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고교 등급제’ 논란 고려대의 서태열 입학처장
“외고 58%, 일반고 53% 통과… 이게 등급제인가
외부 조사 두렵잖다. 우리가 옳음이 확인될 것”
고려대는 2009학년도 대입 일정 내내 비판에 시달렸다. 논란이 된 건 수시 2-2학기 일반전형이다. ‘입시부정’ ‘특목고 우대’ ‘고교 등급제 적용’…. 이런 논란이 꼬리를 물었지만 고려대 측 대응은 미온적이었다. 비난에 일일이 반박하지 않았고, 간혹 들리는 답변도 “전형요강에 따라 공정하게 선발했다”는 원칙론에 그쳤다. 이 때문에 한편에선 “떳떳하다면 왜 분명히 입장을 밝히지 않느냐” “뭔가 켕기는 게 있으니 잠잠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려왔다.
지난 2월 5일, 사태의 중심에 서 있는 서태열 고려대 입학처장(48·지리교육과 교수)에게 연락했다. 기자는 “직접 만나서 얘기를 듣고 싶다”고 제안했고, 그는 이튿날 오후에 전화로 “10일 오후 학교로 와달라”고 했다.
마주앉은 서태열 처장은 대뜸 “학생부(학교생활기록부)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흔히 학생부라고 하면 성적과 출결상황 정도만 기록된 걸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아요. 기재 항목만 10개가 넘지요. 성명·신상정보·수상실적·자격증보유현황·봉사활동·창의적재량활동·특별활동·교과성적·행동발달상황…. 이제까지는 대학이 신입생 선발에 학생부를 반영한다고 하면 이 중 극히 일부, 특히 내신 반영률이 절대적이라고들 생각해왔어요. 사실이 그렇기도 했고요.”
그는 "고려대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기존 학생부 반영 관행을 우리가 처음으로 깼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이번 입시에서 저희는 학생부 중에서도 비교과 영역에 주목했습니다. ‘봉사활동 몇 시간 하면 점수 몇 점 준다’같은 방식이 아니라 기재 항목을 고루 검토해 다양한 실력을 갖춘 학생을 가려내려 노력했어요. 점수 1점 더 높은 학생도 좋지만 다른 부문 성취도가 뛰어난 학생도 뽑고 싶었으니까요.”
일부에선 “선발 과정에서 비교과영역을 비중 있게 다뤘다”는 고려대 주장에 대해 “비교과영역 점수가 비슷한 학생도 당락이 갈렸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서태열 처장은 “관점 차이일 뿐”이라고 했다. “그 사람들이 지적한 비교과영역은 출결과 봉사, 수상실적 정도가 전부입니다. 그렇지만 학생부는 그 학생이 학교에서 뭘 했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자료 아닌가요? 잘 살펴보면 해당 학생의 성취도와 리더십, 발전 가능성 등을 발견할 수 있고 그걸 포착해내려고 한 겁니다.”
서 처장은 ‘반영률 10%에 불과한 비교과영역의 실질 비중이 너무 높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교과 90%, 비교과 10%라고 하지만 실질 반영률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은 대부분 교과성적 우수자입니다. 때문에 90점 만점이라고 해도 지원자들의 점수 분포는 만점 부근에 집중돼 있지요. 비교과영역도 마찬가지고요. 미세한 차이로도 당락이 갈릴 수 있는 건 그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의혹 1 일반고 1등급 떨어졌는데 외고는 2등급 이하도 통과
“교과영역 점수 거의 비슷해 비교과영역이 변수된 것”
그간 “고려대 입시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쪽은 주로 내신 등급이 높은데도 1단계 선발에서 고배를 마신 수험생과 학부모, 그리고 이들을 지도한 교사였다. ‘학생부 성적만으로 뽑겠다고 해놓고 내신 최고 등급 학생을 떨어뜨리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 처장도 지원자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사연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 “경쟁이 치열한 상위권 학과의 경우 교과성적이 높아도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유감스럽지만 사실이지요. 비교과 부문에서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학생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에 따라 소신껏 전형을 진행했지만 정도가 과했다면 조정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번 일을 ‘입시부정’이나 ‘계산 오류’로 몰아가는 여론에 대해선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이번 일의 이면엔 대입제도에 대한 일부 언론의 무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수시 전형도 여러 종류가 있어요. 그중엔 학생부 우수자 전형도 있고요. 작년에 350명을 선발했고 올핸 450명까지 늘릴 예정이지요. 학생부 우수자 전형에서 ‘1등급을 왜 떨어뜨리느냐’라고 한다면 100% 납득할 수 있어요. 게다가 수시 입시의 특성상 여러 전형을 중복 지원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요. 다양한 선택이 가능한 상황에서 일반전형으로 불이익을 받아 진학에 실패했다면 그건 담당교사가 진학지도를 잘못한 거지요.”
