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민들레> 22호 64∼69쪽에 실린 글입니다.
-회초리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
;민들레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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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인적자원부는 6월 26일 초중고 학생들의 체벌조건을 담은 ‘학교생활규정’ 예시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이 학교생활규정에 따르면 교사가 학생들에게 회초리를 들 때 초등학생은 1회에 5차례 이상, 중고생의 경우는 1회에 10차례 이상 때릴 수 없다. 체벌 부위도 남학생은 엉덩이, 여학생은 허벅지로 제한된다.
회초리는 직선형 나무로 하되 크기는 초․중학생용의 경우 지름 1cm, 길이 50cm 이하여야 하고, 고교생용도 지름 1.5cm, 길이 60cm를 넘어서는 안 된다. 또 매를 때릴 때는 다른 학생이 없는 곳에서 교감이나 생활지도부장 등 제3자가 반드시 입회한 가운데 매질을 해야 하고, 학생에게 상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교육부는 이런 예시안을 토대로 교직원과 학부모 학생 등이 함께 참여한 가운데 학교생활규정을 자율적으로 제정해 시행하도록 각급학교에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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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인격을 존중하기 위해 다른 학생이 없는 곳에서 제3자인 교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정해진 횟수만큼만 때린다? 어찌 생각하면 상당히 합리적으로 고민을 많이 해서 만든 규정 같기도 하다. 만만한 아이들을 다짜고짜 때리고 차고 찌르고 꼬집고 비트는 교사들이 적지 않은 마당에 이런 규정이라도 제대로 지켜진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1997년에 대통령 자문기구인 교육개혁위원회에서 펴낸 자료집 ｢학생체벌, 왜 금지되어야 하는가｣에 드러난 현실은 오늘도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선, 교사의 신체를 직접 동원한 체벌로 손바닥으로 따귀 때리기, 주먹으로 얼굴․가슴 때리기, 정권치기, 내리찍기, 이단옆차기, 무릎찍기, 꼬집기, 귓바퀴 물기, 머리칼 잡아채기, 머리를 잡고 벽에 치기, 급소차기 같은 것이 있고, 도구를 동원하는 경우로는 야구방망이, 곤봉, 지시봉, 대걸레자루, 빗자루, 쇠파이프, 죽도, 삽자루, 각목, 아이스하키채, 당구채 등을 이용하며, 존다고 바늘로 귀를 뚫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결과로 코피 흘림, 고막 터짐, 이빨․턱․손목․다리뼈․갈비뼈 골절, 뇌진탕, 정신분열증 같은 상해를 가져오거나 허리를 밟혀 수술을 받는 경우도 있으며 심지어 사망에 이른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사고는 학부모의 항의와 그에 대한 학교장과 교사의 사과, 학부모의 가해교사 폭행과 그에 따른 학부모 구속․벌금형, 관련 교사의 전출․사직․자살, 체벌교사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교사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현상까지 초래하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체벌이 학생을 올바른 방향으로 교도하기보다는 오히려 반항심을 조장하고 더 문제행동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다음에 제시하는 몇몇 사례는 체벌이 어떠한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준다.
사례1) 1994년 10월 26일, 중학교 3년생이 이성교제를 이유로 물걸레자루로 허벅지를 20대 맞고 집에서 창틀에 목을 매 숨진 사건이 있었다(한국일보,1994.10.29:31).
사례2) 1996년 6월 25일,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이 복장불량의 이유로 담임교사에게 꾸지람과 구타를 당한 데 크게 모욕감을 느껴 음독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학부모는 이 사건이 있기 한 달 전에도 그 여학생이 담임교사로부터 같은 사유로 체벌을 받아 실신한 후 10시간만에 의식을 회복한 적이 있다고 했다(서울신문,1996.6.29:21).
사례3) 1996년 7월 27일, 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귀가했다는 이유로 담임교사한테 무릎을 꿇리고 몽둥이로 맞은 고교 3년생이 무릎 위 혈관 파열, 그로 인한 콩팥기능 마비로 중태에 빠진 사건이 있었다(중앙일보,1996.8.3:21).
이해찬 장관 시절 교육부가 1998년부터 학교에서 체벌을 금지하긴 했지만 실제로 체벌은 여전히 각급 학교에서 일상사처럼 벌어지고 있었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체벌은 초중고를 막론하고 성행하고 있는데,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학년 단계가 낮을수록, 다시 말해 힘이 약한 아이들일수록 더 자주 체벌을 당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다음은 한 사이트(skyangel.co.kr)에 올라 있는 초등학생들의 글이다.
