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기숙사’ 여학생 “부모님 보고파 울어도…”
지난 7일 아침 6시께 대구지역 한 고등학교 기숙사 학생들이 ‘아침 점호’를 하고 있다. 학생들은 6시20분부터 50분까지 사감 교사의 지시에 따라 조를 지어 30분 남짓 운동장을 돌았다.(위쪽) 전날 저녁, 대구의 또다른 학교 기숙사에서 학생들이 밤늦게까지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대구/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경쟁교육’ 대구 기숙학교 24시
성적순 기숙사생에 ‘병영식 교육’…“아파도 쉴틈 안줘”
지난 여섯달 동안, 대구에서 중고생 10명이 투신해 8명이 목숨을 잃었다. 입시 위주 경쟁교육의 압박이 본질적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분석이 나온다. 2010년 가을 취임한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은 “모든 고교에 기숙사를 짓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됐다. 현재 대구에는 19개 고등학교에 기숙사가 있다. 오는 2학기부터 대구시내 15개 고등학교에 새로 기숙사가 들어선다. ‘기숙학교’로 상징되는 경쟁교육의 현장을 살펴봤다. 편집자
아침 6시10분, 기숙사에 ‘기상 사이렌’이 울린다. “따르르르릉!” 학생들은 용수철처럼 침대에서 튀어나온다.
주어진 시간은 5분. 늦으면 벌점을 받는다. 운동장으로 달려간다. “하나! 둘!” 줄지어 앉으며 번호를 외치는 소리에 졸음기가 가득하다. 곧이어 운동장을 돈다. 학생들의 몸은 흐느적거린다. 그 가운데 절반은 ‘아침 구보’ 뒤의 식사를 포기한다. 기숙사 이불 속으로 다시 기어들어간다. 30분 쪽잠을 자고 눈뜨면 14시간 동안 공부해야 하는 하루가 기다린다.
처음 기숙사에 들어갈 때만 해도 김동현(가명·17)군의 마음은 설레었다. 사립고인 대구 ㄱ고는 지난해 10월 기숙사를 만들었다. 전교생 1063명 가운데 620명이 기숙사에서 먹고 자고 공부한다. “아버지가 먼저 ‘기숙사에 들어가면 좋겠다’고 하셨죠.”
성적순으로 선발한 친구들만 모여 있으니 김군 역시 공부에 집중하기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감 교사를 흉보며, 첫사랑 이야기를 나누며, 룸메이트 3명과 함께 새벽까지 수다를 떨기도 했다.
낭만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후 6시 수업을 마치고 7시부터 기숙사 1층 자습실에서 ‘자율학습’을 하는 밤이 오면, 한달에 두세차례씩 교사들이 방마다 돌아다니며 가방과 사물함을 뒤져 금지물품을 압수했다. 군대식 취침 점호도 했다. 새벽 1시 소등 직전, 사감 교사들이 방문 앞에 일렬로 선 학생들의 머릿수를 헤아렸다. 점호가 끝나면 5시간 동안 수면시간이 주어졌다.
교사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곳엔 감시카메라가 있었다. 기숙사 각층 복도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됐다. 1층 총관리실 모니터에서 사감팀장 교사가 이를 점검했다. 2~6층까지 담당 사감 교사가 배정됐다. 사감 교사들은 각층 생활실에서 24시간 학생들과 함께 지내며 동태를 살폈다.
기숙사 입구에는 지문인식기가 설치됐다. 같은 학교 학생이라도 기숙사생이 아니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학원 가는 것이 아니면 외출은 금지됐다. 주말인 토요일 오전에 집으로 돌아가 일요일 저녁에 기숙사에 들어오는 것이 그나마 숨통을 트이는 일이었다. 기숙사 안에 들어올 수 없는 물건도 있었다. ‘공부와 관련 없는 모든 것’은 반입 금지됐다. 무엇이 공부와 관련 없는 것인지는 교사들이 정했다. 휴대전화, 엠피(MP)3 플레이어도 들여올 수 없었다.
떠들면 3점, 점호 지각 5점, 휴대전화 소지 10점 등 각종 벌점 제도도 운용됐다. 벌점 30점이 쌓이면 1주일 동안 기숙사를 나가야 한다. 다시 30점을 받으면 영구 퇴사다. 한달에 서너명씩 기숙사에서 쫓겨났다.
어지간히 아파서는 쉴 수도 없었다. 식은땀이 날 정도로 배가 아팠던 김군은 “방에 올라가 쉬고 싶다”고 사감 교사에게 말한 적이 있다. 사감은 허락하지 않았다. “꾀병이라 생각했겠죠. 몸이 아픈 건 참을 수 있는데 마음이 아팠어요. 아픈데 왜 이해를 못해주는지….”
김군은 올해 초 기숙사를 나왔다. 어차피 집과 학교는 자전거로 10분 거리였다. 처음부터 기숙사는 원거리 통학생의 편의가 아니라 가둬놓고 공부만 시키는 데 목적이 있었다. “기숙사가 감옥 같았어요. 갇혀 사는 느낌이었죠. 이렇게 통제할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어차피 공부는 자기 의지로 하는 건데.”
