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험 닥치면 훔치고, 싸우고, 아프고 ‘돌변하는 아이들’

특별취재팀

모두가 ‘짐승’이 된다는 ‘시험 스트레스’

아이들은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오면 모두가 ‘짐승’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 목동 학원가 앞에서 만난 김은지·이혜주양(15·이하 학생 이름은 모두 가명)은 “아이들이 시험 2주 전만 되면 서로 많이 싸우고 거의 미쳐 있다”고 말했다. 학업 스트레스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잘하는 아이대로, 못하는 아이는 못하는 아이대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 평소 시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인가요.

■ 박소정(15·중3) = 전 평소에 밤 12시가 되면 잠을 자는데 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 새벽 2~3시까지 잠을 못 자요. 공부하느라고 못 자는 건 아닌데 심장이 두근두근거리고 눈이 말똥말똥해져서 잠이 안 와요. 시험이 이틀이나 사흘 정도 남으면 더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수면제를 먹으면 되나 싶다가도 못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먹지도 못해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도 잠을 잘 못 자다 보니까 학교에서도 졸려서 수다도 잘 안 떨어요. 애들 중에 집에서 공부하라고 타박을 많이 듣는 애들은 이 기간에 짜증이 많이 늘어요. 아무 이유 없이 다른 애들에게 짜증을 내서 집에서 못 푼 화를 푸는 것 같아요. 공부 잘하는 애들은 시험 당일날에 다른 애들이 자기 노트를 본 게 아니라 다른 걸 본 건데도 자기 쪽만 쳐다보면 ‘너 왜 내 노트 보냐’면서 자기 노트를 숨기고요. 정보공유도 공부 좀 잘하는 애들끼리만 해요. 끼리끼리 놀겠다는 거죠. 전 엄마가 시험기간에 밥을 푸짐하게 차려주는 편인데요. 시험기간에는 아침밥을 안 먹거나 조금만 먹으려고 해요. 저번 시험날 아침에 엄마가 소고기를 구워줬는데, 그거 먹고 체해서 영어시간에 배가 아파 시험을 망쳤어요.

■ 박수경(17·고2) = 저는 시험기간에 늘 아파요. 이젠 그냥 ‘시험기간이 다 돼 가니 곧 아프겠군’ 그래요. 두통이 지병인데, 멀쩡하다 시험기간에는 갑자기 심해지고, 감기도 잘 걸리고 잠도 두 배로 늘어요. 우리 반 애들도 시험기간이 되면 소음에 민감해져서 조금만 바스락거리거나 이야기를 해도 ‘조용히 해’ ‘쉬!’ 이런 게 많아져요. 그래도 우리는 학교가 아무래도 외국어고이다 보니 3년 내내 같은 반이라 혹시 좀 이상한 행동을 하면 돌이킬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 라이벌한테 적대적인 행동을 하면 뒷감당이 안되는 거죠. 필기를 안 보여주는 애도 있어요. 다른 반 아이의 경우인데 ‘필기 좀 보여달라’고 하면 ‘필기 네 거랑 똑같이 적었으니까 내 건 볼 필요 없다’고 말하면서 거절해요. 평소에는 그다지 나쁜 애가 아닌데 시험기간에는 좀 예민해지더라고요.

학원 마치고 밤늦게 귀가 아이들은 학업 스트레스로 시험 때만 되면 신경이 곤두서 책을 훔치는 등 평소 하지 않던 이상한 언행을 한다. 지난 14일 밤 서울 목동 학원가에서 학원 수강을 마친 학생들이 귀가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학원 마치고 밤늦게 귀가 아이들은 학업 스트레스로 시험 때만 되면 신경이 곤두서 책을 훔치는 등 평소 하지 않던 이상한 언행을 한다. 지난 14일 밤 서울 목동 학원가에서 학원 수강을 마친 학생들이 귀가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 송현진(17·고2) = 시험 때만 되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머리가 아파서 담배를 피워요. 중학교 3학년 때 담배를 배웠는데 시험 때마다 많이 피우다 보니 담배가 많이 늘었어요. 하루에 한 갑씩 피어요.

- 시험기간만 되면 ‘짐승’이 된다는데 그럴 정도로 이상해지는 친구들이 있나요.

