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에서 몇 등이지?”
“…….”
언젠가부터 어른들은 아이에게 ‘등수’부터 묻는다. ‘꿈’은 좀처럼 묻지 않는다.‘등수 유전자’가 암세포처럼 부모의 맘을 갉아먹는다.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기가 죽고, 공부를 잘 하면 기가 산다. 어느날부터 공부는 로또·노다지·일확천금·수호천사가 된다. 어른들은 ‘젊어서 공부를 못하면 늙어 고생할 것’이라며 아이들을 ‘공부광’으로 ‘사육’한다. 다들 ‘지금 대한민국은 교육은 없고 시험공부뿐’이란다.
그래서 그럴까, ‘등수민국’의 아이들이 자꾸 자살을 한다. 왕따와 폭력 때문이란다. 급기야 정부가 대국민담화문까지 발표했다. 학생들은 시험먹고 사는 로봇처럼 이리저리 끌려다닌다. 어른들은 치열한 경쟁사회니까 그게 현실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러면서 인성교육이 중요하단다. 모든 교육개혁안이 총동원됐지만 국면은 설상가상(雪上加霜). 과연 대한민국에 ‘교(敎)’라는 게 존재나 할까?
김민남 경북대 교육학과 명예교수(70).
‘인간의 얼굴을 한 교육’을 꿈꾸는 그를 만나러가면서 기자는 이런저런 ‘넋두리’같은 단상을 떠올려 봤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교육의 본질’이 뭔지를 가장 권위있게 해석해줄 수 있는 대표적인 학자로 평가받는다. 2003∼2005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 선임위원으로 ‘2008년 이후 입시안’의 밑그림을 주도했던 김 교수. 그를 만나 도대체 대한민국 교육이 왜 이 지경에 이르게 됐는지를 알아보고 왔다.
◆ 어디서부터 우리 교육이 왜곡됐을까
-새삼스럽게 질문해보고 싶습니다. 교육이 뭔가요.
“다소간 현학적으로 들리겠지만, 교육은 ‘무지의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인류적 과업’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럼 진정한 앎은 뭔가요?
“사물과 사태를 ‘심플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자신이 자신에게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면 그 때 앎과 삶은 병행하겠지요. 배움의 근거는 그 여유로움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이 여유로움은 가르치는 자의 마지막 덕목입니다. 교사분들께 이 덕목을 교사로 재직하는 한 갈고닦기를 주문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저 자신 역시 부끄럽습니다.”
- 대한민국 모든 교육주체가 ‘교육의 달인’인 것 같은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 교육은 만신창이입니다. 우리 교육이 이렇게 된 건 언제부터일까요.
“‘민초’라는 용어를 쓰겠습니다. 민초는 자식의 교육에 의존하여 고달픈 일생을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내는 사람들입니다. 민초의 교육열은 지배층의 모욕과 무시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습니다. 굶주림을 면하려고 그리고 일제의 폭력을 피해 이주해간 만주벌판에서 민초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배움터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종족은 국가가 학교를 세워야 아이를 교육시키려 하지만 우리 민초는 함께 학교를 만들고 운영했습니다. 온 동네가 나서서 아이들을 키우려 했습니다. 일제는 민초의 교육열을 두려워했고 그것을 관리하려고 했습니다. 일제는 시험이라는 제도를 가지고 그렇게 했습니다. 시험이 곧 교육, 시험이 곧 학교로 둔갑했습니다. 1930년대가 되면 한반도는 시험지옥으로 변합니다. 학교는 서열·등급화됩니다. 나중에는 ‘공부=시험=보상’이란 구도가 고착화됩니다. 교육은 학교에서만 하는 것이고 온 동네가 나서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우리 역사현장에서 사라지고 없습니다.”
◆ 교육행정이 교육현장 압도하고
-그래서 1등을 독점하기 위해 전국민적인 혈전이 시작되는군요.
