훠훠 그은 듯한 하늘엔 바람이 담긴 듯 자유롭다. 그 아래 산도 그러하다. 초록으로 꽉 채운 개념의 `산’이 아니라 `호흡’하는 산이다. 아무렇게나 그렸다고 어른들의 시선으로 재단하지 않는다면 정말 자유로운 그림이다. 무를 머리에 이고 가는 할머니 옆으로 자라고 있는 무는 할머니 보다 더 크다. 사람들 얼굴색도 각양각색이다. 꼭 `살색’으로 칠해야 직성이 풀리는 `강박관념’이 없다.
1960년대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다.
28일 무등도서관을 찾은 동화그림작가 정승각씨가 보여준 슬라이드에는 그 때 아이들의 그림이 담겨있다. 시골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고 이오덕 선생이 그 시절 아이들의 그림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보관했다.
《강아지똥》《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 등 동화의 그림작가 정승각씨가 `보고 상상하고 그리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요즘 아이들 하늘을 그릴 때 하늘색 크레파스로 여백 없이 꽉꽉 채웁니다. 사람 얼굴은 꼭 살색으로 입술은 항상 빨간색이죠. 아이들의 숨결이 그림 속에 없어요. 자연과 놀아보지 않았기 때문이죠. 결과만 중시하는 그림 그리기의 폐해입니다. 옛날 아이들의 그림을 보면 그런 `강박관념’이 없어요.”
정씨는 요즘 미술교육이 아이들의 감각과 감성을 죽이는 교육이라고 했다.
정씨가 묘사하는 학교 미술시간을 들여다 보면 이렇다. “자 준비물 안가져온 사람 일어나” “안가져왔어? 전쟁터에 무기를 안가져와?” 동기유발 시간에 아이들 맘에 빗금이 그어진다.
“오늘은 아버지 그림을 그린다. 빨리 그리고 시간 끝나면 걷어와” “빨리 그리라니까 왜 이렇게 느리니. 집에 가서 해와.” “먹선 밖으로 나가면 안된다고 했잖아. 넌 왜 정성껏 못하니?”
스트레스다. 미술은 이렇게 `교실’에서 아이들과 멀어진다. 때문에 전국의 아이들 그림이 모두 똑같다. 나무는 이렇게 그리고 꽃은 저렇게 그린다.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정씨가 제안한다. “아버지 얼굴에 점이 몇 개인지, 콧구멍이 몇㎝인지 자로 재가지고 오라”고 숙제를 내준다. 다음날 아이들은 아빠 얼굴에 대해 할 말이 많다. 할 말 많은 아이들에게 제안한다. “그림으로 그려보자” 라고. 그림에 사연과 생각들이 들어간다. 교사도 아이들의 그림 하나 하나를 보며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아이마다 각자 소우주가 있다. 발견의 기쁨이 따른다. 보고 상상하고 그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생각을 붙잡는 것입니다. 생각은 그냥 지나가버려요. 그림을 그리면 자기 생각이 심화되고 확장됩니다. 그림은 또 다음 생각을 만들어 냅니다.”
시냇물은 `졸졸졸’ 흐른다고 하고, 사과는 `빨갛다’고 가르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오감을 키워주는 것. 그리고 상상하게 하고 생각을 확장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 정씨가 말하는 우리 교육에 진정 필요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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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꼭 `살색’으로 칠해야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