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원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밤늦게 귀가 하고 있다. photo by 한향주.

지난 24일 이명박 대통령은 충북의 한 고등학교를 방문해 '사교육 철폐 등 교육개혁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충북 괴산고를 방문해 "대학에서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논술, 시험없이 100% 면담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한 "대학에서 학교 성적 위주가 아니라 입학사정관이 고교와 상의해 창의력과 인성을 갖춘 학생을 뽑게 될 것"이라며 "과외와 사교육을 받은 학생이 더 불리해진다"며 대입제도의 개혁을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농촌 등의 지역에서도 사교육 없이 대학을 가기 쉬워지고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사회에서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기 위해 정부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며 "수년 내에 완전히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교육 문제점을 일시에 해결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하지만 구체적 방법 제시도 없이 '말로만 하는 교육정책'이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사교육비 절반으로 줄이겠다던 정부, 실제로는 오히려 늘어나</strong>

올해 교육과학기술부 예산은 45조원이 넘는 규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국민전체가 쓴 사교육비는 21조원에 이른다. 교과부 전체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이다. 게다가 '사교육비 절반으로 줄이기'를 교육공약으로 내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도 전체 사교육비는 오히려 1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사교육1번지' 서울 강남구의 경우 입시학원 수가 두 배 이상 증가했고, 전국적으로 개인과외는 25%, 입시학원은 12%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교육 증가의 이유를 살펴보면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허언(虛言)'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국제중학교와 자율형사립고 설치, 영어 몰입교육 등이 오히려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비판 때문이다.
노종희 한양대 교육학 교수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듯 영어몰입교육, 국제중학교 신설, 자율형 사립고, 고교평준화 해제 등 요즈음 새롭게 발표되는 교육정책들이 사교육 수요를 부추길 개연성이 높다"며 "이들 교육정책이 사교육 대책과 엇박자로 놀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각 정책별로 사교육 수요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실행계획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4월 열린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민석 민주당 의원이 대학별 입학사정관 선발인원 변화와 관련해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photo by 한승호

사교육의 경우 공교육 무너지면 사교육 대한 수요가 증가할 수 밖에 없는 '제로섬'의 형태를 보인다. 그렇다고 사교육을 인위적으로 억압할 경우 그 결과가 사교육 약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사교육을 배태시키는 풍선효과만 나타날 뿐이다.
결국 사교육 문제는 대입제도 개선과 공교육 내실화가 선행돼야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학벌이 곧 실력'이라는 사회 통념을 바꾸어야 하는 '거대한' 작업이다.

현재 이명박 대통령이 교육과 관련해 관계부처의 무능을 질책하고 있지만 근본적 처방은 나오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발표한 입시과목 축소와 학원교습 시간 및 학원비 제한 정책, 그리고 단속을 위한 신고포상제는 근시안적인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책 하나로 해결될 문제?

이명박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앞으로 시행되는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믿음에서 기인한 듯 하다.

입학사정관제도란 대학이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대학의 학생선발 방법 등에 대한 전문가인 '입학사정관'을 채용, 신입생을 선발하는 제도다.

입학사정관은 학생의 성적과 개인 환경, 잠재력 및 소질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학생을 선발하고, 연중 입학업무를 전담한다.

이에 따라 입학사정관은 학생들의 성적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개별적인 특징을 평가하기 위해 직접 일선 고교를 찾아가 '학생 발굴'에 나서는 작업도 수행하게 된다.

이와 같은 설명을 들으면 입학사정관제도 역시 지금까지의 교육정책이 그래왔던 것 처럼 '이상적인' 교육정책인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언제나 정책보다 한 발 앞서는 사교육 시장은 이미 입학사정관 제도를 사교육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놓았다. 각종 유명 학원들은 '입학사정관제 전형 합격을 위한 전략'을 수업내용으로 만든 상황이다.

정부는 자율형 사립고에도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자율고의 경우 교육의 다양성과 수월성 확보를 위해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맞춤형 수업, 무학년제, 교과교실제 등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자율성'이 공교육을 살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자율고 역시 현행 대입제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 또 하나의 '입시명문고'의 형태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는 게 비판자들의 주장이다. 일반고등학교보다 두배 이상 비싼 수업료를 내는 '공교육의 옷을 입은 사교육'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례로 전국에 걸쳐 있는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 역시 학교 설립 당시에는 결코 '입시명문고'를 지향하지 않았다. 일부 영역에 뛰어난 자질을 보이는 학생들을 발굴해 이들을 실력있는 전문가로 키워내는 것이 설립 목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외국어고와 특수목적고는 다른 입시명문고와 함께 사실상 대입을 목표로 하는 '입시고'로 변질돼 버린 실정이다.

결국 자율형 사립고, 대입사정관제 등 한 두개의 정책을 통해 지난 수십년간 해결하지 못한 교육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것은 이 대통령의 무리한 욕심으로 보인다.

정책 하나 내 놓고 '청운의 꿈'에 부풀것이 아니라 기존의 대책에 대한 보완과 새로운 정책의 진행을 병행하며 보다 긴 시간을 두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과거정부가 교육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 반드시 이명박 정부보다 뛰어나지 못해서만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