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희가 쏘아올린 경기도 ‘0교시 부활’ 논쟁···교육현장선 ‘시큰둥’

김태훈 기자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오전9시가 가까운 시간에 등교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오전9시가 가까운 시간에 등교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저는 찬성했어요. 찬성이 훨씬 많아서 안 바꾼대요.”

경기 성남시의 한 중학교 앞에서 만난 한모군(14)은 지금의 ‘9시 등교’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한군은 최근 학교에서 현행 등교시간을 그대로 유지할지 아니면 앞당길지에 대해 학생과 학부모의 답을 묻는 설문조사지를 가정통신문으로 받았다. 한군은 자신과 부모님 모두 찬성(현행 유지)에 의견이 일치했다고 말했다. 대다수의 응답자들도 현행 등교시간 유지에 찬성해 등교시간이 앞당겨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도 덧붙였다. 결국 옆에 있던 친구 이모군(14)은 “나는 반대표 던지려고 했어. 지금보다 학교 가는 시간이 더 늦게만 된다면”이라며 웃었다.

13년만에 ‘보수’교육감으로 뽑힌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이달 초 취임 첫 정책으로 ‘등교시간 자율화’를 들고 나왔다. 취임 첫날인 지난 1일 경기도교육청은 관내 초·중·고교에 현행 ‘9시 등교’를 유지할지 말지를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라는 안내 공문을 발송했다. 경기도교육청은 이재정 교육감이 취임한 2014년 이후 이른바 ‘0교시’를 폐지했다.

임 교육감은 지난 6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도 “0교시 부활에 대한 우려가 있는데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우리 학교는 공부를 좀 더 하자’고 협의한다면 억지로 금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등교시간을 앞당기고 0교시를 부활시켜 학생들을 더 공부시키는 방안에 대한 결정권을 각 학교에 넘기겠다는 의미다.

이처럼 발빠른 신임 교육감의 행보 뒤에는 지난해 말 기준 경기도 초·중·고교 2466곳 중 2436곳(98.8%)이 9시 등교를 택하고 있는 현실도 작용했다. 이에 따라 경기도의 등교시간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늦다(2019년 기준, 2020~2021년은 코로나19 때문에 집계자료 없음).

그러나 교육감의 야심찬 계획과는 달리 0교시 부활에 대한 반응은 시큰둥하다. 현재로선 임 교육감의 제안에 응해 등교시간을 앞당기기로 결정한 학교를 찾기 어렵다. 지난 21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경기도내 초·중·고교 120곳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69곳은 9시 등교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50곳은 의견수렴 과정에 있거나 논의가 아예 시작되지 않았고, 단 1곳만 교사회의를 통해 등교시간을 ‘10분’ 앞당겼다. 경기도교육청은 아예 등교시간을 바꾼 학교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지 않고 있다. 교육청 관계자는 “등교시간 자율화를 각급 학교에 안내한 이후 변경 여부를 파악 또는 조사하면 각 학교에 압력을 가한다고 받아들일 수 있어 해당사항에 관해 전혀 조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육현장에선 아예 등교시간 조정을 위한 설문조사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경기 북부의 한 중학교 교장은 “‘9시 등교’ 정책이 처음 논의될 때에는 학생들이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해 정책 도입까지 이뤄냈지만, 이번의 등교시간 조정 방침은 학생은 물론 교육현장 구성원들이 내놓은 의견이 아니라 그저 이전 교육감의 정책을 갈아치우려고만 한 데서 나온 발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학생, 학부모, 교직원 누구라도 등교시간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면 논의하겠지만 그런 요구가 전혀 없는 현재로선 굳이 설문조사까지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했다.

교원·학부모단체들은 경기도교육청의 등교시간 자율화가 사실상 0교시 부활로 이어져 학생들의 건강한 수면과 아침식사, 양질의 수업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 5월 발표한 ‘2022 청소년 통계’를 보면 고등학생의 평균 수면시간은 하루 5.8시간에 불과했다. 미국 국립수면재단이 제시하는 중학생과 고1 학생의 권장 수면시간이 8~10시간, 고2~3 학생은 7~9시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고교생들은 가장 적게 잡아도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의 ‘수면부채’를 쌓고 있는 셈이다.

이윤경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회장은 “무엇보다 학생들이 건강한 아침시간을 맞으며 등교해 수업을 잘 받고 싶다는 요구에서 도입된 것이 9시 등교제”라며 “어른들도 9시까지 출근하는 게 자연스러운데 왜 유독 학생에게만 더 가혹한 기준을 요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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