“사회정치적 성공이 교육목적이 된 사회환경이 안타깝습니다. 먼저 성공한 사람들이 성공의 욕망을 교육개념에 그리고 교육체제에 심었습니다. 과정이 무시되고 결과만 남았습니다. 아이들의 유능과 무능만 따지는 교육이 되었습니다. 어른들이 하는 짓은 다 감춰지고 아이들 짓만 남김없이 노출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교육이란 말만 있지 어쩜 학교는 학생만 관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적으로 표시되는 학력, 소유하기 편리하도록 편집된 참고서를 가지고 얻은 앎, 그런 학교체제에서, 교사와 아이는 ‘관리관계’를 맺을 뿐 교육관계는 맺을 수 없습니다. 교육관계는 교육과정을 매개로 맺어집니다. 완성된 지도만 암기하듯 익히는 것이 아니고 산맥과 등고선과 늪과 평야와 강줄기와 양지바른 동네를 그릴 수 있는 ‘지리학의 눈’을 뜨는 것입니다. 규정·규칙·지침이 교육질서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합리가 아니라 합법이 교육을 만들어내니 아이들이 제 길을 가겠습니까?”
-교사들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배움을 간섭하게 되겠군요.
“어쩌면 교사들도 희생자입니다. 그들은 교육과정 구성권을 빼앗겼습니다. 지금 사실상 교사에게 학생 평가권이 없습니다. 정부·대학·언론·학부모·사교육기관이 움켜쥐고 있습니다. 성적때문에 사교육에 의존해야 하고, 그 사교육은 ‘선행학습’으로 구조화되었습니다. 한술 더 떠서 EBS 수능강의 같은 게 모든 교사의 수업을 획일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래 놓고 말 끝마다 다양성과 창의성입니다. 공교육 살리기? 혁명보다 더 어렵게 됐습니다.”
-교육부와 교육청이 사라지면 괜찮을까요.
“안되죠. 교육은 본질적 행위이고 교육행정은 그 본질이 제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뒤에서 조건을 정비해야 합니다. 문제는 행정이 교육을 압도하고 있다는거죠. 지금 행정은 교육의 거의 모든 것을 간섭하고 있습니다. 규정따지기와 실적 점검의 감사를 마구 휘두릅니다. 행정 전문가들은 일선 교육 현장이 무능하기에 자신들이 관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무능에 대한 몇가지 현장 사례를 들먹이며 교육개혁론을 무력화시킵니다. 정치권도 그들의 ‘무능사례 제시’논리에 쉽게 넘어 갑디다. 현장은 잡무 때문에 아우성입니다.”
-그럼 이제 교사가 어떻게 해야죠.
“교사도 이제 ‘생활정치꾼’이어야 합니다. 소시민적 침묵의 교사문화를 깨트리는 일에 나서야겠지요. 학교에서야 말로 진실의 말이 통하는 곳입니다, 어디서 진실의 말을 하겠습니까? 근무조건을 가지고 싸우다가 학교구성원들 사이에 틈이 벌어지는 일은 하지 않아야겠죠. 아이들의 편에 서는 것, 아이들의 필요와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필요 없습니다. ‘지금 열심히 공부해야 나중에 성공한다’ 그런 성공담론은 어떻게 보면 다 어른들의 필요와 요구에서 나온 겁니다. 어른의 것을 교육에 끌어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교총이든 전교조든, 교직단체라면 이 시대적 흐름을 조직화하는 정치에 나서야겠지요.”
‘교사가 하는 일과 학생이 하는 일은 동일하다. 교사가 스스로를 돕지 않는다면 그는 학생에게 해줄 것이 없다’는 자신의 한국교육개혁의 핵심을 기자에게 적어보여주는 김민남 교수.
◆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는가
-대학입시라는 게 참 무지막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조적 틀을 만들 재목을 길러야죠. 그런데 우린 틀에 맞게 사람을 짜맞추려고 합니다. 쓸모를 미리 정해 놓고 깎아 만든 ‘영재’가 아니라 어디든 제자리에 놓일 미완의 ‘전형적’ 인재가 절실합니다. 그들이 대학 전공교육의 고등교육 목표에 따라 교육받을 수 있도록 선발하는 것입니다. 대학은 다 된 영재를 받아들여 뭘 하려는 거죠.”
-교수님이 구상하고 계신 입시개혁안의 요체는 뭐죠?
“아이들의 유능과 성실을 추궁하는 것보다 어른(학교와 교사)의 성실과 유능도 함께 따지는 입학제도를 구상했습니다. 왜 아이들의 것만을 기록하죠. 아이들을 가르치는 주체도 함께 평가해야죠. 초중등학교에서 아이들의 모든 것을 세밀하게 기록해 대학으로 넘겨주면 대학도 학교와 아이들의 자료를 함께 평가해야죠. 그렇게 해서 나온 게 입학사정관제도 입니다.”
