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이수제로 학습 파행… 전학도 못 가요”

정유진 기자

학부모들 폐지 촉구… 교육청 ‘미이수 불이익 본인 책임’ 각서 요구도

“집중이수제 때문에 무서워서 이사도 못 가겠습니다. 전학으로 생기는 미이수 과목 때문에 우리 아이가 내신에서 불이익을 받으면 누가 책임져 줄 겁니까?”

경기도에서 온 한 학부모가 27일 교육과학기술부가 있는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참교육학부모회(참학)와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평등학부모회)가 주최한 ‘집중이수제 폐지 촉구’ 집회 현장이었다.

집중이수제는 특정 과목을 특정 학기에 몰아서 수업할 수 있고, 학교가 자율로 특정 교과목의 수업 시수를 교육과정의 20% 범위 안에서 늘리거나 줄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 국·영·수 몰입 교육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학교마다 집중이수 과목의 편성 시점이 다르기 때문에전학생들은 못 듣는 과목이 생긴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연간 전학생은 초등학생이 약 28만명, 중학교 7만명, 고등학교 3만명에 이른다.

■ 전학생, 한 학기 한문 수업은 숙제로 대체

“집중이수제로 학습 파행… 전학도 못 가요”

지난 1학기 중반 경기도 ㄱ중학교로 전학을 간 김모군(13)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 학교에서는 배우지 않은 한문을 1학년 집중이수 과목으로 편성해 빠르게 진도를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주 후면 당장 배우지도 않은 과목의 기말고사까지 봐야 할 판이었다.

교사도 골치 아프긴 마찬가지였다. 학생 한 명을 위해 처음부터 따로 보충수업을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생각다 못한 한문 교사는 이 학생이 교과서에 나온 한자들을 ‘깜지(조그만 글씨로 종이 앞뒤를 가득 채우는 것)’로 수십장 써오면 과목을 이수한 것으로 쳐주기로 했다.

이 학교 박모 교사는 “1~2학기에 모두 20명의 학생이 전학을 왔는데, 한 학생당 한두 개씩 미이수 과목이 발생했다”며 “한문뿐 아니라 음악은 음악 감상문으로, 미술은 노트필기를 베껴오면 수업을 이수했다고 하는 등 집중이수제로 인한 파행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 “미이수로 인한 불이익은 본인 책임” 각서 요구

각 시·도교육청은 전학생을 위한 대책으로 희망자들은 학기 중에 방과후 보충수업을 하거나, 방학 때 거점학교에서 보충수업을 받도록 권장하고 있다. 보충수업은 출석수업도 있지만 50~70%는 자기주도학습, 과제학습, 온라인학습 등이다. 자기 혼자 하는 학습이 절반을 넘어 부실 수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중학교 교육과정은 특정 교과목을 이수하지 않더라도 졸업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 입시에 필요하지 않은 과목이라면 학부모들이 ‘안 들어도 그만’이라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인천·광주·울산·경기·충북·전남·제주 등 대부분 교육청은 민원의 소지를 막기 위해 “미이수로 인해 발생하는 불이익 등 제반사항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본인에게 그 책임이 있음을 확인합니다”라는 각서(사진)를 받고 있다.

■ 정보 과목 교사가 3~4개월 연수 후 수학 교사로

집중이수제로 주요 입시과목인 국어·영어·수학의 수업 시수가 늘어나면서 정보·제2외국어 등은 일부 폐지되거나 수업이 줄어들고 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정보 과목 교사인 안모씨는 부전공인 수학 교사로 전과하기 위해 연수를 받고 있다. 이 학교가 정보 교과목을 폐지해버렸기 때문이다. 안씨는 “국·영·수 비중이 늘어남에 따라 비입시 과목이 설 자리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들의 연수기간은 보통 3~4개월이다.

신성호 전교조 교과연합 사무국장은 “집중이수제가 입시몰입교육을 부추기면서 비입시 교과 교사들은 짧은 연수만으로 영어·수학·과학 교사로 전환하고, 늘어나는 영어와 수학 시간은 기간제나 단기연수 교사의 수업으로 채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각 시·도교육청별로 전학생의 미이수 과목 보충수업 실태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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