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한 ‘전국 62등’…만족않는 엄마의 체벌…참혹한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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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1.11.25. 오전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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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엄마 살해한 고3 학생, 왜…

‘전국 1등 하고 서울대 가라’ 밥 안주고 잠 안재워

주검 8개월간 방치…친구 불러 놀고 수능도 치러

“거짓 성적표 들통땐 무서운 체벌 받을까 겁났다”


어머니를 살해하고 8개월 동안 주검을 방치한 지아무개(18)군은 왜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저질렀을까?

경찰 조사와 아버지·이웃주민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군은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할 경우 아들을 몰아세운 어머니의 ‘지나친 교육열’에 오랫동안 압박을 받아 고통을 겪던 가운데 그릇된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군의 어머니 박아무개(51)씨는 집 거실에 ‘서울대학교’라고 쓴 큰 종이를 붙여 놓았다고 한다. 박씨는 평소 아들에게 “전국 1등을 하고, 서울대에 가라”며 다그치고, 아들의 성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밥을 안 주거나 잠을 못 자게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지군은 이 때문에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성적표를 위조해왔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범행 전날에도 박씨는 전국 62등으로 위조한 아들의 성적표를 보고 “더 잘하라”는 잔소리와 함께 지군을 심하게 체벌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군이 다닌 ㄱ고등학교 관계자는 “지군이 1·2학년 때는 반에서 3등 안에 들었지만 3학년 들어서 반에서 10위권으로 성적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지군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전국 등수가 원래는 4천~5천등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학교 교장은 “그럴 리 없다. 그 정도까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지군은 부모가 5년 전 별거를 해 어머니와 단둘이 살게 됐지만 평소 교우관계가 원만했고 학교에서도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고 학교 관계자들은 전했다. 어머니에게 특별히 반항하거나 주변에 고민을 털어놓은 적도 없었던 지군은 “어머니가 계속 꿈에 나타나 무서워 자살해 버릴까 생각했다”고 울먹이며 범행을 자백하는 등 죄책감에 크게 시달렸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시신이 있는 안방 문틈을 공업용 본드로 밀폐해 냄새가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게 해놓은 지군은 이웃과 친지들이 어머니의 행방을 물어오면 “해외여행 중”이라고 둘러댔으며, 지난 10일 대학수학능력시험도 치렀다. 어머니를 죽인 뒤 지군은 학교를 15번 결석해 담임교사가 상담을 했지만 학업 성적과 대학 진학, 이성 교제가 고민이라는 이야기뿐이었다고 학교 관계자는 전했다. 한 이웃주민은 “평소에 엄마가 애를 나무라는 소리가 굉장히 컸다”며 “최근에는 평소와 달리 자주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와 놀기도 해 애가 많이 변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군의 범행은 매달 120만원의 생활비를 보내오다 1년 만에 집에 들른 아버지에 의해 들통났다. 지난 22일, 수능을 친 아들을 보러 찾아온 아버지는 엄마가 가출했다는 말만 반복하며, 안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지군을 이상하게 생각해 경찰에 신고했다.

24일 구속된 지군은 심경이 어떤지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지군은 말없이 검은색 옷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버지는 “애가 8개월 동안 겪은 것만으로도 죗값을 받았다”며 “큰 고통을 참고 자살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지훈 정환봉 김효진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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