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다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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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9 15:2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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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선아 |
 조성국.jpg (5.4 KB), Download : 496 |
 눈자위 붉은 집토끼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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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자위 붉은 집토끼 한 쌍을 쳤다. 어릴 적 농업선생 아버지가 ‘국민학교’ 입학 기념으로 사주며, 잘 키워서 용돈이라도 벌어 쓰게 할 요량을 부린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토끼가 약육강식의 자연계에서 별다른 무기 없이 잘도 버텨온 것은 한 배에 칠팔 마리씩 낳곤 하던 다산의 동물인지라, 잡아먹히고 먹히면서도 번성한 습속이고 보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라고 여기셨던 모양이다.
나 역시도 깡충깡충 뛰어가는 ‘산토끼’와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가는 서쪽 나라’에서 불사약의 방아를 찧고 있다고 생각한 터라, 여간 신비롭고 친근했으며, 저 달에는 정말 토끼가 살고 있을까 확인하고 싶고 아울러 달나라에 가 보고 싶은 꿈을 꾸게 한 토끼였으므로, 아버지의 제의를 선뜻 받아들였다.
아버지는 또 토끼전 별주부전 구토설화를 들먹이며, 지혜로운 꾀를 내어 위기를 탈출하는 대화와 소통의 귀감을 보여 준 것이며, 용궁에서 꾀를 내어 위기를 벗어나거나, 삼국사기에 김춘추가 고구려 연개소문에게 붙잡혔다가 구토설화에 나오는 토끼의 지혜를 힌트 삼아 위기의 상황에서 벗어났다는 것들을 세세하게 가르치곤 하였다. 그렇게 나의 머릿속의 토끼는 민첩함과 지혜의 상징으로 새겨져 있기도 했다.
여하튼 나는 토끼 키우기에 성심을 다했다. 꼭 쌀밥 같은 토끼풀만 뜯어 먹였고, 시오리 길(6km)의 학교 수업도 그만 작파하고 땡땡이쳐 와서, 느닷없이 퍼붓는 소낙비까지 가려주는 지극정성을 부렸다. 외욕질나는 코를 틀어막고 물게 똥 덕지덕지 한 토끼장의 소제를 한시도 소홀하게 늦장을 부려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한 식구나 진배없이 대하던 집토끼가 마침내 예닐곱 마리쯤 아기토기를 낳자, 여간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마냥 신통방통해서 눈도 안 뜬 벌거숭이 아기토기를 껴안고 매만지고 쓰다듬고 어지간히 갖고 놀았다.
그러나 뜻하지도 않는 문제가 그 다음 날에 생겼다. 먹이를 듬뿍 싸들고 토끼장 문을 열자마자 나는 그예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사람의 손을 한번 탄 제 아기토끼는 어김없이 물어 죽인다는 아버지의 주의를 까마득히 잊어버린 것은 고사하고, 몇 날 며칠 어미들만 되게 미워하게 되었다.
미워해서 다짜고짜 뾰쪽한 가시가 달린 풀들만 골라 먹였는데, 찔리지도 않고 잘도 씹어치우던 두 마리가 불어서 수십 마리가 넘게 되었다. 그때까지 연분홍 새낄 만지고 싶은 충동이 물밀듯이 일어도 나는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몰래 바라본 것만으로도 여린 성장통 같은 간절함을 버텨내곤 하였다.
그 어린 세상을 살면서 때론 눈자위 붉은 토끼처럼 물어 죽여야 할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신묘년 토끼해에 이처럼 극단의 처세를 한 번쯤 부려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 것은 또 어찌 된 까닭인가?
조성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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