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등급제 폐기 : 학생들을 더 심각한 입시고통으로 몰아넣으며 교육 역사를 후퇴시키는 조치이므로 중단해야합니다
차기 정부 인수위원회는 교육정책 관련 첫 조치로 오늘 수능 등급제를 사실상 폐기하는 조치를 발표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등급제와 원점수, 백분위를 병기하는 조치를 취하는 방식이라고는 하지만, 이것이 사실상 등급제의 폐지라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등급제가 오늘의 입시경쟁 해소의 만능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를 금과옥조처럼 붙들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등급제는 2004년 입시경쟁과 고교 교육 정상화 차원에서 고육지책으로 마련된 제도임을 생각해야합니다. 따라서 이 등급제를 폐지하고 새 제도를 도입하려면 적어도 2004년 등급제 이전의 입시 문제를 반복하지 않는 새롭고 전향적인 정책을 그 대안으로 제시했어야 했습니다.
2004년 입시제도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수능 과목별 백분위 점수체제로 학생들을 촘촘히 줄 세움으로 학교바깥 시험 중심 비정상적인 경쟁을 유발시키고, 절대평가 학교 내신에 대한 대학의 불신으로 인해 내신을 대입 전형자료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현상, 그것이 바로 2004 이전 입시제도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수능은 등급제로 그 비중을 줄이고 △내신은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강화하되, △내신을 지금과 같은 그런 말라빠진 점수가 아닌 학생의 풍성한 학력 정보를 담는 구조로 만드는 것, 그것이 2008대입제도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 수능은 등급화되어 이전의 체제보다 다소 여유로워진 반면, 내신이 상대평가로 바뀌어 교실이 점수 경쟁으로 바뀌었다고 학생들이 아우성이었고, 동시에 대학은 이런 변별력도 성에 차지 않아서 대학별 논술고사를 고집했습니다. 그래서 소위 ‘죽음의 트라이앵글’이 시작된 것이지요.
그런데 만일 이번에 차기 정부 인수위원회가 등급 간에 걸쳐 있는 학생들의 불이익을 생각해서 ‘백분위 체제’로 수능을 회귀시킨다면, 이것은 현재의 ‘죽음의 트라이 앵글’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를 만들 것입니다. 그 근거는 이렇습니다. 학생의 유익을 고려한다고 하면서 수능 등급제를 폐기한다고 하지만, 인수위는 학생의 유익을 위해 2004 제도 이전 내신체제처럼 그렇게 대학이 싫어하는 절대평가체제로 회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설혹 크게 마음을 써서 내신까지 절대평가 내신 체제로 회귀하려고 해도, 이것은 다시 대학의 내신 무력화의 호재로 선택될 것이니 인수위는 이 역시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수많은 사회적 진통의 결과로 정리된 2008대입제도는 이번 조치로 수능 등급화 폐지 및 백분위 제도의 회귀만으로 정리될 것이며, 이는 학생들에게 2008입시제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을 안겨줄 것입니다.
그러나 곧 입시고통과 사교육비 근본적 해결을 가져올 입시정책이 예고된다면, 우리 아이들과 국민들은 그래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능 등급화 폐지라는 단기 대증요법이 끝난 이후 국민들과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정책이 무엇입니까? 자립형 사립고 100개, 대학입시자율화 3단계 등, 등급제 폐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심각한 입시지옥을 예고하는 정책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식시장에서 사교육기업 관련 주가들이 폭등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입시고통으로 인해 학생들이 연간 150여명 이상 죽어가는 데 얼마나 아이들이 더 죽어야 무능하고 염치없는 대학이 만족하겠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국민이 고통을 받아야 이명박 정부는 멈추지 않고 달려 가는 입시정책 폭주 기관차를 멈추겠습니까?
수능등급제 폐지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학논술고사 폐지’입니다. 수능 등급제 폐지를 폐지하려면, 대학의 입맛에 맞추어 수십년 간 유지되어온 이 선발 도구로서의 수능과 내신 체제, 객관식 5지 선다 평가 체제를 폐기하십시오. 대신 선진국처럼 내신을 다양한 학생의 발달과정을 평가하는 ‘질 높은 내신체제’로 전환시키고, 그 ‘새로운 내신’만으로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위험하다구요? 아니요. 새 정부가 예고하는 대학입시제도보다 더 위험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2008. 1. 22.
좋은교사운동
대표: 정병오(019-251-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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