의혹2 ‘모종 기준’ 적용해 특목고 출신 우대한 것 아닌가
“내신조정은 모든 대학서 하는 작업… 이해 안되면 ‘부정’인가”
고려대가 ‘모종의 기준’을 적용해 특목고 출신을 우대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그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흔히 ‘일반고 1등급 학생은 떨어지고 외고 5등급 학생은 붙었다’는 예를 들며 우리 대학의 입시제도가 잘못됐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수능만 해도 원점수를 그대로 반영하는 대학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표준점수를 활용하지요. 학교 내신도 마찬가지예요. 학생 규모나 시험 난이도 등에 따라 내신이 천차만별이어서 대학 입장에선 이를 어느 정도 표준화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평균 성적이 80점이고 편차가 아주 심한 A학교 사회교과 내신과 평균 성적이 90점이고 편차가 거의 없는 B학교 사회교과 내신을 같다고 할 순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른바 ‘조정내신’이 필요한 거예요.”
그는 “조정내신은 이미 모든 대학이 신입생 선발에 적용하는 제도”라며 “60만 수험생이 동일하게 치르는 수능시험은 표준화 과정이 단순하지만 내신성적은 학교마다 편차가 너무 커 조정 과정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고려대 측이 전형요강에서 밝힌 교과영역 성적 산출법은 상당히 복잡하다. 특히 내신등급을 재산출하는 과정에서 a, k 등 밝혀지지 않은 상수도 등장한다. “우리가 적용하는 조정내신이 복잡한 건 사실입니다. 학교마다 울퉁불퉁한 내신 체계를 표준화하기 위해 평균, 표준편차, 평균의 표준편차, 표준편차의 표준편차 등 여러 분포를 보고 정리해야 하니 복잡할 수밖에요. 간단하게 정리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닙니까. 그걸 ‘내가 당장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입시부정이라고 몰아가면 안 되지요.”
그는 “상수값 산출 근거까지 밝히라는 요구는 잘되는 음식점에 가서 레시피 내놓으란 거나 다름없고, 대학의 ‘영업비밀’을 공개하란 말”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의혹이 커지는 상황에선 굳이 숨길 이유도 없다고 했다. “수일 내로 대교협(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 우리 대학을 조사한다고 합니다. 묻는 대로 대답할 거고 기회가 되면 알파값이든 케이값이든 다 줄 거예요. 대교협 아니라 검찰에서 조사한다고 해도 관계없습니다.”
의혹3 핵심은 사실상 고교등급제 적용했는지 여부
“명문고는 부침 심하고 외고도 수준 제각각… 원천 불가능”
이런저런 질문에 그는 비교적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러다가 ‘고려대가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적용한 거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는 대목에 이르자 톤을 높였다. “고교등급제가 뭡니까. 과거 특정 학교 학생들이 거둔 좋은 성과에 준해 이듬해 그 학교 학생을 선발하는 거지요. 그런 고교등급제를 우리 대학이 도입했다고요?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입시지형은 굉장히 들쭉날쭉합니다. 몇 년 전 명문대 합격률이 높았던 고교가 무너지는가 하면 신흥 명문고가 탄생하기도 해요. 실제로 서울 모 외고의 경우 최근 몇 년간 우리 대학 신입생 수가 급격하게 줄고 있습니다. 조정내신은 특정 학교를 잘 봐주기 위해 만든 게 아닙니다. 하나의 공식을 모든 학교에 똑같이 적용하기 때문에 특별히 유리하거나 불리한 학교가 나올 수 없어요.”
