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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일로도 충분해요, 우리 행복은 어렵지 않아요”

특별취재팀

나는 이럴 때 행복하다

서연이(14·가명)는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가장 행복하다. 특히 연어초밥을 먹을 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기분이 든다. 연어초밥을 먹고 난 뒤 포만감을 느낄 때면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와 짜증이 해소되는 듯하다. 서연이는 “곧 중3이 되면 고교 입시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 생각에 부담이 된다”면서 “그럴 때면 연어초밥을 먹는 상상을 하며 기분을 내보곤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느끼는 행복의 지점은 너무나 단순하다. 아주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 가족과 함께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순간, 친구들과 롯데월드 자이로드롭을 타는 순간 등이 가장 행복한 경험이 된다. 자살충동으로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정호(17·가명)의 가장 행복한 순간은 ‘엄마가 맛있는 음식을 해줄 때’였다. 정호는 “엄마가 나에게 맛있는 간식을 챙겨줄 때면 엄마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상담원이 정호의 엄마에게 내린 해결책 역시 ‘정호가 좋아하는 식단으로 꾸려주기’였다.

경향신문 ‘10대가 아프다’ 시리즈 특별취재팀은 지난해 12월25일부터 30일까지 10대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지’를 물어보았다. 아이들의 대답은 다양했지만, 단순했다. 어른들이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쉽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이었다.

10대는 어른들이 조금만 관심을 보여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얘기한다. 지난달 30일 밤 서울 잠실롯데월드에 놀러온 여고생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10대는 어른들이 조금만 관심을 보여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얘기한다. 지난달 30일 밤 서울 잠실롯데월드에 놀러온 여고생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 김호영(15·중3년) = 저는 친구들이랑 축구할 때 제일 행복해요. 전 골키퍼인데요, 다른 건 잘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공 하나는 잘 막아요. 공부는 못하니까 당연히 칭찬을 못 듣죠. 솔직히 공부 스트레스가 많아요. 그래도 축구를 하다보면 공부하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풀려요.

■ 고은지(17·고2년) = 저는 싸이월드를 할 때 제일 행복해요. 친구들이랑 수다 떨 때도요. 애들이랑 선생님 욕을 많이 해요. 주로 저희에게 많이 터치하는 선생님이요. 교복 짧고, 머리 길고, 화장한다고 꾸중하는 선생님들이 짜증나서 욕을 해요.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해요. 친구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잘 이해해주잖아요. 부모님한테는 해봤자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혼내시겠지만 친구는 내 편이에요. 전 그래서 선생님이나 가족들과 있는 것보다 친구들과 있을 때 더 행복해요.

■ 한건우(15·중3년) = 저는 축구경기를 보고 있을 때 제일 행복해요. 제 꿈이 스포츠 에이전트거든요. 프로선수들의 계약을 주선하고 관리하는 일인데요, 제가 스포츠를 좋아하기는 하는데 운동에는 소질이 없어서 잘 못해요. 그래서 에이전트가 되고 싶어요. 저는 특히 축구를 많이 좋아해요. 혹시 FC바르셀로나 아세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축구팀인데요, 짜임새 있는 축구를 해서 좋아요. 그런데 축구(에이전트)는 다른 스포츠랑 다르게 FIFA(국제축구연맹)에서 주관하는 시험을 통과해 자격증을 받아야 해요. 그래서 영어랑 경영, 법학 등을 혼자 공부하고 있어요. 작년부터 책을 사서 공부하고 있는데요, 축구용어랑 계약과 관련된 고급영어 단어들을 외우고 있어요. 엄마, 아빠한테 제가 매우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부모님도 격려하고 도와주세요. 그래서 전 요즘 아주 행복해요.

■ 조소영(14·중2년) = 저는 쇼핑할 때 제일 행복해요. 돈을 모아서 제가 사고 싶었던 것을 살 때 기분전환도 되고 스트레스도 풀려요. 일주일에 두 번쯤 쇼핑하는데요, 옷 같은 거 사는 건 아니고요, 샤프랑 볼펜 같은 거 사요. 옷은 용돈 받아서 사러 가기는 하는데 자주는 아니에요. 제가 사실 공부 스트레스가 심하거든요. 초등학교 때까지는 안 그랬는데 중학교 들어와서 학년이 올라갈수록 스트레스가 커져요. 부모님이 부담을 주지는 않는데 그냥 제 스스로 좀 더 잘하고 싶어요. 엄마랑 싸울 때도 스트레스를 받긴 하는데요, 딱히 이유가 있어서 싸우는 건 아니에요. 그냥 엄마가 날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좀 불행해요. 그래도 텐바이텐 같은 데 가서 물건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많이 풀려요.

