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체벌’ 웃음 커졌지만…“인권보장은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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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1.10.04. 오후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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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경기 학생인권조례 제정 1년

산본공고의 변화

처벌 위주서 배려·상담문화로

혼만 내던 선생님들 달라져

학습중단 작년 200명·올핸 0명


4일 아침 8시20분 경기도 군포시 산본공고 정문. 1학년 학생 25명과 교사가 꾸벅 인사를 하며,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난해까지 이 학교 등굣길 교문에선 여느 학교와 다름없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생활지도 교사들이 두발과 복장을 단속하고, 규정에 어긋나는 학생을 잡아내 오리걸음 등 간접체벌을 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면서, 교사들이 자체 회의를 통해 ‘교문 인사’로 등굣길 문화를 바꿨다. 이 학교 조성범 교사는 “단속과 체벌 위주의 등굣길 문화에 인권침해 요소가 다분하다고 생각해오던 터에,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면서 교사와 학생이 서로 존중하는 등굣길 문화를 만들자는 합의를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학교 2학년 조옥주(17)양은 “지난해에는 화장을 하거나 치마 길이가 짧으면 선생님한테 혼나니까 늘 피해 다녔다”며 “올해는 규제가 대폭 완화돼 학교 생활이 훨씬 편해졌다”고 활짝 웃었다.

산본공고는 전교생 877명 가운데 354명이 급식 지원을 받을 정도로 저소득층 학생들이 많은 학교다. 지난해 1년 동안 200여명의 학생이 학교를 그만뒀다. 1학년 학업중단율이 29.9%에 달했다. ‘흡연 적발 3회, 무단 결석 15일 이상’이면 퇴학을 시키는 엄격한 생활규정 때문이었다. 학교 쪽은 “강하게 학생을 잡아야 학교 분위기가 잡힌다”고 여겼다.


하지만 올해부터 학생들이 생활규정 마련에 적극 참여했다. 3월부터 학교에서 운영하는 ‘리더십 함양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회 선거 출마자를 선정했고, 이렇게 꾸려진 학생회는 학급회의를 통해 학생인권조례에 따른 학칙과 학교생활인권규정 개정 방향을 논의했다. 학교는 지난 5월 ‘흡연 적발 3회, 무단 결석 15일 이상 퇴학’ 규정을 없앴다. 이 학교 2학년 조민수(17)군은 “요즘은 선생님들이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같고, 억압적이기만 했던 학생부도 문턱이 낮아졌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올해 10월 현재까지 이 학교에선 단 한명의 퇴학생도 나오지 않았다. 김윤배 교장은 “처벌 위주에서 배려와 상담, 관심 위주의 학교로 바꾸는 과정에서 고통이 있었지만, 교사·학생 관계가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로 바뀐 것은 엄청난 변화”라고 평가했다.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된 지 5일로 1년이 된다. 학교 현장에선 ‘학생 인권 존중’을 위한 작은 발걸음들이 결실을 맺고 있다. 학교 현장의 변화에는 제도보다 문화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여전히 충돌이 일어나는 학교도 있지만, 1년이란 기간은 학생에게나 교사에게나 ‘실험’과 ‘변화’의 과정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목마름’은 여전했다. 경기도의회가 지난 6월 학생 56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담은 ‘학생인권조례 시행에 따른 모범사례 및 개선방안 연구’ 용역보고서를 보면, 학생들의 44.9%는 여전히 학교에서 “인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제보를 받은 사례에서도 여전히 체벌, 억압적인 교문 지도, 두발·복장 검사 등을 하는 학교가 많았다. 남양주의 한 고교는 교문과 현관에서 실내화·신발·복장 검사를 하고, 손바닥 때리기와 앉았다 일어서기 등 직간접 체벌을 하고 있었다. 안양시의 한 고교는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강제로 시키고 있었다. 안양의 한 고교 1학년 학생은 “체벌은 많이 없어진 것 같지만 ‘인권조례가 너희들을 망친다’는 말을 하는 등 교사들의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체벌의 대안으로 여러 학교들이 도입한 상벌점제다. 기준이 모호한데다, ‘말 잘 듣는 학생’과 ‘안 듣는 학생’을 구분해 ‘문제 학생’을 솎아내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 남양주의 한 중학생은 “선생님들이 ‘~하면 벌점을 주겠다’고 겁을 주기도 하고, 벌점을 선생님 기분에 따라 마음대로 주는 등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군포/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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