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이상윤님의 삶에 대한 조사-시민연대 |
|
| 이름 |
경북지부
|
2007-12-17 조회 : 3,047
|
|
| 이렇게 허망하게 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서
조직국장님의 빈자리가 이렇게 커다란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늘 그자리에서 묵묵히 궂은 일 도맡아서 해 주셨는데
대선 끝나면 보자고 했는데...그러고나서 참학일 열심히 하겠다고 했는데...
언제나 전화하면
"대장! 말씀하소.충성!"
이젠 씩씩한 그 목소리 다시는 들을 수 없습니다.
오늘 삼오지내고
묘비명에 이렇게 써 있습니다.
'평화와 통일 참교육 실현과 평등세상을 위해 젊음 불사르고 잠들다'
'민주인사경주이공상윤지묘(루까) 1962년7월9일나서2007년12월11일잠들다'
장례미사를 마치고 시민장을 하면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안동대표이신 김창환선생님께서 쓰인 조사를 덧붙입니다. 그 분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는 글입니다.
지난 일요일 오후, 이상윤 씨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었습니다.
“상윤 씨, 월요일 저녁 때 나하고 대전 유성에 좀 갔다 오시더. 평통사 일꾼 워크샵에 가야 하는데 내 차로 가입시다.”
“선생님, 요번에는 좀 어렵습니다. 지금 광주에 와 있는데요, 19일 대선까지 다른 일은 못 할 형편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래요? 알았습니다.”
저는 그를 잘 알고 신뢰하니까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 날 함께 못 간 것이 후회스럽기도 합니다.
지난 7월 달 워크샵 때는 유성까지 함께 차를 타고 오가며 참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가 살아온 역정이 고달프고, 지금도 여전히 사는 게 팍팍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뜻대로 잘 안 된다는 정도로, 힘겨운 속내를 내비치기만 했습니다.
이렇듯 그의 언어는 단정적이지 않습니다. 분명한 자기 입장이 있어도 유보적인 태도입니다. 말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듣는 쪽입니다. 상대방이 말할 기회를 더 많이 갖도록 기다려 줍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울화가 치밀고 분노가 솟아나기도 하는 법인데, 그는 내색하지 않고 삭이는 스타일입니다. 그가 가진 특유의 미소로 좌중의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어 놓습니다.
그는 나이가 스물일곱입니다. 실제 나이는 저하고 띠동갑이니까 마흔일곱 살이지만 이상윤은 스물일곱의 나이로 멈춘 채 20년을 살아왔습니다. 그가 스물일곱이었던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시기, 짱돌과 화염병이 구사대와 폭력경찰 머리 위로 날아다닐 때, 그는 자동차부품공장 해고노동자로 모순된 노동현실의 벽에 맞서 싸웠습니다. 훗날 그가 평통사에 남긴 글을 보면, 3년간의 해고자 생활을 하면서 부인을 만나, 10만원짜리 셋방에서 땀과 눈물로 지은 밥을 먹었으며, 다시 모진 해고를 두 번 더 당해야 했습니다. 현재까지도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중고등학생이 된 두 남매의 아버지로 살아왔으니, 그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그 얼마나 무거웠겠습니까?
그럼에도 이상윤은 대의를 높이 받드는 삶을 내던지지 않았습니다. 스물일곱 청년의 열정과 순수를 버리고, 타협하거나 체념하거나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좋은 세상 다 됐는데 ‘아직도 그러고 사냐’는 비아냥도 들을 법하지만 그는 부정정신과 비판정신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스물일곱의 열혈 청년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부르는 곳은 마다하지 않고 갔습니다. 서 있어야 할 자리에 꿋꿋이 서고, 나서야 할 자리에 당당히 나서는 것이 활동가의 자세라면, 그가 꼬옥 그랬습니다. 여럿이 함께 결정한 일을 꾸준하게, 변함없이, 한결같이 실천하는 사람을 누구나 좋아하는데, 그가 꼬옥 그랬습니다. 안동 시민들의 참여와 연대를 위해, 한미FTA를 막아내는 일에, 평화와 통일을 여는 일에, 학부모로서 교육자치의 모범을 만드는 일에, 반평화 반통일 언론의 상징 ‘조선일보’를 반대하는 일에, 그러다 선거 시기에는 또 온 몸으로 뛰고 달리고 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이상윤을 찾고 잡아끌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늘 특유의 미소로 답했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그런 그가 우리 곁을 아주 떠납니다. 그래서 우리들 가슴이 따갑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돈 잘 버는 남편으로, 학비 넉넉히 대주는 아빠로 살지 못했지만, 그의 말대로 ‘열나게, 그리고 죽도록’ 사랑한 어진 아내를 남겨두고, 또한 저리도 반듯하고 참하게 커가는 딸 연희와 아들 대희를 남겨 두었습니다.
친형제 이상으로 힘이 돼 주었던 무식 선생, 선배로 깍듯이 받들던 성섭이 한근이 욱원이 희철이가 있고, 정치적 입장을 떠나 지역과 전국 현안을 함께 고민했던 윤한 난희 씨, 루까 형제에게 냉담 그만하고 새해에 정평 일을 함께 하자던 용한과 헌택 선생, 교육자치 일로 의기투합했던 용제와 형석 선생, 허물없이 호형호제하던 석주, 철희, 재현, 명배도 있고, 천군만마를 얻은 듯 그를 소중하게 아끼던 복순과 철숙 씨도 남겨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가까이, 또는 먼 데서 그와 함께 한 수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다행하게도 이상윤 씨는 우리한테 한 가지 당부한 게 있습니다. 평통사 까페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그는 최인훈의 소설 <광장>을 거론하며, 우리 모두가 자신의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와, 각기 주의 주장이 달라 충돌을 빚지만, 지향하는 바가 같으면 다른 배를 타더라도 서로가 등을 돌리지 말자고 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살았습니다.
상윤 씨는 소주를 참 좋아했지요. 저가 가끔 상윤 씨한테 소주를 그렇게 맛있게 자시는 사람 못 봤다고 칭찬 아닌 칭찬을 하곤 했습니다. 그를 앉혀 놓고 쓴 소주 한 잔 권하고 싶습니다.
상윤 씨, 하느님이 상윤 씨를 당신 나라로 급히 불러 올린 이유가 있을 겝니다. 그 동안 지던 무거운 짐 우리한테 맡겨 두고 가셨으니, 그만 좀 편히 쉬세요. 부디, 부디, 편안한 마음으로 푹 쉬시기 빕니다.
2007. 12. 13.
열린사회를위한안동시민연대 공동대표 김창환
|
|
|
회원가입 
l 소식마당 l 지부지회소식 