-아직 우리 교육은 정답만 강요하는 것 같습니다.
“정답을 교육내용으로 삼아 가르치는 사이, 교사와 학생 간에 인식론적 긴장은 사라지고 대화관계가 차단됩니다. 삶의 현장에서 제기되는 질문을 주고받으며 그것을 교육내용으로 삼아 세계에 대해 말을 거는 이론적 행위는 생락되죠. 공부가 책만으로 환원되고 삶으로부터 분리됩니다.”
◆ 교사와 학생한테 힘을 몰아줘라
-학생 체벌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체벌,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체벌은 반드시 이유를 가져야 하고 학생이 그 이유에 동의한다면 체벌이 대수겠습니까? 한편 체벌은 합리적 이유를 무색하게 하는 심리와 상황의 변수에 휘말리기 십상입니다.체벌 한 교사와 학부모의 입장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죠.”
-학생인권조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교도소 재소자 인권은 자연스럽지만 학교 ‘학생인권’이란 말은 어색합니다. 학생인권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은 학교가 뭔가 사회적으로 결핍되어 있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시설’과 같은 곳으로 전락했다는 뜻이죠.”
-교육주체 중 누가 가장 중심이라라고 봅니까.
“일단 교육 현장에 학생과 교사만 남도록, 학부모와 교육 당국이 한 발 뒤로 빠져줘야 합니다. 다른 주체는 관여자가 되고 교사와 학생만 교육당사자로 남도록 지켜보아야 합니다. 지금은 구경꾼의 간섭이 교사와 학생의 교육관계를 해체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사들이 독립운동하듯이 좀 들고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지금 교사들은 자신의 교권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 학교폭력 여론이 들끓고 있을 이때에 박차고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막는다’고 선언하고 행동강령을 내놓으십시오. 그 명분으로 ‘교육 아닌 것을 거부하고 더 이상 잡무에 시달리지 마시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교장선생님 너무 겁내지마세요
-교장에게 한 마디 한다면….
"너무 몸을 챙기십니다. 너무 지시대로만 움직이려고 합니다. 때로는 거칠게 말하는 것이 약이 됩니다. 학교 밖의 세력의 간섭을 물리치는 좋은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교사의 뜻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 학교의 처지가 이렇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한다’고 나서면 교육청은 물론이고 언론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있는자들에게 한 마디 해주시죠.
“어릴적 기억이 있습니다. 좁은 골목길을 두고 살면서도 동네 밥먹고 사는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하고는 인사도 건네지 않고 먼 산 보듯 했습니다. 그 부자들은 왜 인사를 주고받으며 지내는 따뜻한 동네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탁월성은 그 자신이 아니라 이웃 사람에게 능력감을 안겨주는 앎·삶의 방식을 일컫는 언어’라고 말한 어느 프랑스 철학자의 잠언 같은 충고를 기억합니다. 모두 다 나서야 하지만 그래도 가진 자가 조금 앞장 서야 하지 않을까요. 이 경우 우리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데 그 책임을 자임하는 사람이 지식인 운동가겠죠. 화려한 말을 즐기는, 책상머리에서 얻은 앎에 자족하는 지식인이어선 안 되겠죠.
(일흔의 교육철학자인 그가 인터뷰 말미에 슬그머니 일어나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교육이라고 믿는 교사라면 그때 그 교사는 먼저 자신이 늘 새로움을 경험해야겠지요’라고 힘주어 말하며, 이런 말을 화이트보드에 적었다. ‘교사가 스스로를 돕지 않는다면 그는 학생에게 해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글·사진=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 김민남 교수= 1942년 경남 진주에서 출생. 69년 경북대 대학원 교육학과를 졸업. 미국 유학 이후 사물과 사태에 대한 앎이 사람을 연민하는 삶으로 이어지는 교육학에 관심을 놓지 않았다. 대구참여연대 대표, <사>청소년 교육문화센터 ‘우리세상’이사장, <사>새벗문화공동체 ‘새벗도서관 이사장’, 2003~2005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선임위원으로 일했다. 현재 경북대 사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겸 <사>지역문화연구 ‘사람대사람’고문으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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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교사여 지금이 기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