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도 없이 수준별 수업 하라고?
"정부 확대방침에 일선학교 "현실 무시" 반발
교육과학기술부와 서울시교육청이 수준별 이동수업을 강화할 방침을 밝히면서 일선 학교에 비상이 걸렸다. 교사 수나 학교시설, 과목별 수업시수 등 제한적인 여건들 때문에 수준별 이동수업을 확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부분 학교에서 “교육청이나 정부의 추가 지원이 없는 한 수준별 이동수업을 확대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어 정부와 교육청이 우열반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현실성 없는 정책을 발표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8일 교과부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4489개 중·고교 가운데 수준별 이동수업을 실시하는 학교는 66.7%인 2990여개에 달한다. 이들 대부분은 1·2학년 중심으로 수학과 영어 두 과목에 대해서만 수준별 이동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교과부의 ‘학교자율화 계획’에 이어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24일 ‘학교자율화 세부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우열반 편성을 금지하는 대신 수준별 이동수업의 과목을 확대하고 반편성을 세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이를 시행해야 할 일선 학교에서는 “수준별 이동수업 확대 및 세분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현재 여건에서는 이를 확대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 교과부에서 제시하는 반 편성 기준인 ‘N+1’(기존 학급 수보다 1개 많게 반 편성)조차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원이나 시설 확충 등의 지원없이 이를 확대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 중동고는 영어와 수학 과목에 한해 세 반을 묶어서 상·중·하로 나눠 실시하고 있다. 3개 반을 3개 수준으로 나눴기 때문에 큰 무리없이 수업을 할 수 있지만 이를 더 세분화할 경우 3개 이상 학급의 수업 시간표를 동일하게 맞추는 것이 쉽지 않고 영어, 수학에 비해 교사 수가 훨씬 적은 과학 등의 과목은 수준별 수업 자체가 어렵다. 이 학교 김병민 교감은 “교육청의 구체적인 지침이 있을 때까지는 반을 더 세분화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현 상황에서 수준별 수업 확대를 위한 유일한 방법은 ‘우열반 편성’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의 한 고교는 영어, 수학뿐 아니라 국어까지 수준별 수업을 실시하지만 상위 성적에 속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2∼3개 반을 따로 편성, 사실상 우열반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이 학교 관계자는 “한 반을 3개 수준으로 나누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사회와 과학 등 다른 과목까지 확대하는 것은 방과 후 학교에서만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정부에서 수준별 반 편성으로 학급 수가 늘어나 필요한 강사에 대한 비용을 지원하고 있지만 시간강사 수당이 시간당 1만원 남짓에 불과해 지원자가 적고 정규 교사가 아닌 만큼 수준 높은 수업을 기대할 수 없다.
교통이 불편하고 환경이 좋지 않은 농촌지역 소규모 학교들에서는 강사도 구할 수 없는 실정이다. 강원 양구고 채희석 교감은 “1학년은 2개 반이라 영어와 수학에 한해 두 반으로 나눠 이동수업을 실시하고 있고 2·3학년은 영어에 대해서만 이동수업을 한다”며 “반을 더 세분화하고 싶지만 인근에 강사로 채용할 인력이 없어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이경희 기자 sorimoa@segye.com
기사입력 2008.04.28 (월)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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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도 없이 수준별 수업하라고? - 세계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