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저녁시간이 분주하다. 과수원 일을 일찍 끝내고 얼른 저녁 차려먹고 외등을 키며 아이들 맞을 준비를 한다. 인근 몇몇 마을 아이들과 함께하는 ‘책읽는 모임’이 열리는 날이다.
모임에 오는 아이들은 오후 4시 30분까지 늘 학교의 ‘강제 방과후수업’과 보충문제풀이에 매여 있다가, 이후 학원을 전전하다 해질녘에 귀가하는 농촌의 보통 초등 고학년학생들이다. 대개 어릴적부터 학원과 학습지, 수동적인 학교수업, TV, 인터넷, 휴대전화 등의 영상매체에 길들여진 아이들이다.
책읽고 토론하는 모임이지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양한 방면의 책을 접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만나며 느끼는 것은 무엇보다 책 읽는 것을 힘들어하며, 책 읽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무슨 복잡한 지식이나 특별한 이해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데도 책을 잡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무척이나 낯설다. 게다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아이들의 가정에서의 생활환경, 학교의 수업방식, 학교의 독서환경(도서관)과 무관하지 않다.
오늘도 아이들은 자기네끼리 이야기하고, 장난도 치고 떠들다 갔다. 논리적이지 않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아이들도 있다. 학원에서 막바로 온 몇몇 아이들은 저녁을 먹지 않아서 간단한 요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었다. 토론 시간에 어른은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사회도 아이들이 보도록 하고 무슨 결론을 만들거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절실한 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책을 통해서 듣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과 경험이다.
아이들의 교육환경은 이미 사면초가의 지경이다. 가정, 학교, 학원 어디에서도 아이들에게 교육적이고 추천할 만한 삶의 환경은 희박하다. 아이들의 얘기나누는 모습, 책 읽는 모습을 보며 간혹 답답하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 어른들이 강요하는 세상의 희생양, 피해자이기에 미안하고 측은하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며 스스로 생각하는 자기의 모습을 보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이들에게 삶의 희망, 오늘의 즐거움, 일상의 유쾌함을 전하지 못하는 한 우리 어른들은 ‘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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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전하지 못하는 한 우리 어른들은 ‘죄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