■ 심은진(14·중3) = 다 그런 건 아니고 진짜 이상한 애들이 있긴 해요. 짐승… 그 말 웃기다. 그런 것 같아요. 우리 반은 아닌데 다른 반 애 중에 시험기간에 철사 같은 걸로 반 애들 자물쇠 열쇠구멍을 후벼서 따는 애도 있어요. 학교 공구실에 가서 ‘열쇠를 잃어버려서 교실 자물쇠를 딴다’고 말하면 절단기를 빌려주시거든요. 그 절단기를 빌려서는 애들 자물쇠를 절단해버리기도 해요. 대부분 필기노트나 책을 훔쳐가려고 하는 거예요. 특히 과학이나 역사는 필기에서 시험이 많이 나오는데 필기 잘하는 애들 노트를 훔쳐요. 수행평가라 애들이 필기에 민감하거든요. 내가 공부를 안 하더라도 다른 애가 공부를 못하게 방해하는 거예요. 전에는 남자애들이 휴일에 다른 반에 들어가서 애들 사물함을 전부 다 따고 온 적도 있어요. 다들 진짜 미친 것 같아요.

■ 고태훈(16·고1) = 저는 우리 반 어떤 애가 제 과학책을 창밖으로 던져서 책이 엉망이 된 적이 있어요. 시험치기 일주일 전쯤이었는데 걔가 과학책 좀 보여달라는 거예요. 솔직히 거기에다 중요한 것들도 필기해놨는데 보여주기 싫잖아요. 자기도 다 필기해놓고 제 거 보고 추가하려고 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요. 그래도 안 빌려줄 수는 없으니까 ‘잠깐만 보고 달라’고 말하고 좀 싫은 눈치를 주긴 했어요. 그랬더니 걔가 저보고 ‘너 좀 짱난다’면서 제 책을 창밖으로 던지는 거예요.

■ 송현진(17·고2) = 시험 때 교과서가 없으면 공부 잘하는 애들 것을 훔치는 애들이 있어요. 수행평가로 교과서 필기검사를 할 때도 있거든요. 그러면 주변에 눈에 보이는 애들 책을 슬쩍하기도 해요. 시험기간에는 책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요. 책이 돌고 돌아요. 그래서 공부 잘하는 애들 중에 좀 예민한 애들은 사물함 안에도 책을 안 넣고 다 들고 다니기도 해요.

■ 전현숙(16·고1) = 시험 때면 애들이 예민해져서 몸이 약한 애들은 담요를 덮고 공부하고, 소화가 잘 안된다거나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많이 해요. 서로 경쟁이 붙으니까 수업시간에 친구가 자면 평소에는 깨워주기도 하는데 이때는 자도 서로 안 깨워주고, 필기도 안 빌려줘요. 특히 대학 이야기에 많이 민감해져요. 우리가 잘 모르는 대학 이름을 대면서 ‘너 ××대학이나 가라’면서 싸우고 그래요. 우리 학교에 시험기간엔 엄마가 새벽 3시까지 잠을 안 재워서 맨날 학교에서 조는 애가 있어요. 그래서 시험기간에는 거의 잠만 자는데 얘가 1등이에요. 대한민국 고등학생은 다 지쳐요. 한번 겪으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것이 입시 같아요. 나비가 되기 위해 번데기로 지내는 과정같이 느껴져요.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거죠.

■ 김동현(17·고2) =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요. 고등학교 2~3학년이 되면 웬만하면 안 싸우는데요. 올해 우리 반에서 딱 3번 크게 싸움이 일어났어요. 그런데 그게 항상 주기가 있어요. 딱 시험 한두 주 전에 애들이 싸워요. 오늘도 싸웠는데 평소라면 넘어갈 만한 사소한 일이었어요. 그냥 오늘따라 좀 더운 것 같아서 창틀에 앉아 있는 애한테 “창문 좀 열어달라”고 했다가 그 애가 짜증을 내서 서로 싸웠어요. 주먹도 오가고… 피도 나고 그래서 선생님이 오셨어요. 싸움이 좀 컸어요. 열심히 하는 애들은 그 애들대로 스트레스고, 공부 안 하는 애들은 열등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요.