그는 고려대의 고교등급제 적용 의혹을 제기한 권영길 의원의 데이터 인용 방식의 문제점도 비판했다. “권 의원은 이번 수시 2-2 일반전형에서 외고 학생의 1단계 통과율이 58%라고 비판했어요. 그런데 같은 전형의 일반고 학생 1단계 통과율이 얼만지 아세요? 53%입니다. 별 차이가 없어요. 지원자 대비 1단계 통과율이 76%인 일반고가 있는가 하면 24%에 불과한 외고도 있어요. 일부 보도가 억울해도 학교 이름은 공개하지 않을 겁니다. 해당 학교 학생과 학부모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학을 비판하는 이들은 자기 주장만 하면 끝이겠지만 저흰 다릅니다. 전국 수만명, 수십만명의 학부모와 수험생을 상대해야 하니까요.” 그는 “요즘엔 하도 답답해서 ‘우리가 고교등급제 한다는데 그런 방법 있으면 좀 알려 달라’고 얘기하고 다닌다”고 했다.
“대입자율화, 아직 멀었다”
1~2점에 연연하면 배치표와 학원 의존 입시 한계 못 고쳐
공교육 정상화 위한 최선의 방식… 다른 대학들도 따라올 것
2009학년도 대입은 여러 모로 기대를 모았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였기 때문에 ‘대학입시 자율화 원년’이란 그럴 듯한 타이틀도 붙여졌다. 그러나 서태열 처장은 “자율화는 무슨 자율화냐”며 고개를 저었다. “(대입 자율화는) 할 수가 없어요. 점수 1점 갖고 따지는 사람들 앞에서 자율화를 어떻게 합니까. 이제껏 해왔듯 점수 배치표에 따라 학생을 뽑지 않으면 어떻게든 말이 나올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도 입시 전략을 입시학원 가서 물어봐야 하는 일이 반복될 거고요. 비극이지요.”
서 처장은 “너도나도 공교육 정상화를 외치는데 그런 면에서 고려대의 이번 시도를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일반전형의 경우 특히 지원자의 성향이 다양합니다. 때문에 이를 걸러내는 과정에서 각 고등학교가 보유한 학생 관련 데이터를 믿고 활용하기로 한 겁니다. (학생부를) 믿어 달라면서요. 다만 학생부 반영 방법이 이전과 다소 달라서 불편하고 당황스러웠다면 그 점은 조금씩 고쳐나갈 생각입니다.” 그는 “다른 대학이 숨겨놓은 걸 우리가 처음 표면화했고 그게 좀 낯설다는 이유로 부정이니 오류니 하는 오해를 사 억울한 측면이 있다”며 “그렇지만 방법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고, 다른 대학도 결국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태열 총장은 인터뷰 중 여러 차례 고려대의 입시제도를 중국음식점에 비유했다. 여러 전형 중 하나인 수시 2-2 일반전형 선발의 몇몇 사례만 놓고 비판의 날을 세우는 이들에 대해 “자장면도 팔고 짬뽕도 파는 중국집에 와서 별안간 상해초면 내놓으라는 것과 똑같다”고 했고, 전년도와 달라진 입시제도에 대해선 “새로운 조리법을 가미해 우리 자장면의 맛이 좀 달라졌다”고 했다. 대학을 믿지 않고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는 일부에 대해선 “자장면에 중국 밀가루 섞지 않았냐고 단골 중국집 사장을 의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분명한 건 ‘고려대 자장면은 맛있다’는 사실입니다. 저희 이름을 걸고 형편없는 상품은 안 내놓는다는 얘기예요. 우리는 벌써 3~4년째 매년 교과부(교육과학기술부) 감사를 받아왔어요. 조사 받는 것, 두렵지 않습니다. 그만한 맷집도 없이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결국 우리 방식이 옳았음을 모두들 인정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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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 단독 인터뷰] ‘고교 등급제’ 논란 고려대의 서태열 입학처장 -위클리 조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