남녀공학인 대구 ㄴ고 기숙사의 규율은 더 엄하다. 31개 벌점 부과 항목 가운데는 ‘이성교제’도 포함돼 있다. ‘연애’하다 걸리면 5점의 벌점을 받는다. 벌점 25점이면 퇴사당한다. “어느 남녀 학생이 운동장에서 같이 산책하고 모둠 학습실에서 같이 앉아 공부하다가 벌점을 받았어요.” 이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고현진(가명·17)양이 말했다. 강력한 통제는 학생들의 정서에도 영향을 준다. 고양은 “2주동안 학교에서 공부만 하니까 군대 온 것 같이 갑갑해요. 가끔 집에 못가는 주말에 하루종일 공부할 때 제일 부모님 보러 가고 싶어서 울어요”라고는 고개를 숙여 한숨을 푹 쉬었다.
대구의 ㄷ고는 교실로 쓰던 곳을 기숙사 겸 공부방으로 개조했다. 시설이 대단치 않은데도 자녀를 들여보내려는 학부모들이 많다. 내신 성적과 기숙사생 선발고사 성적을 합해 학년별 상위 20명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숙사 학생들은 공휴일 가운데서도 설날과 추석에만 외박이 허용된다.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은 취임 초, 2014년까지 총 800억원의 예산을 들여 30개 고등학교에 새로 기숙사를 짓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계획대로라면 대구시내 전체 일반·자율고 67곳 가운데 이미 기숙사를 운영중인 10곳을 합쳐 60%(40곳)의 학교가 기숙사를 갖게 된다. 1단계 계획으로 올해 357억4485만원의 예산을 들여 15개 고등학교의 기숙사를 짓고 있다.
50~100명을 수용할 정도의 기숙사 15개가 지어지면 많이 잡아도 1500여명만이 그 ‘혜택’을 보게 된다. 양승희 참교육학부모회 대구지부장은 “대구 전체 고등학생 10만6000명 가운데 1% 정도인 1500명의 숙박을 위해 357억원을 쓰는 낭비성 정책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대구 ㄹ고의 경우, 학교 부지가 좁아 기존 건물 위에 한 층을 더 올려 기숙사를 짓고 있다. 이 학교 고3 학생의 부모인 강아무개(56)씨는 “건물 맨 위층이 고3 교실인데, 공사 소음 때문에 선생님 목소리가 안 들려 수업을 중단하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고3 수업에 방해를 주더라도 기숙사 건립이 입시경쟁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은 강력하다. 현재 기숙사를 운용하고 있는 19개 고교 가운데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현풍고와 원화여고, 외고인 대구외국어고 등을 제외하면 16곳 모두 2000년대에 들어서 설립됐다. 19개 학교 가운데 일반계 고등학교는 11곳이다. 원거리 통학자가 많은 것도, 교통수단이 드문 것도 아닌데, 대학입시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저마다 기숙사를 지어온 것이다.
부유층이 많이 사는 수성구, 인접한 중구·남구 등에 위치한 학교들이 경쟁적으로 기숙사를 지었다. 재개발 이후 젊은 중산층이 모여든 달서구의 학교들도 이 경쟁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새로 기숙사를 짓는 학교들은 도심에 몰려 있다. 원거리 통학과 별 상관없는 기숙사가 많다는 뜻이다.
대부분 학교에서 기숙사는 성적 우수자의 차지다. 취재 결과, 현재 기숙사를 운용중인 19개 학교 가운데 공립인 포산고만 ‘사회적 배려 대상자, 원거리 통학자, 성적 우수자, 담임추천자’ 순서로 기숙사생을 받고 있었다.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먼 거리에서 학교를 다녀야 하는 학생을 위해 기숙사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성적 우수자만 기숙사에 들이는 학교가 대부분이고, 전체 기숙사생 가운데 80%를 성적 우수자에게 할당하고, 나머지 20%를 원거리 통학생 및 사회적 배려 대상자 가운데 선발하는 ㅁ고 정도가 그나마 ‘양심적’인 경우다.
지난해 10월 대구시의회는 기숙사생 정원 가운데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10%, 원거리 통학생(통학 때 40분 이상 소요)을 20% 뽑아야 한다는 조례안을 냈지만, 대구시교육청의 반발에 밀려 유보됐다. 조례안을 발의한 윤석준 대구시의원(새누리당)은 “‘사회적 배려 대상자가 많아지면 면학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는 교육청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우병영 대구시교육청 장학사는 “일괄적으로 수치를 정하기보다는 학교별로 상황에 맞춰 기초생활수급자 자녀 등을 배려하는 방안을 연구중”이라고 답했다.
양승희 참학 대구지부장은 “24시간 집단생활하며 한곳에 가둬놓고 강압적으로 공부시키는 기숙사 생활은 성적 우수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한 다른 학생들의 열패감을 더하는 처사”라며 “스트레스와 열패감이 또 다른 학교 폭력과 자살 사건을 불러올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대구/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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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기숙사- 경쟁교육 자살학생 양산우려? !(한겨레)-전면 기사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