■ 고연희(16·고1년) = 저는 가족들이랑 다같이 여행을 갈 때 제일 행복해요. 오늘 방학했거든요. 그래서 곧 여행을 갈 예정이에요. 저희는 1년에 4~5번 정도 온 가족이 여행을 가요. 방학 때뿐만 아니라 학교 다닐 때도 주말에 1박2일로 가기도 해요. 동해 해수욕장도 좋았고, 제주도의 맑은 물을 보면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가족과 함께 있다는 게 행복해요. 저희 언니가 저보다 네 살 많은데 대학생이거든요. 동생은 저보다 일곱살 어린데 초등학생이고요. 저희가 터울이 많아서 집에 일이 있으면 저 혼자 도맡아 하는 편이긴 한데 집안 분위기는 자유로워요. 저희 엄마가 유아교육과 교수님이세요. 부모님이 학업에 부담을 준 적은 한번도 없어요. 저는 꿈이 만화가예요. <슬램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를 좋아해요. 웹툰에 만화를 연재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어요.

■ 임응빈(15·중3년) = 저는 친구들이랑 PC방에서 게임을 할 때 제일 행복해요. 주로 ‘던전 앤 파이터’나 ‘스타크래프트 2’를 해요. 항상 같이 가는 친구가 2~3명씩 있어요. 애들이랑 팀을 짜고 힘을 합쳐 상대편을 물리칠 때면 쾌감이 느껴져요. 학업 스트레스랑 고등학교 공부에 대한 부담이 크기는 하지만 친구들이 있으면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요.

■ 주병진(16·고1년) = 집에 수족관이 있어요. 거기에 열대어를 키우고 있는데 그게 제 취미예요. 물고기를 돌보고 구경할 때 행복해요. 마음이 편해지고 잡생각이 없어지는 느낌이 좋아요. 제가 사실 성적 스트레스가 큰 편이거든요. 반에서 26등을 하니까… 못하는 편이네요. 그래서 은근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친구들과는 잘 지내지만 공부 생각만 하면 답답해요. 그럴 때마다 열대어를 돌봐요. 하루에 30분 정도 밥도 주고 지켜봐요. 한 달에 한 번씩 수조 청소도 제가 직접 하고 있어요. 소형은 10마리고, 대형은 6마리거든요. 피라냐도 키우는데요, 고기를 주면 잘 뜯어먹어요.

■ 조규민(15·중3년) = 저는 빵을 만들 때 정말 행복해요. 제 취미가 제빵이거든요. 빵을 만들어 놓고 보면 뭔가 해냈다는 거, 내가 이런 걸 만들었다는 것에 뿌듯해져요. 저 케이크 종류도 정말 잘 만들거든요. 놀 때도 빵 만들면서 놀고, 컴퓨터를 해도 빵 레시피를 찾아봐요. 사실 공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어요. 잘하지도 못하고요. 아직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제과제빵 필기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요. 조리과학고에 들어가려고 준비 중이에요. 공부는 재미없는데 제과제빵 필기시험 준비는 공부하는 것조차도 재미있어요. 솔직히 그냥 학교 공부는 필기하는 것도 지겹고, 내용도 재미없는데 제과제빵 공부는 같은 공부지만 정말 재미있어요. 전 조리과학고에 진학하면 늘 행복할 것 같아요.

■ 이지영(16·고1년) = 저는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제일 행복해요. 케이크 종류를 진짜 좋아해요. 돈만 많으면 실컷 사먹을 텐데…. 제가 하루 중에 제일 행복한 시간은 자기 직전이에요. 오늘 또 하루를 끝냈다는 그 느낌이 아주 좋아요. 잠을 많이 못 자거든요. 학교 기숙사에서 살고 있어서 아침 6시50분에 일어나 밤 11시까지 자습을 해요. 자습이 끝나면 개인학습 시간이에요. 늘 잠이 부족하고 피곤하니까 자기 전에 ‘오늘도 끝났다’는 그 느낌이 아주 좋아요. 그렇다보니 자고 일어나서 눈뜰 때가 제일 싫어요.

■ 특별취재팀 = 류인하·박효재·곽희양·이재덕·이혜인·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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