- 시험 때가 되면 친구들끼리 서먹해지는 경우도 많겠네요.

■ 서민선(14·중2) = 시험 때 같이 준비하자고 친한 친구들끼리 약속을 해요. 그런데 막상 시험이 되면 학원에서 준 프린트물은 절대로 다른 애들 안 보여주고 혼자만 봐요. 혹시 친구가 학교에서 준 프린트물을 안 가져왔어도 ‘나도 안 가져왔어’ 하면서 일부러 안 보여주는 경우도 있어요. 상대평가인데 내 점수가 1점이라도 낮아질 수 있잖아요. 저도 가끔 필기를 다 못할 때가 있거든요. 그러면 친구한테 ‘노트 필기 좀 빌려주면 안돼?’라고 묻는데요. 친구가 ‘음…’ 하는 반응을 보이면 이건 빌려주지 않는다는 사인이거든요. 그러면 쿨하게 ‘아냐. 괜찮아’라고 말해요. 저도 다음에 안 보여주면 되니까요.

■ 강주혜(15·고1) = 우리 학교는 1학년만 자사고인데 작년에는 안 그랬는데 올해는 모의고사를 보면 전교생의 등수와 등급을 1등부터 차례대로 교실 복도에 붙여요. 저렇게 하니까 반에서 공부 잘하는 애도 전교등수를 보며 자기 위치를 알게 돼서 스트레스를 받아요. 결국 전교 1등은 1명뿐이잖아요. 다들 ‘자존심 상한다. 그런 걸 왜 붙여놓느냐’고 불평해요. 학교에서 보는 모든 시험은 전교 1등부터 꼴찌까지 어렵다고 할 정도로 난도가 높아요. 2학기 중간고사 국어문제가 25문항인데 시험지는 앞뒤로 8장이었어요. 이러니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있겠어요? 우리 자사고가 전반적으로 수업진도도 빨라요. 그렇다고 수업이 따라가기 힘들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나를 위해 공부하는 게 아니라 남을 이기려고 하는 공부고, 경쟁을 해야 하다 보니 서로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 그래서 충동조절도 잘 안돼요.

■ 임정민(17·고2) = 친구 중에 시험기간만 되면 배가 찢어질 듯 아프다고 하는 애가 있어요. 시험기간만 되면 아프다고 징징거려요. 아프다고 하면서도 시험점수는 잘 나와요. 엄살 같아요. 학교 전체적인 분위기는 좋은데 견제를 좀 하는 편이긴 해요. 시험기간에 누가 공부하는 걸 보면 좀 신경이 쓰이나봐요. ‘너 왜 공부해?’라고 농담처럼 말하는데 뼈가 들어가 있고, 누가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면 나머지 아이들끼리 ‘쟤 공부했나봐’라며 수근거리고 그래요. 그래도 3년 내내 같은 반이다 보니까 서로 익숙해진 상태고, 서로 불편해질까봐 조심하는 편이긴 해요.

- 그렇게 민감해질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공부를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 김현석(17·고2) = 글쎄요. 뚜렷한 목표가 있어서 공부하는 건 공부 잘하는 애들밖에 없어요. 걔네들 빼고는 다들 목표가 딱히 있는 게 아니에요. 고등학교는 다들 공부하는 곳이잖아요. 고등학교는 배움의 기본이라고 하니까. 남들이 다 하니까 기본은 해야겠다 싶어서 하고 있는 거죠. 더군다나 우리 집은 지방도 아니고 대치동이잖아요. 기본적으로 ‘인 서울’은 해야 할 것 같아서 공부해요. 그런데요. 경향신문에서 우리 10대에 대한 기사를 썼을 때 어른들이 주목이나 할까요?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했다면 당근이라도 주면서 시도해보려 했겠죠. 학교에서는 아직도 학생들 머리를 자르고, 마음에 안 들면 이것저것 지적하면서 벌점을 세트메뉴로 주지요. 대들면 지시불이행이라고 벌점 주고, ‘귀 뚫었네’ 하면서 또 지시불이행 벌점 주고, ‘바지 줄였네’ 하면서 또 벌점을 줘요.

■ 특별취재팀 = 류인하·박효재·곽희양·이재덕·이혜인·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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