해 아닌가요? 수업시간에 자는데 선생님이 깨웠어요. 이거 명백한 인권 침해죠?"

또 다른 학생은 수업시간에 휴대전화를 사용하다 교사에게 압수당한 것이 "인권 침해"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인권조례가 본격 시행되면서 학교에서 종종 일어나는 풍경이다.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행위는 스스로 학습권이라는 자기의 소중한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교사가 학생을 깨운 것은 학습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또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은 얼마든지 규제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다만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는 학교 구성원간의 협의를 통해 규칙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내용도 곁들였다. 이 과정에서 인권조례의 해당 조항을 보여주며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생이 금세 수긍하고 돌아갔다.

인권친화적 생활지도로, 아이들이 밝아졌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오는 10월 5일 첫돌을 맞는다. 인권조례는 탄생과정에서 숱한 산고를 겪었다. 그 이후에도 본질을 벗어난 이념적·정파적 논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많은 상처를 입기도 했다. 인권조례 시행 첫해에 교사와 학생, 교사와 교사 사이에서 미묘한 갈등이 나타나는 등 성장통을 겪기도 했다. 일부 언론은 자극적인 표현을 동원해 갈등 양상을 확대 재생산하는 정치적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인권조례가 빠른 시일 내에 학교에 정착하도록 노력하는 교사들도 많이 있다. 학생 인권교육을 위해, 인권친화적인 학교문화를 위해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는 실천활동을 하는 교사들의 노력이 조금씩 결실을 맺으면서 학교 현장에 작은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조례의 정착을 위한 첫 번째 과제는 학생생활규정을 개정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규정이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3회 흡연 적발 시 퇴학, 벌점 누적 시 퇴학, 무단결석 15일이면 퇴학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학생생활규정을 개정하는 데 적잖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토론과 합의를 통해 결실을 맺게 되었다. 그 결과 지난해 200여 명이 학교를 떠났으나, 올해는 강제적으로 학교를 떠난 사례가 아직 한 건도 없다. 인권친화적인 제도 정비를 통해 학생들의 중도 탈락을 예방하는 교육적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두발 길이 제한도 풀었고, 머리 염색과 파마도 허용했다. 어른들의 우려와 달리 염색이나 파마를 하는 학생 수가 증가하지 않았다.

인권친화적인 생활지도가 이루어지면서 나타나는 변화는 학생들의 표정이 밝아졌다는 것이다. 교문 앞에서 긴장하던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또 하나의 변화는 학생들이 당당하게 자기의사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때론 의사 표현이 너무 직설적이어서 교사들과 작은 실랑이가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모습에서 학생들의 살아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는 힘에 억눌려 자신의 생각도 말하지 못했던 모습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학생을 어떤 눈으로 보느냐가 가장 중요

지난해 1월 19일 오후 경기 수원시 경기도교육청에서 열린 '2010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종합 공청회'에서 참석한 학생과 학부모들이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으로부터 조례 제정의 취지에 대한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 유성호

학생들은 교사의 언행을 보고 들으면서 배운다. 교사가 먼저 학생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친구와의 관계나 교사와의 관계에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익히게 되는 것이다. 인권교육을 통해 얻는 것은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의 눈높이에 내 마음을 맞추는 것에서부터 인권교육은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는 인권교육을 통해 학생들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프레임과 관련한 유명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어느 신자가 목사에게 물었다.

"기도하는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됩니까?"

목사는 기겁을 하면 손사래를 쳤다.

"그럼 흡연하는 중에 기도를 해도 됩니까?"

"기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마음이 중요한 거지요."

이 우스갯소리는 '프레임'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된다. 그렇다. 인권을 논할 때 중요한 것은 학생을 어떤 눈으로 보느냐이다. 즉 학생을 엄연한 인격체로 보느냐, 미성숙한 존재로 보느냐의 차이다. 그들을 인격체로 본다면 그들이라고 해서 모든 권리를 유보 당할 이유가 없다.

나이 어린 학생도 엄연한 인격체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 그것이 곧 인권감수성이다. 교사는 학생을 통해, 학생은 교사를 통해 서로 인권감수성을 향상시키는 학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학교가 평화공동체로 나아가는 디딤돌 한 개가 마련된 셈이다.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차질없이 제정되기를 바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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