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체육 실종? 우리는 되찾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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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커버스토리] 체육수업 잘하는 부천 원종고를 가다

오후 2시30분. 학생 60여명이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으로 나왔다. 6교시. 각각 1학년 한 학급, 3학년 한 학급의 체육수업이 있었다. “오늘은 단체줄넘기를 해볼 거야. 둘씩 손을 잡고 뛰는 건데 두 사람의 호흡이 중요해.” 임성철 체육교사의 말에 3학년 여학생 둘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손잡고? 어떻게 해.” 하지만 학생들은 몇 분 지나지 않아 둘씩 손잡고 줄을 넘는 단체 운동에 재미를 붙였다. 손을 잡고 줄을 넘다 발이 걸린 짝이 나오면 아쉬움의 탄성이 절로 나왔다.

고3도 운동하며 스트레스 푸는 학교

지난 5월16일. 부천 원종고(교장 김용섭) 운동장에서는 고3 학생들이 체육수업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흙먼지를 뒤집어썼지만 밝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학업 스트레스가 많은 고3이니까 운동이 더 필요하죠. 고3이 되면 체육시간을 자습시간으로 돌리는 학교도 많다지만 저희는 아이들 스트레스 풀어줄 만한 활동을 독려합니다. 새로운 걸 배우기보다는 축구나 탁구 등의 경기를 많이 하죠. 오늘 체육관에는 탁구대도 더 들여놨습니다.” 임성철 체육교사의 설명이다.

“가위바위보 해서 이긴 사람이 뒤를 보고 달리는 거야. 진 사람은 이긴 사람을 잡으러 달리는 거고. 자! 시작!” 운동장 가운데서는 김진환 체육교사가 진행하는 1학년 대상의 이어달리기 수업이 한창이었다.


하지만 ‘체육수업 제대로 하는’ 이 학교에도 올해 1학기 때 체육수업을 못 받는 학생들이 있다. 올해 도입한 집중이수제 때문에 1학년 학생들 가운데 절반은 1학기 때 체육이 없다.

집중이수제, 체육 없는 교실 문제 느껴

체육이 입시와 큰 관계 없다는 이유로 가장자리 과목이 된 지 오래다. 학교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체육은 곧 자습으로 이해하는 학교들도 많다. 일부 사립학교에서는 운동장을 줄이고 그 자리에 건물을 짓기도 한다. 체육이 사소한 보조과목으로 밀려나는 상황에서 올해 본격 시행한 집중이수제는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 집중이수제는 사회군(사회·도덕), 과학군(과학·기술·가정), 예술군(미술·음악)으로 분류한 과목을 학기를 지정해서 과목별로 집중 학습하는 제도다.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과목 수를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3년 동안 균형 있게 공부해야 할 교과목들을 한번에 공부하면서 현장에서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나온다. 체육은 문제의 중심에 있다. 편식하듯 한번에 몰아 공부해선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교사 처지에서는 적당히 타협할 수도 있다. 임 교사는 “10개 반을 주당 2시간씩 관리하는 것보다 5개 반을 주당 4시간씩 관리하면 컨트롤도 쉽고, 아이들도 자주 만나니까 친밀감도 생기는 등 오히려 편할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문제는 교육 수요자인 학생들이 체감하고 있었다. 임 교사는 “올해 초 학생들이 찾아와 공부하느라 힘든데 체육수업마저 없으니까 미치겠다, 답답하다, 숨막힌다 등의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아이들한테는 운동장에 나와서 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잖아요. 거기다 체육은 3년 내내 꾸준히, 균형 있게 배워야 하는데 이렇게 몰아서 배우니 의미가 없어지죠. ”

학생들의 불만이 이어지자 체육과에서는 일단 대안을 마련했다. 체육수업을 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방과후 종합스포츠반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아이디어를 낸 김진환 체육교사가 중심축이 되어 20여명의 학생이 일주일에 2~3일 정도 체육관에 모여 수업을 받는다. 사정상 모든 학생이 다 참여할 수는 없다. 1학년 심재정군은 “체육수업을 원하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모두 신청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교사들은 내실 있고, 재미도 담보한 체육수업을 고민했다. 원종고가 체육 잘하는 학교가 된 계기다. 체육교사들이 짜임새 있는 체육수업을 준비한 이유는 체육이 점점 소외 과목이 되는 상황에서 스스로 자존감을 찾으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교과에 나온 과정들을 밟고 가되 학년별로 특색 종목을 만들었어요. 우리 학교 특색 가운데 하나죠. 1학년은 게이트볼을 배우고, 2학년 때는 플라잉디스크를 중점적으로 배웁니다. 3학년이 되면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에 운동을 즐기게끔 하는 축구나 탁구 등을 원 없이 해보도록 하구요. 또 영상매체 등을 활용해서 수업하는 시도도 하고 있어요.” 학생들은 원종고 체육수업이 재미있는 이유를 ‘교사의 열정과 수업의 질’로 꼽았다. 심군은 “체육이 형식적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체계성이 있고, 무엇보다 선생님께서 정말 열정적으로 준비를 해 주시니까 수업 참여도가 높다”고 했다.