저는 초등학생이구요. 역시 언니, 오빠들은 정말 심하게 맞는 것 같네요. 다른 분들도 이렇게 생각하셨을 겁니다. ‘학교는 배우는 곳이지 맞는 곳이 아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아직 초등이라 약할지 모르지만 저희 선생님의 특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과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얼마나 못했던 간에 무조건 맞습니다. 2.체벌 규정이 어떻든 간에 맞을 때마다 대수가 올라갑니다. 3.여자는 치마를 입든 어떻든 간에 사정없이 때립니다. 4.선생님 마음에 안 들면 마음대로 문제집 하루에 전과목 2회씩, 때리는 것도 사정없이 규정 5대를 넘어서 몇 대든 때리고 한 달 동안 당번을 시킵니다 5.조금만 못해도 복도에서 2～3시간 동안 손들고 벌서기…, 그리고 조금이라도 말하는 소리가 들리면 엎드려 시켜놓고 허벅지를 때립니다. 이것들 때문에 미치겠습니다.
우리 학원은 일 주일에 한 번씩 시험을 봅니다. 그런데 우리 학원 선생님은 정말 무서워여. 80점 밑으로 나오면 틀린 개수대로 다 맞구 벌도 받아야 되요. 원장실에서 엎드려뻗쳐 매일 30분씩 하구 집에 가야 되는데요. 그것두 똑바로 못하면 엉덩이 맞아요. 대나무 몽둥이로. 정말 미치겠어요. 얼마나 쪽팔리는데요. 우리 학원은 기본이 10대예요. 10대 안 맞는 사람이 없어요. 10대 맞으면 금방 손이 부풀어올라요. 시험 못 치면 손바닥 맞구 숙제 안 하면 칠판 잡구 엉덩이두 맞아여. 정말 쪽 팔리구 아파여…
체벌문화는 학교를 넘어서 학원에까지도 뿌리를 뻗치고 있다. 아이들을 통제하고 시험성적을 올리기 위한 - 이것이 학교나 학원 교육의 기본 목표임은 다 아는 사실이다 - 방편으로 체벌에 의존하는 관행은 여전한 것이다. 그런데 새삼스레 교육부가 체벌을 공식적으로 허용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이들이 너무 심하게 맞는 것을 방지하고자 적정수준을 제시한 것일까? 사실은 지난 3월에 발표된 ‘공교육 내실화’ 방안의 하나로 짜낸 고육지책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교사의 권위가 서고 학교교육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다.
사실 정부로서는 아이들의 편을 들기보다 교사 편을 드는 것이 손쉬운 선택일 수 있다. 학교에 매어 있는 아이들은 집단으로 자기주장을 할 힘을 거의 잃어버린 상태에다 선거권도 없는데 비해 단일 직종으로는 최대 직업군인 교사들의 정치적 힘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체벌 허용을 반대하는 교사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묵시적으로 동의하거나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는 것만 봐도 정부와 교사집단은 손발이 맞는 셈이다. 내친 김에 교육부 이름도 교권수호부로 바꾸고 그 산하에 KS 규격품 회초리 생산 공장이라도 차리는 것이 어떨까?
산업혁명 당시 자본가들은 어린아이들까지 열네 시간씩 혹독하게 일을 시키면서 출근시간을 어기거나 하면 채찍과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노동자들을 체벌하는 데 쓰는 몽둥이가 공장 한켠에 늘 비치되어 있었던 당시 영국의 공장 상황과 오늘날 학교의 현실이 다를 것이 없다. 입시경쟁 아래 밤늦도록 혹독한 학습노동을 강요당하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규칙을 어기면 매로 다스리는 학교가 과연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다시 한번 물어볼 일이다.
체벌에 의존해야 하는 교육은 최악의 교육이다. 이미 말이 통하지 않는 관계임을 반증하는 것이기에. 물론 경우에 따라 독(毒)도 아주 소량으로 잘 쓰면 약이 된다. 그러나 애초에 그런 약을 쓰지 않아도 되도록 몸을 돌보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서머힐학교는 80년이 넘는 동안 체벌 따위를 입에도 올리지 않고도 잘 운영되어왔다. 알바니 프리스쿨 또한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체벌에 기댄 적이 없었다. 착한 아이들만 있어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보통 아이들보다 더 문제를 많이 안고 있는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지만 사랑과 자율이라는 처방으로 모든 병을 근원적으로 치유해왔다. 우리 교육환경은 그런 학교들과 비교할 수 없이 열악하기 때문에 체벌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비슷한 환경에서도 체벌을 전혀 하지 않고 학급을 잘 운영하는 교사가 있고 그런 학교들도 있지 않은가. 왜 그런 교사와 학교들을 모델로 삼지 못하는가? 쓸데없는 규칙들을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면서 체벌로 복종시키는 불합리한 구조를 깨뜨리는 것이 옳은 방향이 아닌가? 문제는 아이들을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에 있다. 사실 알바니 프리스쿨의 물리적 환경은 우리 공립학교들보다 훨씬 더 나쁘지만 거기에는 통제가 아닌 사랑이 교육의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보아야 한다.
