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자사고 존폐’ 전문가에게 듣다]“제도로서 외고·자사고는 실패했다…선발시기 통합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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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7.07.16. 오전 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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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고와 자율형사립고의 일반고 전환 여부를 두고 사회적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27일에는 전국 외고·국제고 학부모 90여명이 모여 외고 폐지 정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고, 전날에는 서울지역 자사고 학부모 2000여명이 자사고 폐지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교육현장에서는 황폐화된 일반고를 되살리고 고교서열화를 해소하기 위해 외고와 자사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향신문은 서울시교육청의 외고·자사고 재지정평가 결과 발표, 김상곤 교육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정책당사자·전문가 10명에게 외고·자사고 폐지에 대한 의견과 고교체계 개편 연착륙을 위한 방안을 물었다.

■ “목적 멀어졌다면 일반고 전환”

응답자 10명 중 고교체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전문가 8명은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에 대체로 의견을 같이했다. 전체 교육제도에 부정적 영향을 많이 끼친 만큼 폐지 필요성이 높다는 것이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제도로서의 외고·자사고는 실패했다. 전체 중등학제에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취지로 도입된 자사고가 획일적으로 매년 입시성과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 형태가 됐는데 굳이 분리교육을 할 필요가 있냐”고 말했다. 김학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실장은 “자사고는 공교육제도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외고는 ‘외국어 인재 양성’이라는 설립 취지에 부응하지도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외국어 인재 양성을 초·중등교육의 목표로 삼아도 될지 근본적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원조 특목고’인 과학고 폐지에는 의견이 갈렸다. 정진후 전 정의당 의원은 “기초과학 필요성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있고 과학고 졸업생 중에서는 90%가 이공계에 진학한다. 의대 편향 정비 등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주석훈 미림여고 교장은 “내년부터 적용되는 2015년 교육과정이 문·이과 통합과정인데 학교체계에서는 과학고 한쪽만 강조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이번엔 외고·국제고 학부모들 “폐지 반대” 외국어고·국제고 학부모들이 27일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열린 전국 학부모대표회의에서 ‘외고·국제고 폐지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고교체계 개편 연착륙 방안은

폐지의 구체적 방법과 시기에는 의견이 갈렸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외고·자사고와 일반고의 선발시기 통합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크지 않았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은 “폐지 이전까지 일반고와 동시선발하고 추첨제를 통해 우선선발을 없앤다면 일반고 전환과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아 민주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고·자사고를 완전히 폐지한다면 큰 사회적 갈등이 우려된다. 선발권 문제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고·자사고 유지를 주장하는 측에서도 선발시기 조정에는 동의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최미숙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학사모) 회장은 “자사고와 외고가 학생을 먼저 뽑아가서 생기는 일반고의 상대적 박탈감이 문제라면, 이들 학교의 학생 선발권은 유지시키되 선발시기만 일반고와 같게 하면 보완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진후 전 의원은 구체적인 폐지 로드맵을 제시했다. 정 전 의원은 “일단 선발시기를 통합하고 2019~2020년 자사고 재지정심사 때 엄격히 걸러낸 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의 외고·자사고 설립근거를 없애자”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교체계 개편 연착륙을 위해서는 정부와 교육당국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학한 전교조 정책실장은 “자발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하는 학교에 대해서는 교육청이 적극 지원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상식 교수는 “외고·자사고를 절대악으로 매도해서는 안된다. 자체적 발전과 연착륙을 위해 지금까지 자사고가 해오던 인성·진로체험 프로그램 등을 (일반고에서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석훈 미림여고 교장은 “일반고에 편성운영 자율성을 주고 중학생들이 전국 어느 학교나 지원 가능하게 하면 학교변화의 큰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 고교체계 전면 개편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동석 한국교총 정책본부장은 “과정을 생략하고 외고와 자사고의 존폐를 논의해서는 안된다”며 “원하는 학교만 일반고로 자율적 전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일반고 전환 시 어떤 효과 볼까

외고·자사고 폐지 시 황폐화된 일반고, 특히 외고와 자사고가 몰려 있는 서울지역 일반고를 정상화하는 동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은 “초등학교부터 생긴 자사고 대비반, 특목고 대비반이 사라지고 사교육비가 줄어드는 등 중학교 교육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은순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참학) 회장은 “사교육비 절감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며 “공부 잘하는 아이들끼리 모아놓지 않고 다같이 섞여서 생활하도록 하면 협력과 배려, 공동체를 복원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동석 한국교총 정책본부장은 “외고·자사고가 없어진다고 해서 일반고의 경쟁력이 확보된다는 구상은 현실화되기 어렵고 대신 지역사회 선호학교가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근 교수는 “당장 일반고가 살아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속속 추진하되 일반고에서도 교사들이 마음을 다잡고 자구 노력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권교체기마다 교육정책이 대폭 흔들리는 데 대한 불안감과 피로감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최미숙 학사모 상임대표는 “자사고는 학내 민주적 절차를 거쳐서 지정된 학교이며 외고도 도입 후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폐지론이 나오면 학부모들이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이익단체에 휩쓸리지 말길”

새 정부가 좌고우면하지 말고 고교체계 개편 정책을 밀고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김학한 전교조 정책실장은 “고교체계 개편 과정에서 대학 진학에 유리한 명문고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저항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조직된 소수의 의견이지 국민 다수의 의견은 아니다”라며 “공교육 제도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확고하게 진행하라”고 말했다.

이경아 연구위원은 “고교체계 개편은 자사고·특목고의 교육과정을 다른 학교에도 열고 확대시키는 과정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교육주체들이 지나치게 반목하고 갈등해 고교체계 개편을 둘러싼 갈등에 모든 혁신의 동력이 빨려들어가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남지원·김경학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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