스포츠클럽, 체대진학반 등 활성화해

올해 원종고에 입학한 1학년 박연지양은 얼마 뒤 실시하는 스포츠클럽 발야구 시합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학교 쪽은 지난해부터 학교체육 활성화를 위해 상시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인 스포츠클럽을 올해도 계속하고 있다. 체육대회가 반 단체 위주의 시합이면 스포츠클럽은 학생들 개개인의 기량과 재능을 살펴보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반별 단체종목으로 남학생은 축구, 여학생은 발야구 시합을 연다. 개인종목으로 제기차기, 줄넘기, 80m 달리기 등도 있다.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로 점심·저녁 식사시간에 짬을 내 예선을 치른다. 임 교사는 “작년부터 실시했는데 무엇보다 아이들의 호응이 커서 수업 외로 별도의 신경을 쓰더라도 계속 추진하고 있다”며 “학생도우미를 뽑아서 예선 심판은 아이들이 알아서 보는 시스템으로 가려고 한다”고 했다. 거의 상시적으로 운영하는 이 프로그램 덕에 다른 수업 때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던 학생들이 친구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기도 한다. 박양은 “반에서 참 조용하고 드러나지 않았던 친구가 있었는데 피구며 달리기 등을 정말 잘하는 아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스포츠클럽 등의 활동에서 재능을 보여준 학생들의 활동상을 생활기록부에 기록해준다.

학생들, “갑갑하다” 소리에 변화 준비

이런 과정에서 운동에 뚜렷한 적성을 보이는 학생들도 나온다. 학교 프로그램이 잘 이루어지고, 체육에 대한 교사와 학교 쪽의 관심이 높아지자 체대 진학을 준비할 만한 학생들이 하나둘씩 임 교사 등 체육교사들을 찾아왔다. “어느 날부턴가 체대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찾아오더라구요. 보통 체대 준비하는 친구들이 학원에 비싼 돈 내면서 별도로 준비를 하는데 저희는 학교에서 체대진학반(cafe.daum.net/shimwonsports4u)을 따로 만들어 체계적으로 진로·진학 설계를 돕고 있습니다. 현재 20여명 되는데 정규수업을 다 듣고 체육관 등에 모여서 훈련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수학, 과학 영재를 대상으로 심화 교육을 하는 것처럼 체육으로 진로를 결정한 학생들의 진학·진로교육도 학교가 안고 가는 셈이다.

3월부터 5월까지 원종고는 집중이수제 때문에 실종된 체육수업의 빈자리를 톡톡히 봤다. 1학년 송지원양은 집중이수제 때문에 1학기엔 체육수업을 받지 못한다. “다른 반 친구들 체육 하면서 응원하는 소리 들으면 너무 부러워요. 밖에 나가고 싶죠.” 이렇게 뛰고, 땀 흘리고 싶어하는 학생들의 요구가 이어지자 학교 쪽은 얼마 전, 고민 끝에 내년부터는 집중이수제에서 1학년 체육을 빼기로 결정했다. 지난해부터 교사들과 학교 쪽이 끊임없이 논의를 한 결과였다. 임 교사는 “교장·교감 선생님 그리고 대다수 선생님들이 청소년들한테 체육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공감했기 때문에 결정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다른 여러 학교에서 체육은 정말 주변과목으로 밀려나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저희처럼 학교 쪽에서 뜻을 보여주지 않으면 체육수업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책상에 앉아 오래 공부해야 대학을 가는 게 현실이니까 체육수업처럼 활동하는 수업이 위축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축소하거나 파행 운영을 하는 건 정말 아니라고 봅니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운동장에서 뛰고 싶어합니다. 스포츠클럽 등을 하면서 아이들이 이렇게 운동하는 걸 좋아했나, 놀랄 때가 많습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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