한편 사회가 이미 병들어 있고 가정에서부터 망가지는 아이들을 학교에서 어찌할 방법이 있느냐고 반문하는 교사들도 있다. 그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병든 아이들을 기합을 주고 매로 때려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환자를 때려서 치유한다는 광신도들의 행태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물론 체벌의 효용을 옹호하는 교사들 중에도 아이들에게 신뢰를 받는 좋은 선생님들이 있다.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제압하는 ‘정의의 사도’ 선생님이 휘두르는 몽둥이가, 인간성이 비뚤어져 구제불능처럼 보이는 아이들을 신체적 고통을 줘서라도 자기를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아이들일수록 장기 치료가 필요하지만 지금의 우리 학교 현실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에 체벌이라는 극약 처방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면 달리 할 말이 없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 극약 처방을 받은 아이들이 건강을 회복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 또한 사실이고 보면, 아이들이 빗나가도록 만드는 지금의 학교구조, 교사와 아이들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로막는 지금의 교육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병 주고 (극)약 주는 악순환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체벌이 이미 약발이 거의 듣지 않는 약임이 판명이 났는데도 몇십 년째 같은 처방전을 쓰고 있는 무능한 교육부를 바라보고 있자니 참 갑갑한 노릇이다. 그렇다고 그 엉터리 처방전대로 약을 지어주는 교사를 탓하고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위생 환경을 개선하고 체질을 개선하도록 우리 모두가 발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시급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은 쓸데없는 통제를 그만두는 것이다. 귀밑머리 1～2센티를 갖고서 몽둥이를 휘두르는 어리석은 짓은 이제 정말이지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학교 규칙을 아이들이 스스로 정하고 책임도 질 수 있도록 하자. 아이들을 더 이상 통제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교육의 동반자로 보는 시각 교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폭력에 무감각한 우리 의식을 바꾸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학교의 폭력 문화는 사실상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폭력 문화가 반영된 것이나 다름없다. 또 한편 학교가 사회의 폭력 문화를 재생산해내는 역할도 하면서 악순환의 고리를 이어가고 있다. 폭력의 대물림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개개인의 각성이 없이는 이 고리를 끊어내기 힘들 것이다.
흔히 매를 때려 아이를 바로잡았다거나 맞아서 그래도 사람이 되었다고 회고하는 이들이 있지만 평소에 건강을 제대로 돌볼 줄 모르는 사람이 뒤늦게 약에 의존하는 법이다. 어떤 약도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회초리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 이 말은 약을 아끼면 건강을 망친다는 말이나 다름없는 말이 아닐까? 하긴 걸핏하면 약을 입에 털어 넣는 우리들의 습관대로라면 회초리를 아끼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일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수준에서 또 학교의 교육 환경 상 설령 체벌의 효용가치가 있다 해도, 다른 한편 약의 오남용이 심각하듯 체벌의 오남용 또한 심각한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체벌 허용이 가져올 부작용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의사(교사)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기본도 갖추고 있지 않은 돌팔이 의사들이 적지 않은 학교 현장에서 죽어나가는 아이들이 지금도 얼마나 많은가. 아이들의 인권보다 교권을 먼저 생각하는 한 학교교육은 결코 바로 서지 못할 것이다. 체벌 허용이라는 ‘악수’는 하루빨리 물리는 것이 현명하다. 교육이라는 대마를 죽이는 결과를 낳기 전에. 그래도 행정에서는 일수불퇴 규칙 같은 것은 없지 않은가? 이랬다 저랬다 하는 교육정책 때문에 안 그래도 욕을 먹는 교육부지만 한번 더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들과 우리 교육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스스로 실수를 인정하고 수를 물릴 일이다. 그리고 우리 교육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눈을 돌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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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_인권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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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초리를 아끼면 과연 아이를 망칠까?(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