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자유민주주의’ 등 그대로… 뉴라이트 손 들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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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1.11.09. 오전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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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복 교육과학기술부 학교지원국장이 8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새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집필기준을 설명하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ㆍ‘친일파 청산 노력’ 부분도 삭제

교육과학기술부는 8일 새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발표하면서 사실상 뉴라이트 쪽의 손을 들어줬다. 논란이 됐던 ‘자유민주주의’ 용어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표현은 그대로 남았다. 독재 부분은 대폭 축소돼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독재행위의 구체적 언급이 모두 사라졌다.

■ 교과부,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주의”

이날 발표된 집필기준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50)이 지난 8월 역사교육과정을 고시하면서 ‘민주주의’에서 무단 변경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그대로 유지했다. 본문 중 한 문장에서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표현으로 바꾸긴 했지만 교과부의 기본 원칙은 ‘자유민주주의’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김관복 교과부 학교지원국장은 “교과서 검정 통과 여부는 검정위원들이 결정할 내용”이라면서도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곧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하므로 집필자들은 이에 충실하게 써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자유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표현만 쓸 경우 검정 통과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한국현대사학회 등 뉴라이트 측은 “인민민주주의와 구분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란 표현으로 한정짓는 것이 헌법정신에 부합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인재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연세대 교수)은 “역사학계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곳은 (뉴라이트 계열인) 한국현대사학회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법제처 홈페이지를 보면 (헌법 전문의 표현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영어 표기는 ‘the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로 돼 있다. 이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를 뜻하는 것으로,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좁은 의미의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와는 다르다.

■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 독재, 친일파 청산노력 삭제

이번에 역사교과서 개정 과정에서는 역사교육과정에도, 집필기준에도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의 이름이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4·19 혁명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발전과정을 설명한다. (중략) 자유민주주의가 장기집권 등에 따른 독재화로 시련을 겪기도 하였으나, 이를 극복하였으며 (중략) 역대 정부의 공과를 서술할 경우에는 균형 있게 다루도록 유의한다’고 두루뭉술하게 표현돼 있다.

현행 집필기준은 다르다. ‘4·19 혁명은 장기집권을 위한 이승만 정부의 부정선거 등에 맞서’ 일어난 것이고, ‘박정희 정권이 두 차례의 헌법 개정을 통해 1인 장기 집권체제를 성립’했다고 정권의 이름을 명시하고 있다.

또 ‘유신체제가 무너진 뒤 5·18 민주화 운동을 비롯하여 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하려는 국민의 노력이 있었으나 전두환 등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새 집필기준에서는 이런 구체적 내용들이 모두 빠졌다. 또 현행 집필기준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친일파 청산에 노력하였음을 서술한다’는 부분도 사라졌다.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 협의회’ 대표인 주진오 상명대 교수(54)는 “집필기준에서 이 같은 내용이 모두 빠짐으로써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포럼이 만들었던 ‘대안 교과서’ 같은 교과서를 만들어도 검정을 통과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 그대로

집필기준은 또 정부 수립과정을 설명하면서 ‘유엔 결의에 따른 총선거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받은 사실에 유의한다’고 했다.

1948년 12월12일 ‘유엔총회 결의 195(Ⅲ)’에서는 한국 정부를 ‘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코리아 내 유일 정부)라고 표현하고 있다. 역사학계에서는 여기의 ‘Korea’란 표현을 두고 한반도 전체냐, 남한만이냐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다. 그러나 1949년 1월19일 방송된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방송에서 미국과 영국은 “한국 정부는 한반도 전체의 유일 합법정부가 아니라, 유엔 감시하에 자유선거가 거행된 구역 안에서의 법적으로 유일한 자치독립정부라고 인정한 것”이라는 공식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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