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동아리가 사라진다
입시 경쟁에 밀려 활동없이 이름만 남아 학생회 활동도 `성적에 도움안된다’ 외면
학교는 작은 사회다. 학생들이 세상으로 나오기 위한 준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교이고, 집단의 삶을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사회가 다양한 모습들로 구성되듯 학교 공간도 다양성이 유지되어야 본연의 기능에 맞는 흐름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학교는 입시경쟁만이 큰 틀의 흐름으로 작용하고 있다.
학교에서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 한때 전국의 중·고등학교 안에는 수없이 많은 동아리들이 있었다. 많은 학생들이 동아리 활동을 통해 본디 자기 안에 내재돼 있던 성질이나 타고난 능력을 발견했다.
지금은 어떨까? 물론 아직도 학교 안에 동아리는 많다. 그러나 활동이 거의 없다. 현재 청소년동아리연맹이 추진하고 있는 지원사업에 참가하는 학교 동아리는 586곳이다. 하지만 절반 이상이 댄스동아리다.
여러 동아리들이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학교는 학생에게 공부할 시간 외에 다른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금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암묵적으로 어려운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다. 지금 이 나라 교육이 가는 길은 `경쟁’이다. 내 옆의 친구가 어쩔 수 없는 적이 되는 상황에서 동아리 활동은 내신성적을 떨어지게 만드는 원인일 뿐이다.
동아리의 힘은 같은 또래 집단에서 나온다. 같은 생각을 하는 아이들이 같은 행동으로 만나 저마다의 독특한 능력을 발견한다. 학교는 학생 모두에게 똑같은 걸 가르친다. 일반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 안에 아이들을 밀어 넣는다. 그러나 동아리는 다르다. 학생 각자가 소질과 적성에 의한 적합한 교육을 선택할 권리를 얻고, 서로 간의 자극을 통해 소질을 개발시키는 교육인 셈이다.
이름만 남아있는 위기의 동아리
심각한 입시경쟁의 구도는 학생들이 마음 편하게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안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외면하는 구조다.
그런 시간들이 여러 해 동안 반복되다 보니 학교에는 이름만 남아있는 동아리들이 허다하다. 관심 있는 분야의 동아리에 들어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도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체계적으로 배운 선배도 없고, 지도교사는 그저 이름만 올려져 있을 뿐이다. 심지어 학교 분위기 자체가 동아리 활동에 부정적 시선을 보낸다.
광주 A고 영상동아리는 현재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 몇몇 회원이 남아 활동은 하지만 회원 스스로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장비도 없고, 특별활동 시간도 줄었다.
동아리는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는 구조로 돌아가는데 유명무실한 시간이 오랫동안 반복되다 보니 선배들도 영상 장비나 편집기술 등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후배가 들어와도 가르쳐줄 게 전혀 없다.
현재 광주지역에서 그나마 학교 안에서 활동을 하는 동아리는 대부분 댄스 동아리와 풍물 동아리다. 댄스 동아리의 경우 관심을 갖는 학생들이 워낙 많고, 영상매체의 발달로 사람이 모이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콘텐츠를 얻을 수 있다. 풍물 동아리는 학교 안에 관심을 갖는 지도교사들이 종종 있다.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으니 어떤 형태로든 활동을 통해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학이나 연극, 방송, 미술, 락 음악, 무선통신 등 한때 무수히 많았던 동아리들은 자취를 감췄다.
청소년 동아리광주연맹 이병호 사무처장은 “동아리의 부재가 안타까운 것은 기회의 박탈이다. 학생들은 모두 각기 다른 끼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끼를 능력으로 만들어 내느냐는 것인데 동아리는 자연스럽게 스미는 방식이다. 처음부터 특출한 능력이 있음을 알고 동아리에 참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기고, 어느 순간 잠재돼 있던 능력이 나와 자신을 깨운다. 동아리가 사라지는 것은 학생들에게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다”고 말했다.
“동아리의 부재는 자유로운 사고의 부재”
동아리를 통한 교육은 일반적인 주입식 교육보다 훨씬 높은 생산성을 가진다. 정해진 기준 없이 아이들이 알아서 발견하고, 또 하고 싶어서 몰입하기 때문에 높은 성과를 낸다. 과연 지금 아이들은 동아리 활동에 대한 욕망이 전혀 없는 것일까.
학교 안의 동아리는 몰락했지만 학교 밖에서 자기의 다른 끼를 찾아 나서는 학생들은 늘어나고 있다.
청소년 교육공동체 `희망’은 학생들에게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고, 사무실 공간을 내준다.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평일 사무실 분위기는 늘 조용하다. 그러나 휴일이나 밤이 되면 희망의 사무실은 아이들이 꿈을 만드는 영토가 된다. 와서 노래부르고 춤추고 동아리 활동도 하고 교육 문제에 대한 모임을 진행하며 토론도 한다. 늘상 찾아드는 아이들만 50여 명이다. 전체 회원은 900명이 넘는다.
더 큰 문제는 학생회 활동까지도 아이들이 꺼린다는 것이다. 학교 내에서 학생의 자치활동이 자취를 감추고 있는 셈인데, 아이들 스스로 학교의 주인이기를 포기하는 구조다. 특히 사립학교의 경우 학생회 간부는 이름만 걸려 있을 뿐 활동은 전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역의 한 고등학교 학생 A(17) 군은 “공부에 도움이 안 된다며 부모님도 반대하고, 학교에서도 학생회 활동을 안 좋게 설명을 해요. 학생회 간부를 맡는 때가 2학년인데 솔직히 내신성적에 가장 신경 써야 할 때잖아요. 이런 분위기에서 동아리나 학생회 일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입시경쟁만을 강요한 교육이 공부를 제외한 학생의 모든 활동을 금지시키고 있다. 자유로운 사고의 폭은 좁아진다. 청소년 교육공동체 `희망’의 정태연(30) 사무국장은 “12년을 하루 같이 철창만 없는 감옥에서 아이들은 먼 미래를 생각하며 무엇이건 참아내는 데 익숙해진다. 그러나 정작 학교의 틀을 벗어났을 때 길었던 12년은 아이들 삶의 어떤 부분도 담보해주지 않는다. 이제 아이들 스스로가 느끼고 행동할 때다”고 말했다.
정상철 기자 dreams@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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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동아리가 사라진다-광주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